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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죽지못해 살고있는 한 여자입니다.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태권미녀 |2007.04.21 00:30
조회 1,296 |추천 0

오늘.. 잠깐 하고있는 알바를 끝내고..

 

일이 많아 야근을했지요.. 9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축 쳐진 저의 모습이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문에 비춰진 저의 모습은.. 참으로 바람빠진 풍선같았습니다.

 

저의 한숨으로..땅은 꺼질듯하고..

 

저는 죽지못해 살고있습니다. 자살?자살할 용기도 없는 바보같은 저 입니다..

 

굳이 억지로 죽으려 하고싶진않습니다만.. 살아있으니까.. 시간은 흘러가고..

 

정말이지.. 시간 가는데로 세월아 내월아 하며.. 비전없는 미래를 상상하고

 

막막한 앞날을 감당하려는 압박에 눌려 하루하루 제 어깨는 더욱 쳐져버리는것 같습니다..

 

어릴적.. 너무나 어린 나이에 저희 아빠와 결혼한 엄마라는 그 여자는.. 제가 6살..그리고

 

제 남동생이 3살이 되던 해에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곤 단한번 찾아와 용서를 빈적도,보고싶었다는말도,미안하다는 말도 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가 집을 나간이후로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린 기억이지만.. 이때 다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무척이나 힘들게 지냈습니다.

 

괴로웠고..

 

그러던 중간에.. 새 여자를 저희 새 엄마로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가 생기기전에는 할머님과, 큰집 식구들(큰엄마,큰아빠,사촌동생)

 

그리고 저희 아빠.. 그리고 저와 제동생,

 

그리고 할머니의 막내아들 알콜중독자인 삼촌과 함께 살다가..

 

저희 아빠와 저와 제 동생을 셋이 같이 집을 얻어 살았지만.. 할머니가 거의 돌봐주셨습니다.

 

그러다 새엄마가 생겨..

 

아빠와 저 그리고 제 동생은.. 새엄마와 새엄마의 친아들 과 함께 살게되었구요..

 

그런데..

 

새엄마라는 여자가.. 제가 지금 스물셋인데..

 

그땐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쯤이니까..

 

아동학대라는 말도 모를때였구요..

 

 

제 동생과 저는 아빠만 계시지 않으면 이유모를 구타와 함께,

 

온갖 집안 일들을 해야했습니다..

 

정말..초등학교 1학년짜리와.. 5살짜리가 뭘알겠습니까..

 

어린마음에 새엄마가 무서워 아빠한테 말도못하고..

 

저는 그렇다 치고..어느정도 였냐면.. 어느날 제동생이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는날이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데고 그 새엄마의 친아들도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날이였구요,

 

그런데.. 제 동생의 도시락에는 쌀밥과 함께 반찬으로는 깍두기 김칫국물이 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의 도시락에는 계란말이와 함께 햄..이였고..

 

초등학교 1학년 이였던 제가 그걸보고 눈물을 흘렸고..

 

어느날은.. 자가다.. 거실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아빠와 새엄마가 큰방에서 나왔고,

 

저도 나와보니..

 

제 동생이 씽크대에 수돗물을.. 밥그릇에 가득담아 프림과 설탕을 타다가..

 

방에서 나온 식구들에 놀라더군요.. 그래서 아빠가 물어봤떠니..

 

배가 고팠다고 하는겁니다.

 

새엄마가.. 아빠몰래 저희를 정말 무진장 괴롭혔습니다.

 

밥도 배불리 먹지못했고,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에는.. 아침일찍 일어나 할머니한테 가고 싶어

 

새엄마와 아빠몰래 펑펑울었고..

 

어째뜬..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빠가 폐암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였구요..

 

아빠가 돌아가신후 새엄마는 아빠의 재산을 갖고 떠나가셨고..

 

저희는 어쩔수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물론, 할머니와 할머니 막내아들인 알콜중독자인 삼촌과함께..

 

저희 아빠도 술을 무진장 드시고..술만드시면 사고를 치곤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큰아버지도 여태 술을 드시고.. 힘들게 하시지만요..

 

(현재 같이 살고있는건 아님니다 큰집식구들..)

 

어째뜬..할머니이 자식들 모두 아들이였는데 술만 마시면..다들..

 

제정신이 아니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란피우기는 일쑤였고..

 

그래서 또 저희 할머님.. 어쩔수없이 옛날 분이시다 보니..

 

미신을 많이 믿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주변 예기를 들으시고.. 무속신앙의 길로 접어드셨습니다..

 

그럼 아들들의 병을 고칠수있다고..

 

저희 는 할머님과 알콜중독자 삼촌과 저와 제동생 넷이 살면서..

 

정말 말로는다 표현하지 못할 고생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눈물을 한없이 쏟아도 미칠지경이였습니다..

 

초등학교때야 아무것도 몰라 그냥 자랐지만..

 

사춘기가 접어들면서 중학생이였던 저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할머님의 무속생활도 삼촌의 술주정도..

 

부모없어 남들과 다른생활도, 먹고싶은것도.. 입고싶은것 ,사고싶은것.. 하고싶은것도

 

뭐하나 제대로 할수없는 저는 하루하루 정말..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서 집으로 친구들과 오다가도... 주변 주택들과는달리 옛날 초가집같은 집이 싫었고

 

챙피해서 괜히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친구가 없어지면..그때야 집으로 들어오고..

 

어느날은 집가까이 와서 술취해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삼촌때문에

 

대문앞에 몰려든 동네사람들사이를 피해..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시간지나서

 

잠잠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고..

 

근데도 정말 제 가슴이 아픈건..

 

항상 웃으며 학교잘 다녀왔냐는 할머니의 인사였습니다..

 

배고프냐며 비록 김치와 밥이 전부였지만..

 

밥을 차려주시던 할머님의 모습도..

 

정말...소설이 아닙니다..

 

이런글 쓰면 소설을쓴다..어쩐다 하시는 분들.. 많이있던데..더 힘든,가슴아픈예기들도 많지만..

 

다 표현할수없어.. 쓰질못하는겁니다..

 

정말 저는 그당시에 너무 힘들었고, 지겨웠고..

 

어쨌던 부모없는 설움이란,아무리 부모가 있어도 제 친구들 가끔이렇게 말합니다.

 

"야 나도 엄마 아빠 있어도 나한테 도움되는건 하나도 없어 내가 벌어서 내가 다 쓰고.."

 

등등..

 

어째껀.. 부모님은 있는것과 없는것의 차이란.. 없어본 사람들만이 압니다.

 

어째뜬.. 그렇게 힘들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때 할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당시 알콜중독자인 삼촌은,

 

할머님이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한달후쯤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실때만해도..간단한 병이였습니다..평소에도 다리다 허리다.. 늘 몸이 안좋다

 

입에 달고사셨기에..

 

큰집식구들이.. 어느날부터, 저에게..

 

할머니 반지는 어디있냐 물어봐라.. 통장은 어디있냐 니가 물어보라고,

 

큰엄마인 자기가 물어보면, 대답을 안해주신다고..

 

저한테 자꾸 그러는것이..수상했는데..알고보니 암 환자 병동이였고..

 

이미 폐암 말기셨던거였죠..그당시 상황이란..정말 기막히고 어이없고..너무나 가슴아픈 일들이

 

많았지만..다 쓰지 않겠습니다..

 

큰엄마는 며느리로 들어와서 비록 가진것없고 배운것 없는 저희 큰아버지와 결혼을하셨습니다.

 

아무리 큰아버지와 그렇게 맘없이 사신다지만, 어찌됐든 자식을 낳고,

 

막노동으로 여태 살면서 집까지 사서 애들 학교보내며 살고있습니다.

 

한데, 큰어머니가 정말로..할머니 살아생전에 할머님께 해드린게 없습니다.

 

며느리로써, 큰아버지는 큰아들로써..

 

할머님과 살아오면서 지켜본 큰집 식구들은, 할머니가 무속생활로 번돈으로

 

쌀이며 김치며.. 김치를 담궈도 큰집것까지 할머니가 해두시면, 가져다 먹기만 바빴지

 

뭐하나 도움이나 보탬된건 하나도없습니다.

 

어찌됐건..

 

할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시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몇가닥만 남고.. 꺼끌꺼끌할때도.. 눈물을 참으며 싸구려 면도기로

 

할머니 머리를 깍아드렸습니다..

 

할머님이 돌아가신다는걸 안순간에도 할머니 없는 재산만 따지는 큰집식구들이 미워서

 

감당할수없는 슬픔에 흘러나오는 눈물 억지로 틀어막으며 지내야했고

 

병수발을 하러 다녀야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이였습니다..

 

할머님이 집에 가고싶다고 하도 그래서.. 집으로 이틀간 왔던적이 있는데..

 

물론 다시 상태가 안좋아 지셔서 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그리고 얼마 안되 돌아가셨지만..

 

집에 계신동안.. 뼈만남은 몸으로..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온 저와 제동생을위해

 

쌀밥을 해놓고 기다리셨고..

 

그러던 다음날.. 마찬가지로 집에 왔는데..너무 더운겁니다..

 

그래서 할머님이 누워계시는데 옆에 앉아 날씨가 너무 덥다고..

 

아이스크림 먹고싶지 않냐며 동생과 떠들다가.. 방에들어가 교복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겁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는데..

 

놀래서 동생과 뛰쳐나와 뛰어다니며 할머니를 찾아다녔는데..

 

한동네 슈퍼앞에서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가눌수 없는 자신의 몸을 나무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신채로..

 

한손에는 떠먹는 삼천원 짜리 아이스크림이 녹아 물컹해진 상태로..

 

들려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님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일어서지도 못하고 계신겁니다...

 

그모습을 본 저는.. 말안해도 아시겠죠..

 

어린동생 앞에서 눈물보일수없었지만..

 

소리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은..감출수가없었고..

 

그 후로 할머님은 다시 병원으로 옮겨지셨고..

 

몇일후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지만.. 자다 일어나셔서..맨정신이 돌아와..

 

저보고는..눈물을 흘리시며 동생과 함께 잘살라고 말씀하시곤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저를 너무 가슴아프게 합니다.

 

그때 잡아주신 손의 그 느낌이..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꿈도 깨져버렸죠.

 

대학은 둘째치고..일단 고등학교부터 졸업해..성인이되어서..

 

적은돈이라도 벌어서

 

직접 제가 번돈으로..할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던 자장면을 사드리고 싶었던.. 어린마음이 참으로

 

소박하고 작지만 큰꿈이였는데..

 

할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제 모든 희망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님의 적은 재산조차 큰집은 빼앗아 가바렸고..

 

 저희는.. 지금..제동생과 월세 집에 살고있습니다.

 

제동생도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들어가,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이후로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지..살도 많이 빠지고

 

학업능력도 당연히 떨어졌고..

 

이렇게 저는..한달벌어 한달을 살아가고있습니다..

 

현재는 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갈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어차피 대학도 못한거 남자라 가야할 군대라면 애초에 다녀오는게 낫다생각해서..

 

동생도 .. 저의 말대로.. 군대갈 준비를 하고있구요..

 

얼마되지 않는 돈으로 한달벌어 월세를 내고 세금을 내고..핸드폰 요금을 내며

 

살아가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돈이 모아지질 않더군요..

 

사실 이제 스물셋이 된 저는.. 할머니 돌아가신 지난 약 4년동안..

 

이게 열심히 사는건줄알았습니다.

 

나보다 힘든사람 많다고.. 더 못한사람 안됬지만, 저 살기도 벅찬 저로써는..

 

도와주고싶어도.. 실질적으로 그사람들 도와주지 못해안타까워하면서..

 

저보다 힘든사람들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지만..아무리 아둥바둥 발버둥치며 살아보겠다고..

 

희망을 잃지말자고..아무리 긍정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노력해보아도..늘 제자리 입니다.

 

어쩌다 다치기라도 하는날엔..저희는 정말.. 다친그대로 상처받은그대로..

 

방치해야합니다.

 

저나 동생이나..혹시나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가 났다해도 그냥.. 죽어가야합니다.

 

서로가 안타까운 눈물속에 그냥 살아가야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이후로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계유지비도 없습니다.

 

의료보험도.. 1종에서 2종으로..2종에서.. 현재는 일반 의료보험으로 바뀌었고..

 

알아보니, 70만원 이상 수익이 된다면 정부지원은 안된다더군요..

 

솔직히.. 70만원.. 웃음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현재 제동생 고등학교 졸업한지 약 두달 좀 넘었나요..

 

그리고 저.. 대학도 못나왔고, 요즘 대학나온사람도 일자리 구하지못해서

 

힘든상황에.. 많이 벌어봐짜 돈백입니다..

 

저..제동생 고등학교 다닐때만해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 이다 뭐다 여기저기 일자리가 없어서 월급이 적어도

 

그냥 다녀야했고..

 

솔직히..80받으면서 일다녔는데..

 

그것같고는.. 저와 제동생 핸드폰 요금..아무리 안썼따해도..

 

그리고 세금과 먹으며 살아야하기에..생활비..등등...

 

세금도 겨울엔 도시가스비.. 남들처럼 따듯하게 지내지 못해도

 

춥게살았어도..겨울엔 더 나옵니다.

 

그리고 월세..

 

참으로 빡빡하더군요.

 

도저히.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모아지는 돈은없고,

 

돈을 모을수도없는 상황이고.

 

이것도 배부른 소리라 하시면..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더이상 살아갈 용기가없습니다..

 

정말.. 부모없이 저처럼 살아온 분들은 아실껍니다..

 

그냥..지금 상황이 저에겐 너무나 감당하기힘들고 벅찰뿐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가족의 자리라는 큰 허전함과..

 

제가 모든걸 책임지고 감당해야할 짐들과..

 

재테크.. 일단 돈이 없으면 그 무엇도 안되는 세상입니다.

 

돈없으면 무시당하고,

 

돈으로도 살수없는게 많다고..행복.. 희망 그런것들..

 

제게는 모든게 원망입니다.

 

아무리 행복하고싶어서 긍정적으로..

 

스스로 위로해보아도..

 

다시 돌아서면 현실은 이게아닌데.. 이런데..이렇게 힘든데..

 

하루하루 고통스럽습니다.

 

현재 알바자리를 알게되어.. 잠깐.. 사무직?알바를 하고있습니다..

 

단기 계약알바라.. 다다음주면 약 60만원 돈을 받고 그만두게됩니다..

 

그리고 다시또 월세에 생활비..세금..등등..

 

그리고..

 

일자리를 다시 찾아봐야겠지요..

 

그저 모든게 이제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합니다.

 

답답하고 미치겠습니다..

 

그저..죽지못해 살아가고있는느낌입니다.

 

정말 밑바닥부터..시작하셨다는분들의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도대체 그 밑바닥 부터는 어디서 부터입니까..

 

그렇다고.. 정말.. 집도 절도없는 노숙자들 입장에서 생각해라 하시는 분들도있지만..

 

그상황과는 틀리지 않습니까..

 

정말..한숨만 나올뿐더러..

 

도대체..저는 어떻게 해야 바른길로 가는겁니까..

 

모르겠습니다..

 

그저 막연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뿐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평생을 저희를 위해 고생하신 할머님이 너무 보고싶어 견디지 못할때가 더 많습니다..

 

그 상처가 너무 큰가요..

 

저도 감당이 안되네요..

 

너무 힘듭니다.

 

저는 어떻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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