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오늘따라 퇴근 길의 소통이 원활하다.
나는 평소보다 빨리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쓸쓸한 감정이 더 빨리 내 마음 속에
차오른다.
슬픔이란 감정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딱히 구분해 내질 못하고
살아왔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이 변함없는 공허함을 굳이 슬픔이라고 단정짓는
다면 나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주위를 흐르는 공기처럼 놔두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저녁을 차리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채워 넣는 것에 소홀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나는 한참동안 안을
들여다 본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냉기가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고 냉장고 문을
다시 닫았다.
집에서 입고 있던 면바지 차림으로 충동적으로 집을 나섰다.
딱히 밖에서 저녁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유달리 집 안에 있기가 싫었다.
한창 무르익은 봄 날 초저녁 바람이 볼에 상쾌하게 와 닿았다.
머릿결이 아주 살포시 어깨 위에서 들려진다.
알 수 없는 해방감이 가슴 속에 있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죄책감도 슬며시 가슴을 억누른다.
나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즐거운 느낌은 그만한 크기의 죄책감
으로 내 마음 속에 돌아온다.
그것이 싫어서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릴까 하고 잠깐 망설였다.
순간 핸드백을 든 손에 진동이 느껴진다.
집에서 나오기 전 휴대폰을 넣어 가지고 나온 것이 생각난다.
핸드백의 지퍼를 서둘러 열었다.
나도 모르게 손동작이 급해진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서두른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나는 어떤 전화를 기대하고 있는 걸까?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단박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가슴은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갑자기 두방망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