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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아저씨..

뽀오얀비 |2003.05.15 10:25
조회 2,902 |추천 0
나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수퍼 아저씨는 전쟁고아라고 했다.

평생을 청량리에서 자전거 배달로 벌어 먹으면서, 번듯한 가정을 일구어

낸 분이었다.

내 기억으로 구멍가게에 <수퍼>라는 이름을 우리동네에 처음 도입한 분이

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분의 호칭은 그이름도 어마어마한 수퍼아저씨

였고...

내 어렸을 때의 기억중에 그분의 에피소드가 참 많다.



<수퍼아저씨 에피소드 1: 짐자전거 드리프트 테크닉>

친척이 하나도 없는 아저씨는 손님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친척 이상으로

대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각종 동네 모임엔

빠지지 않는 감초였다. 특히 조기축구회 활동을 요즘의 프로축구선수

못지않게 열심히 이끌었는데 평소에도 운동복 차림인 경우가 많았다.

어느날,

아버지와 새벽에 학교 운동장에 나간 날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자신의 자전거 실력에 자부심이 컸던

수퍼아저씨는 항상 끌고 다니는 시커먼 짐 자전거 위에 축구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옆에는 번쩍번쩍한 새 싸이클에 올라탄 어떤 아저씨가

약간 비웃는 표정으로 히죽히죽거리고 있었고...

조기축구회 사람들이랑 운동나온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흥미진진한

시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수퍼아저씨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퍼아저씨의 자전거는

20년쯤은 돼보이는 낡고 무거운(핸들 앞쪽에 쇠파이프가 6개쯤 수직으로

내려와 있는) 고물 짐자전거였고, 상대는 최신형 싸이클(옛날에는 가는

타이어에 아래로 쳐진 모양의 핸들을 가진 자전거를 싸이클이라고 했다)

에다 수퍼아저씨보다 10살은 아래인 젊은 사람이었다.

시합이 시작되고 두사람이 사력을 다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수퍼아저씨는 벌떡 일어선 자세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속도를 냈지만,

싸이클은 첨부터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반환점에 도착할 때쯤에는

수퍼아저씨의 짐자전거가 가속이 붙었고 마침내 코너링 때 나는 아저씨의

현란한 드리프트 테크닉을 보고야 말았다.

모래가 잔뜩 깔려있는 운동장에서 코너링하던 자전거가 살짝 미끌어지기

시작한 순간 아저씨는 번개같이 짧은 다리로 땅을 박차며 자전거의

균형을 잡았고, 싸이클은 미끌어지지 않기 위해 큰 원을 만들며 도는

바람에 순식간에 역전! 결승점까지 싸이클은 짐자전거를 다시 잡을수

없었다. 수퍼아저씨는 영웅이 되었다.

아버지 말로는 수퍼아저씨가 하도 꼬맹이 때부터 짐자전거를 끌어서

사타구니에 굳은 살이 박혔다고 하고, 그 바람에 결혼하고 10년간 애기

가 없었던 것도 사타구니에 다른 기능이 퇴화돼서였다는데...사실인지는

모르겠고... 늦게 낳았다는 무지 못생긴 딸이 기억난다.

아뭏튼 그렇게 현란한 수퍼아저씨의 기술은 내 뇌리에 강렬하게 기억

되었고, 수십년후 한강변에서 난생 처음 보았던 모터크로스 경주에서

오토바이 선수들이 그 기술을 구사하는 걸 보면서 문득 수퍼아저씨를

떠올렸었지...



<수퍼아저씨 에피소드 2 : 생쥐 일가족 선물세트>

수퍼아저씨는 평생 고생을 해서, 피부나 외모는 시커멓고 깊은 주름

(노무현급 일자 주름이 한 10개쯤 패여 있었다) 투성이였지만, 워낙에

낙천적이고 잘 웃는 장난꾸러기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분이었다.

장난이 얼마나 심한지 어느 겨울에는 자기 슈퍼 앞에다 자기가 직접

애들이나 파놓는 함정(허방다리)을 파놓고 지나가는 여자들 빠지기만

기다리다가, 동네 노인네가 빠져서 수습하느라고 정신없는 그런 분이었다

어느날

우리 집에 그 수퍼아저씨가 나타났다. 집에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어머니가 말했더니 직접 쥐를 잡아주러 왔던 건데, 한참 집안 구석구석을

정찰하더니 몇군데 쥐약을 놓았다. 특히 대문옆 쓰레기통(옛날에는

시멘트로 크게 만든 쓰레기통이 집집마다 대문옆에 있었다)은 직접

쓰레기를 다 끄집어낸후 접시에다 소담하게 쥐약섞은 미끼를 담아두었다.

다음날 새벽,

아, 나는 잊을수 없다. 빈 쓰레기통안에 쥐 일가족이 서로 몸을 밀착시킨

채 힘없이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란... 제일 먼저 발견한 내가

한달음에 수퍼로 달려가 아저씨께 소식을 알렸다. 내 말을 듣는 순간,

아저씨의 그 반짝 빛나던 눈빛... 아저씨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리

생각해 뒀다는 듯, 빈 박카스 상자와 집게를 들고 우리집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엄마쥐 아빠쥐와 새끼쥐 6~7마리를 담자 박카스 상자가 꽉 찼고

아저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상자를 들고는, '와~꽤 묵직한데'하고는

수퍼로 향했다. 나는 호기심 때문에 수퍼까지 아저씨를 따라갔다.

아저씨는 싱글벙글하며 쥐들이 들어찬 상자를 깨끗한 종이로 포장하기

시작했고 예쁜 끈까지 찾아와 그럴싸한 선물포장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그 선물포장한 상자를 수퍼 밖으로 들고 나가더니 두리번거리다가

골목 한 귀퉁이에 가만히 내려 놓고는 재빨리 수퍼 안으로 되돌아 오는

게 아닌가? 이때쯤에서야 나는 아저씨의 의도를 눈치챌수 있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아저씨와 나는 한참을

숨을 죽이며 바깥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아저씨도 침을 꼴깍 삼키며 유리문 안쪽에

몸을 숨긴채 바깥을 지켜보고 있었고...

잠시후,

한 아줌마가 수퍼앞을 지나 상자가 있는 쪽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아줌마는 뭘 골똘히 생각하는지 상자를 못보고 지나치고...

"아이 참, 내가 상자를 너무 구석에 놨나?" 아저씨의 한탄.

또 잠시후 어떤 남자가 힐끔 본것 같기는 한데 그냥 지나치고...

애가 닳은 아저씨가 막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동네 아줌마가

수퍼로 들어섰다. 아저씨 물건 팔 생각은 안하고 계속 바깥만 쳐다보는

데 아줌마가 자꾸 말을 시킨다.

"아저씨 뭐해요, 이거 얼마냐니깐~"

할수 없이 아저씨, 아줌마에게로 가서 이것저것 물건 싸주고 계산하고

그러는데 하필 그때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수퍼 앞을 막 지나쳐, 상자 쪽으로 바삐 걸어가던 한 잠바(밤색)입은

아저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는 되돌아

서 오던 길로 황급히 돌아가는게 아닌가? 내가 미처 수퍼아저씨를 부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후.

물건사러 들렀던 아줌마가 나가자, 상자가 없어진 걸 발견한 아저씨,

"아니 저게 어떻게 된거야,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그후,

수퍼아저씨는 나만 보면, 그 상자를 들고간 아저씨가 그 상자를 발견

한 순간부터 상자를 들고 황급히 되돌아가던 상황을 초단위로 다시

얘기해줄 것을 요구하며, 그 때 마다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그 순간을

놓친 사실에 대해 아쉬워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하며 나를

괴롭혔다. 어떻게 자신을 학대했냐고?

"내가 미쳤지, 미쳤어, 고거 멧푼 팔려고 그 순간을 놓치다니..."

나는 그후,

몇달간 그 일을 되풀이해 얘기해 주느라고 죽을뻔 봤고요~ ^^



아, 보구싶다. 수퍼 아저씨

맨날맨날 좋은 일만 하구, 오지랍 넓게 주위 사람들 궂은일 도맡아

하다가, 아주 가끔씩만 쬐끔 사람 괴롭히던 착한 아저씨, 어렸을 때

나의 우상 수퍼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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