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 신촌에 새로운 형태의 약국이 생겼다. 약국은 약국인데 샴푸에 과자도 팔고 화장품까지 팔고 있다. 물론 약을 조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편의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약국을 본 순간 아, 일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약을 사러 약국을 간다. 배가 고파서 라면이나 과자을 사야 할 때도 약국에 간다. 집에 휴지나 샴푸가 떨어져도 약국에 간다. 화장품을 살때도 약국에 간다. 땅값이 비싼 일본에서 약만 팔아서는 수지가 안 맞아서 이런 형태의 약국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약국 앞은 항상 바구니에 담기거나 쌓아 놓은 상품들로 가득하다. 특별히 싸게 파는 기획상품들이 모두 가격표를 붙이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가게 앞에 진열되는 단골 메뉴는 샴푸세트, 세제, 휴지, 1.5리터 음료수등이다. 그런데 그 가격이 정말 싸다. 일본의 물가가 비싸다 보니 처음에는 샴푸같은 것을 꼭 한국에서 사가지고 갔는데 요즘은 가격도 거의 비슷하고 더 싼 경우도 많아서 일본에서 사기도 한다. 디플레이션이란 말이 실감난다.
내가 일본 약국에서 약을 산 건 딱 한번 뿐이다. 아버지가 구심(救心) 이라는 약을 사오라고 하셔서 한번 산 적이 있다. 우리나라 우황청심원 비슷한 약인 듯 하다. 내가 가장 많이 사는 품목은 휴지, 샴푸, 세제 등이고 가끔 화장품도 산다.
동네마다 편의점이 있듯이 약국도 하나씩은 꼭 있다. 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잘 생각해보니 슈퍼에서는 기본적으로 샴푸나 세제를 팔지 않는다. 가끔 약국을 겸한 슈퍼도 있지만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동네슈퍼에서는 팔지 않는다. 그리고 슈퍼도 없고 편의점만 있는 우리 숙소 근처 같은 동네는 약국이 슈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가게마다 샴푸나 세제 값이 다르둣이 일본도 약국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 동네에 인접해 있는 약국은 사실 좀 비싼 편이고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면 멀더라도 시장이나 약국이 많이 모여서 경쟁이 심한 곳으로 가면 된다. 약국에 가면 일본 화장품을 파는데 화장품의 경우는 가격이 적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약국이든 이 가격에 소비세 5%를 붙여서 정가대로 다 받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시장에 가면 약국이 여러곳 있다보니 경쟁이 심해서 인지 화장품은 물론이고 모든 상품이 다 저렴하다.
심심하면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약국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한다. 그럴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본은 정말 다양한 상품이 있다. 약국뿐만 아니라 도큐핸즈 같은 잡화점에 가도 어떻게 저런 것까지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참 많다.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상품화 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역시 일본은 소비천국이다.
얼마전 한 TV프로에서는 젋은이들이 많이 가는 시부야에 있는 약국들의 치열한 고객 쟁탈전을 보여 주었다. 시부야의 중심가에는 수십개의 약국이 몰려있어서 고객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데 고객을 끌기 위해 특정 품목을 한시적으로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파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약국은 포인트 카드를 준다. 500엔당 도장 하나를 찍어준다. 나중에 이 도장을 모아서 돈처럼 쓸수 있다. 일본 숙소 근처의 약국은 얼마전에 갔더니 기존의 종이에다가 도장을 찍어주던 아날로그 방식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보는 카드형으로 교체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쌓인 포인트로 200엔 정도를 물건값에서 제해 주었다. 처음 포인트 혜택을 받아보는 거라 기분이 좋았다. 역시 공짜는 좋은 것이다.
일본에 가게 될 기회가 있다면 짬을 내서 일본 약국 구경도 꼭 해보자.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고 살만한 물건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