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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여고삐리에게 삥 뜯기고 있다...(10)*

펌글이 |2003.05.23 15:43
조회 977 |추천 0

어린 시절부터 읽어오던 동화에는...

양부나 양모에 대해 악독하고도 신랄한 비판의 대상으로...

표현되어 지곤 했다.....


그것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내 자신의 편협함이 적을 거라 믿어왔지만....

그것은 과신이었을 뿐...

나 또한 그녀의 새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중년의 남자....


나는 한 눈에도..

그가 그녀의 새아버지라는 것쯤은 쉬이 알 수 있었고....


그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였기에...

어느새 내 몸은 그에 대한 적대감으로 둘러 싸여져 있었다....


값비싼 고급 승용차에... 맑게 빼 입은 양복...

걸음걸이 하나에도 부귀가 느껴지는 그 남자......


작은 고시원방에서 가난에 찌들어 사는...

초라한 고시생에게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었지만.......


내게는 마음을 다해 아껴주어야 할 그녀가 옆에 있지 않은가......


잠시금 나는.. 그녀를 내 등 뒤로 숨긴 체.....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새아버지를 제지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마치 무시무시한 악마로부터... 공주를 지켜내야 하는....

백마탄 왕자라도 되는 듯한 환상에 빠져있었나 보다......


나는 그 악마에게...

용기 있는 한마디를 던져 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따님을 제 곁에 두고 싶습니다.......”


카... 이 얼마나 멋진 대사인가....;;


내가 생각해도 참 감미롭기만 한 내 말에.....

잠시금 당황해하는 그 악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내 입가는 잠시금 흐뭇한 웃음이 번져왔다....


음하하하.. 흠하하하하.....;;


그러나..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 악마만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상당히 당황한 듯 했고.....;;

곧 있어 나 또한 상당히 당황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갑자기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날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빠~~아~~아~~악~~~*”


그리고 그녀는...

내 가슴을 슬프게 하는 말을 해 왔다.....


“미친 새끼... 꼴깝 떨고 자빠졌네........”

-_-


뒤통수를 부여잡고.. 나즈막한 신음소리를 내는 나를 옆에 두고....

그녀는 자신의 새아버지와....

나를 쉬이 이해시킬 수 없는 그러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교까진 또 왠일이에요.. 나 귀찮게 하지 말라구 했잖아요......”

“오늘 회사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너하고 저녁이나 같이 하려고 왔지......”


“내가 왜 아저씨하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요....??”

“..........”


“부탁하건데... 저한테 신경 끄세요........ 집에서 아저씨 얼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니까요......“


그녀의 새아버지는 그같은 그녀의 차가운 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질 못했고......

그녀는 그에게 조금의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은체.....

차가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앞으로는 저 찾아오지 마세요... 아저씨 얼굴 볼 때마다....

저는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 손을 끌고는 다시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체.. 멀뚱히 서 있는 그녀의 새아버지...


내가 잠시금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세상에...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초라하고...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가엾은 표정....

사십대 중반의 중우한 남자가 갖기에는....

너무도 어색하기만 한......


그녀의 새아버지는 결코 악마가 아니었다.....


비록 그녀의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주기는 했지만....

그가 그녀의 아픈 상처를 감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단 한번밖에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던 나조차도 쉬이 느낄 수가 있었다....


공황에 빠진 듯한 내 뇌리는 한 순간 정지할 수밖에 없었고...


놀이동산에 있는 수많은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내 눈에는... 초라한 그 중년의 남자를 뒤로한 체 매정하게 돌아서던 그녀의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쉬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어색하게 굳어진 내 얼굴처럼...

그녀의 얼굴빛 또한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고.....

세상을 덮어오던 어둠처럼....

그녀와 나는 잠시금 그늘진 마음을 달래어야만 했다......


놀이기구를 타고...

같은 기구를 여러번 반복하며 탔지만...

우리는 그 어떤 말도 입에 담을 수가 없었고.....


바람의 싸늘함이 우리의 몸을 피곤하게 할 때.....


우리는 잠시.....

근처의 노란색 플라스틱 벤치에 몸을 앉혔다.....


우리의 기분과는 달리 놀이동산의 사람들은 밝은 웃음으로...

유쾌히 어울려 놀고 있었고...

그러한 사람들 사이로...

아이를 목에 태운 체.. 즐거이 걷고 있는 젊은 부부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들 젊은 가족들을...

끊임없이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들이 완전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그녀의 시선은 쉬이 옮겨지지가 않았다.....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서글픈 눈을 보며....

나는 조심스럽고도 나즈막한 말을 건넸다....


“아까... 너 새아버지.......”

“.........”


“좋은 사람 같아 보이더라.......”

“..........”


“너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던데.......”


겨울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고....

바람에 묻어난 그녀의 향기가...

내 코에 은은한 내음을 전해 줄 때.....

굳게 다물었던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랑 잘 지낼 수 있을까.......

차가운 땅바닥에서 추위와 외로움에 떨고 있을 우리 아빠를 놔두고....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그 사람이랑 잘 지낼 수 있니........“

“..........”


“많이 바라지도 않았어..... 우리 아빠를... 내가 조금만 잊을 수 있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기다려줄 수도 있잖아........

아빠 죽은지 일년도 채 지나지 않았어... 마치 아빠가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채 일년도 안 되서 그 사람 나한테 소개시켜주더라......

그런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니....!!!“


글썽이던 눈물은.. 어느새 그녀의 하얀 얼굴에 흐르고 있었고....

그녀는 굳이....

자신의 볼을 적시던 그 눈물을 닦아내려고 하질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 눈물만큼이나 슬프게 자리한 그녀의 아픔 또한...

쉬이 닦아내지는 않겠다는 그녀의 쉼없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까까머리의 한 소년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소년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들은 심하게 다투곤 했고....

철부지였던 어린 소년이 아무리 울음을 쏟아내도....

그들은 소년을 무시한 체... 그 싸움을 멈추지 않았었다.....


언젠가는 헤어지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들의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사춘기를 겪고 있던 소년에게는... 더 없이 큰 충격이었다......


매달렸다.... 이혼만은....... 이혼만은 안 된다고........

열여덟살짜리의 까까머리 소년은..

그들의 부모님의 바지 끄댕이를 잡으면서.....

그렇게 울어 재끼며... 매달렸다.......


그러한 소년의 눈물어린 애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이혼을 했고...

그들은 소년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이혼은 너를 위해서였다’고.....


더 이상 어린 소년에게....

험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아끼던 자식새끼를 위해서.....

그토록 울부짓던 까까머리 소년을 위해서.....

그랬단다......


소년은 너무나 감사해했다.....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는데 소년은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감사할 뿐이지........


그 감사함에 목이 메어....

그때부터 소년은.. 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철저하게 무시한 체.....

소년은 외기러기 생활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오년 뒤... 소년은 겨우 어머니와 다시 그 인연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란 것은....


어느새 소년의 어머니의 머리색을 하얀색으로 바꿔놓았고.....

소년의 어머니의 마음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시커먼 멍으로 가득 차 있기만 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오랜 방황을 했고....

그때의 나는....

길가를 지나던 젊은 부부만 봐도... 눈물을 흘렸으니......


그런 나였기에....

내가 아끼던 그녀만큼은.. 나의 전처를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랬겠지.....


그녀를 위해서라고....

그녀에게 새 가정을 빠르게 안겨주고....

그 안정감을 쥐어주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그랬겠지...


지금의 그녀는 쉬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니.. 평생이 지나도 이해할 수는 없는 거지만.....


어른이 된 그녀는....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새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지만... 이해했다고.....

이해할 거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주문을 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어버리곤 한다.....

그 사이 겪어야 할... 시간의 아픔들....

시간을 돌리지 않는 한... 그것은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어둠이 소리없이 흐느끼던 내 가슴을.....

감춰주며.....

그날은 그렇게 우리는 작별을 했다.....

 


그리고 몇일 뒤....


조금은 예상했지만.....

내 고시원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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