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준비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다시 들어오니,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네요. 하나하나 참 감사히 봤습니다. 땅을 나누어줄 당시에, 우리 아들, 딸이 흥쾌히 제 뜻을 따라주어서 괜찮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게 또 섭섭했을 수도 있겠네요.
딸은 시집가서 넉넉한 생활을 하고있고, 아들 역시 유학가서 부족한거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봉사활동을 자주, 주기적으로 가는건 아니지만, 남편회사에서 봉사활동 갈때마다 함께했었고, 항상 남편이 대학등록금 마련하기 힘든 아이들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제가 시댁식구들 줄 생각만 했네요.
다음부터는 주지말라고 하시는데, 그게 또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제 자식처럼 뒷바라지 했었고,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보내고 그런건 아니었는데... 한번도 섭섭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일 만큼은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네요.
안녕하세요.
일단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53살이 된 할머니에요. 한달전에 외손주가 태어났습니다.
전 결혼을 20살에해서 33년이 되었네요.
제 친정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전 1남7녀중 첫째딸로 태어났어요. 친정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선생님을 하셨구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집안의 딸이셔서 아버지께서는 정년퇴직후에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제가 맏딸이다보니깐, 결혼전에 어렸을때부터 저는 많은걸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엄마대신 막내를 엎어키웠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시기에 사셨던 분들은 대부분 형제가 많고, 터울도 많이져서 막내같은경우는 맏이가 키울것같네요.
농사짓는 집이 어디 넉넉하겠습니까? 그래도 아버지께서 선생님이시라고 저희 8남매 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게 뒷바라지 해주시고 막내같은 경우는 대학나와서 지금 고등학교 선생님이구요.
첫째딸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죠?
저는 20살때 정말 보잘것없는 우리 남편 저보다 3살 많은 우리남편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우리남편은 그때 당시 서울대를 다니던 학생이었습니다. 정말 부모님도 안계시고 열심히 공부하는 그 모습하나 믿고 시집을 갔었죠. 정말 먹고 살기가 힘들었고 남편 밑으로는 여동생 3과 막내도련님까지 4명. 시누이들과 도련님들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는데 우리남편하고 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편 학교 다니면서 틈틈히 여기저기 일하러 다니고 정말 결혼생활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달콤한 신혼도, 밝게 설계해 나가는 미래의 여유도 없었고 아가씨들과 도련님의 학비문제 해결하면 당장 먹고사는게 팍팍하고, 남편이 장학금을 놓치는 학기에는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아가씨와 도련님들 학비내고 우리남편 휴학했습니다.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봤죠. 그래서 합격을 했어요. 워낙에 학구파라서그런지 공부나 이런데는 잘 해서..
그렇게 공무원 시험을 합격해서 2년정도 일을 했습니다. 알뜰살뜰히 모으고 모아서 우리남편 다시 대학가서 졸업장을 따고 서울대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남편이 대학 졸업하고나서 취직을 하면서 저는 우리 살림이 조금 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왠걸...
첫째아가씨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보내고 둘째도.. 셋째도... 막내도련님까지.. 모두다 저희부부 알뜰히 모아서 막내도련님까지 열심히 공부시켜 다 좋은대학에 보냈습니다. 남편 공무원으로 일할때 제가 첫째 우리딸 출산하고 대학 다시 들어갈때 둘째 우리아들 출산하고.. 6식구를 책임지는 저의 어깨 정말 무거웠지만, 우리남편 언젠가는 큰 사람 될것이라고 믿고 꾹 참았습니다.
다들 대학을 보내고 시집 장가가고 그렇게 이제 우리 살림은 피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아빠를 닮았는지 제가 신경을 안써줘도 알아서 척척 잘해나갔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딸은 지금 의사이고, 아들은 지금 박사과정 밟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모두 다 뒤로 보내고 서서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건 우리 딸이 중학교 들어가서부터 입니다. 우리 남편이 서울 유명호텔에 조금 높은 자리로 가게 되었고 그 후로는 승승장구하며 지금은 사업도 번창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넓은 집에, 남부럽지 않은 가족들. 넉넉한 재산, 등...
억소리나게 돈이 많고 유명할 정도로 명예가 있는건 아니지만, 조카들 유학보내주고 대학 등록금 보태줄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 가슴이 손을 얹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도,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 돈하며 땅들...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려 과시해본적도 없고, 힘들게 땀방울 모아서 이룬것들.. 얼마나 소중한건지도 알고 제가 힘들었던 시절들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은 얼마전,
저희 친정에 계신 부모님들께서 우리 8남매에게 물려주실 재산을 일부 미리 상속을 하셨습니다. 농사 지으시던 분들이라 땅이 많았고, 아버지같은 경우에는 장손이라 물려받은 땅이 제법 많아서 저에게 주신 땅이 제법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땅 욕심내서 갖고있으면 뭐합니까? 제가 어디나가서 몇백만원씩 쓰고 그런사람도 아니고 그저 한달전에 태어난 우리 손주얼굴 보면서 좋아하는 할머니인데
그래서 남편과 상의끝에 제가 물려받은 땅을 다 처분해 첫째아가씨부터 막내서방님까지.. 똑같이 배분했습니다. 제가 고맙다고 공치사하려고 준건 물론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고 받는데 그게 그렇게 섭섭하더라구요.
그래도 같이 고생했었던 식구들인데 그깟 땅이 아깝겠습니까?
그러던 어제저녁.
둘째아가씨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왜 똑같이 나누어 주느냐부터시작을 해서, 나중에 또 유산받으면 그때는 자기좀 더달라고 라는둥.... 그러더라구요.. 그게 비단 둘째아가씨뿐만아니라..
아가씨 서방님.. 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는말이 비슷합니다.
왜 똑같이 나눠주느냐.. 나 더달라.. 언니 통큰줄 알았는데 은근히 적네요부터..
마음이 많이 안좋습니다.
다시 돌려받을생각은 정말 없지만, 이젠 무언갈 주고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네요.
잠을 설치고 설치다,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50대 할망구가 타자를 치면 얼마나 잘치겠습니까. 이렇게 긴 글 타자치는데 힘들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부모님이 안계셔서 시집살이나 이런건 모르고 살았는데, 시집살이.. 지금이나 예나 비슷한가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