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대학교 때 처음 서울에서 살게 된 나는 기숙사와 자취생활을 하였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학기 중에는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생활 4년 중 1학기를 제외하고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고, 방학 중에는 2-3개의 과외지도를 하여 용돈과 다음 학기 생활비를 벌어서 사용하였다.
학과의 특성상, 나의 성격상 학기 중에 봉사활동도 많이 하였다.
특히, 학교 내에 위치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저소득가정 아동결연활동, 수학학습지도 , 각종 행사지원 등으로 300여 시간이상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도 청소년쉼터, 정신과 낮병동, 보호관찰소활동과 장애인 검정고시 지도 등 각종 봉사활동을 하였지만 역시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꾸준한 활동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컴퓨터 동아리 활동과 동문회 활동을 병행하자면 항상 바빴던 나에게 친구들은 왜 항상 뛰어다니냐고 묻곤 하였다.
그러나 단한번의 휴학 없이 4년을 채우고 졸업시기가 다가오자 회의감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가 선택한 사회복지학으로서 취업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사회복지사의 근로여건이 열악한 상태였고, 심리학 분야의 취업을 위해서는 좀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취업제의가 들어왔으나 영어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영어 성적은 토익 700점 대였다. 각종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도 없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직업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캐나다의 care giver교육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6개월 교육 과정을 들으면서 영어실력도 높이고 해외취업도 모색해보고자 출국하였다.
그렇게 홀로 떠난 캐나다에서 월-금요일 6시간의 수업을 듣고 금요일에는 2시간동안 서술형 시험을-물론 영어로- 보았다. 낯선 의학용어를 영어로 습득하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영어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니어센터에서 거동이 불편한 캐나다 할머님들의 매니큐어를 칠해드리는 봉사활동 역시 간단한 영어 대화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점차 내가 다니던 학원은 수강인원이 적어 몰락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실습을 포함하여 6개월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게 되었으나 캐나다 취업비자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단, 유학비자를 연장하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기 죄송해서 한인가정에서 입주가정교사를 하여 그 돈으로 학원의 토플수업을 등록하였다.
그러다가 한인 식당에서 10개월간 홀서빙을 하여 생활비와 학원수업비를 제하고도 저축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매우 바쁜 식당에서 하루 10-11시간을 일해도 웃으며 성실하게 일했던 덕분에 사장님이 좋게 보셨는지 계속 일하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제의를 하셨다.
그러나 고민 끝에 한국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주는 TEFL 수업을 듣고 여행을 다니다가, 1년 6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토익시험을 치렀다. 930점대의 점수를 받고 영어강사분야의 취업을 알아보고자 했으나 부모님께서 완강하게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것을 종용하셨다.
사실 공무원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동안 부모님 뜻을 따르지 않았던 죄송스러운 마음에 일단 공무원 7급 종합반 학원을 다녔다. 그렇지만 수업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고 학원을 빠지면서 취업준비를 하였다. 다행히 대학 졸업 후 캐나다로 떠나기까지의 한 달 동안 사회복지사 1급 자격시험을 봐두었는데 합격하였기 때문에 자격증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내가 2-3년에 걸쳐 봉사활동을 하였던 대학부설 복지관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이 곳은 사회복지분야에서는 근무여건이 좋은 편이라서 이력서를 제출하였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해당 업무특성상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는 분야였지만,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지관에서 전화를 받았다. 예전에 내가 봉사활동을 할 때 계셨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꼭 면접을 보러오라고 연락하신 것이다.
나는 자신감을 갖고 면접을 보았고, 합격이 되어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합격 후, 천천히 운전면허를 취득하였으며, 전화를 주셨던 분은 현재 나의 팀장님이시다.
예전과 달리 사회복지분야도 근로조건이 많이 개선되어 현재의 직장에 만족하고 있고, 더 나아가 사회복지사가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물론, 해외에 가서 2년이나 먼 길을 돌아 취업했고 영어자격증은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청소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로서 국제교환학생 봉사자 관리나 공부방에 원어민 강사를 고용할 때 등 영어실력을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해외체류의 경험이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어 각종 상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어떠한 일, 또는 활동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여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매우 바쁘고 피곤해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바빠서 정해진 봉사활동 날에 자주 빠지는 봉사자들보다는 바빠도 최대한 활동에 참가하고 최선을 다하는 봉사자들이 취업에 좋은 결과를 얻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밤을 새고도 봉사활동을 오곤 하던 한 봉사자는 각종 대기업과 은행 등의 면접에 합격했고, 면접을 볼 때 1년 이상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던 점에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 봉사자는 봉사활동을 할 때도 없으면 아쉬운, 정말 필요한 봉사자였다.
구직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어떠한 일이든 최선을 다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인맥을 잘 형성하여 취업이라는 어려운 길에 조금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란다.
더불어 본인의 적성과 흥미도 잘 파악하여 갈등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부모님 말씀대로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였다면 나는 아직도 머리를 싸매고 갈등하며 수험교재를 붙잡고만 있었을 것이다.
주변인의 의견이나 시선을 의식하다가 진심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놓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준비된 사람이 취업하는 것처럼 행복할 준비가 된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 취득도 중요하지만 평소 밝은 표정과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주변인에게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결국은 취업에서도, 인생에서도 행복을 거머쥘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