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인간은 오빠에게 뭐라고 거짓말을 하고 올라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거리를 헤메다 몇시간 전에 핸드폰을 끄고 말았다.
두달여전에 죽으러 가는 것처럼 죽음에 관한 책을 두권이나 시위하듯이 책상 위에 얹어 놓고 고향간다며 내려갔던 때 꺼 두었듯이...
아니 그전에도 자주 꼭 3시간씩 핸드폰을 꺼 두었더군...
내가 그인간을 만난 건 86년 3월이었다.
지금 형님이라고 부르는 직원 한명이 그 전해 부터 자기 사촌이 있다며 소개 시켜 주겠다고 자랑을 하더니 웬일인지 엉뚱한 사람을 소개 시켜 주곤 그여자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가 갑자기 나에게 소개를 한 것이다.
당시 나는 친구를 좋아하던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붙어서 구설 수에 올라서 얼른 장가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터였고 정말로 좋아하던 첫사랑과는 이어질 수 없는 상태였기에 아무여자나 살다 정들면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던 시절이었다.
얼핏 보기에 요저숙녀로 보였고 가난한 집 딸이기에 엄청 살림을 잘할 줄 알았고 몇달 사귄 후에는 요리도 제법 잘한다고 느꼈었다.
유난히 깔끔한 것을 좋아했고 당시 상황도 상황이였지만 연애한다는 자체의 과정이 귀찮게 여겨지던 상황이었으므로 얼른 결혼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 일년을 사귀었는데... 아마 일년 동안 삼백육십번 이상 만났던 것 같다. 어떤 날은 하루 두번씩 만나기도 했었으니까...
아마도 그해 가을인가 관계를 가진 것으로 기억된다.
롱허리를 지닌 숏다리인 그녀는 그날 잠자리를 더럽다는 말한마디로 자고난 시트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자부하던 나는 처녀임을 확인할 의지도 그리 없었기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해 늦가을이었던가...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당시 무슨 여자가 자기 임신 가능일도 모르냐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녀는 내가 낳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극구 수술을 해야한다하여 병원엘 들렀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또 임신을 하고 또하고 하여 아무튼 연말까지 3회에 걸쳐 병원엘 갔어야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다른 맘을 먹었을까봐 불안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3번씩이나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녀의 처녀시절에 만난 친구들의 와이프랑 모임에서 어느 순간에 돈이 전혀 없는 그녀가 돈을 쓰는 광경이 목격 되었다.
한번은 돈이 없다며 당장 쓸 돈을 나에게 달란 적도 있었고...
아무튼 지방에서 결혼하는 친구놈 결혼식장에 가는 길에 당시 나만 총각이고 친구들은 모두 기혼이었으므로 부인들의 성미를 잘 아는 처지라 여우같은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바가지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고속버스타기 전에 미리 일러두었는데도 휴게실에서 ***씨 덕분에 아주 잘 얻어 먹었노라고 그중 가장 여우짓하는 친구부인이 이야길 했었다.
솔직히 결혼을 한달 앞두고 그녀를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무언지 몰라도 머리를 강하게 두드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질 못했었다.
그런다고 어찌 할 것인가? 3번씩이나 임신 중절을시킨 못된 놈이 되어버린 나의 상황을....
마침 할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2월초에 에정되었던 결혼식을 4월에 하게 되는 바람에 예복도 두번씩이나 해야했고....
아무튼 그리 결혼을 한 첫달에 200만원이나 펑트를 내었다. 당시 살림은 어머님이 하셨으니 살림에 들어갈 리도 없었는데...
아무튼 부주금으로 들어와서 비상금으로 간직해 두었던 내 쌈지돈이 그냥 날아간 것이었다.
당시 대기업의 초봉이 삼십몇만원이었으니... 그 이백만원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으리라...
이유를 물으니 살림살이를 많이 장만해오질 못해서 그런 것이라 했다.
신혼 몇달만에 어머님은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살림을 더 무섭게 한다'며 그녀에게 살림을 몽땅 맡기셨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집을 옮긴 직후에 또 이백만원이 펑크가 나서 어머님께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여 갚았다.
그해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반지도 잡혀서 예물이 단 한개도 남지 않게 날려 버리고...
그 다음해는 300만원이 펑크가 났고... 결국 가계부를 쓰라고 요구를 했으나 매년 한두달 쓰는둥마는둥하고 말았으며 그것도 항상 뭉뚱그러져 있어서 하나하나의 가격이 표시된 것이 없었다.
그녀와 싸운 것은 항상 이 금전 문제와 말없이 사라지는 버릇 때문이었다.
왠 신혼녀가 그리도 외출이 잦은 것인지... 또 어디를 간다는 말이 없이 사라져야하는 것인지...
한번은 그문제로 심각하게 싸웠더니 집을 뛰쳐나가서는 새벽에 들어왔다. 그날 밤새 얼마나 한강가며 동네 골목을 그녀를 찾으러 쏘다녔는지...
어디갔다 왔냐고 다그쳤더니 답변이 없다.
두번째 심각하게 싸울 때 또 뛰쳐나가길래 이번에도 나간다면 끝이라고 하였다.
뒤쫓아서 따라나갔다가 못찾고 들어오다 보니 집문앞에서 울고 있었다.
단 한대도 때린 적이 없었고 단지 논리에 맞게 말로 추궁을 하는데 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야만 했을까?
한번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동생 내외를 동네로 이사오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봐주겠다며....
결국 아이들을 시어머니가 도맡아 돌보고 그녀는 밖으로 싸돌아다니느라 어머님의 불평을 고스란히 내가 들어야만 했다.
'이나이에 사돈네 애돌봐주게 생겼냐'며...
결국 그 처남댁은 나를 보아도 어머니를 보아도 인사를 하지 않고 쌩하는 냉기가 돌았다.
그런데 오빠에게 그 동생네에 가서 잔다며 거짓말을 하고 서울에 올라 왔던 것이다.
행여나... 그곳에 들렸을까? 아마도 그곳에서 불렀어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갔다면 어떤 거짓말을 또 했을지 사뭇 궁금하다.
아무튼 그당시 부터는 매년 1000만원씩 빚을 지고 그러다가 재작년에는 3000 작년에는 5700만원의 빚을 졌다.
올 3월까지도 1000만원을 또 지고 사라졌지....
얼마전에 동네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이웃사람도 아내가 집을 나갔단다.
7,500만원의 빚을 지고서...
그여자도 그 금액을 어디에 썼는지 도대체 이야길 않한단다.
그 착하기로 소문난 그사람도 아내를 때리고 두들겨서 이빨이 두대나 부러지는 소동을 빚었다.
그런대도 그여자는 남은 식구들이 살아야한다며 위자료는 필요없다고 말하고 집을 나갔다.
그런데 그녀는 더 많은 빚을 지고 더구나 집사는데 단 한푼도 보태지도 저금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위자료타령을 했고 고소한다는 말도 하다가 추궁에 못이겨 집을 나가버렸다.
왜 동네에서 착하다고만 소문난 사람들만 아내를 잃어버리는 것일까?
지금도 지방의 오빠집에 얹혀 살면서 서울에 올라오는데 집에는 연락은 커녕 오빠집에도 행선지를 거짓으로 고하고 다닌다.
아랫집에서는 년중행사로 동네가 떠나가도록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남자가 폭력을 행사한다.
그여자도 그녀처럼 옷을 잘입고 다닌다. 그러나 집을 나가지는 않았다.
나도 통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철저히 감독하고 했어야 옳았을까???
오늘도 술을 마신다.
잠을 자야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