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점의 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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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사진은 바라보기로부터 시작된다. 사진가는 대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눈앞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망막에 맺힌 상을 필름면에 담아낸다. 사진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사진가가 무엇을 바라보았느냐에 달려있다. 사진가가 본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인상과 이해가 사진으로 찍혀지거나 혹은 만들어지고, 사진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대상에 대하여 발견하게 하고 인식하게 한다.
사진에 담기는 모습은 바라보기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가가 선택한 관점은 곧 대상을 이해하는 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관점의 기술이다.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에 미쉘 투르니에가 글을 쓴 『뒷모습』은 주된 피사체인 사람의 뒷모습에서 비롯된 상상과 의미부여를 담고 있다.
에두아르 부바(1923-1999)는 파리 태생으로 에콜 에스티엔느에서 수학하고 사진판화 공방에서 일을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본격적인 사진활동을 시작하여 코닥상을 수상하였으며,
브라사이나 로베르 두아노 등의 동시대 사진가들과 함께 작품을 발표하였다. 고급 예술지인 『레알리테』에 사진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얻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부드러운 사진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1977년 아를르 사진축전을 기획하였고 1984년 프랑스의 사진부문 국가대상을 수상하였다.
부바의 사람에 대한 관심은 존재와 아름다움으로 집약되는 것이었다. "나는 전쟁을 알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나는 세상에 그러한 것들을 더하고 싶지 않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에 대한 찬미임을 느꼈고,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그것을 이루는 도구이다" 라는 그의 천명에서 알 수 있듯이 부바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다.
글을 쓴 미쉘 투르니에(1924- )는 노벨 문학상 발표철마다 프랑스인들에게 첫 번째 후보자로 꼽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나이 43 세에 집필한 데뷔작 『방드리디 혹은 태평양의 끝』은 프랑스에서만 400만부나 팔린 현대 불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면모들을 재조명하고 재해석하는 특징을 보인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형식으로 다루는 그의 작품은 동화적이고 악마주의적이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면서 유머러스하고 쾌락주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신화적 상징과 형이상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문명과 야만, 실존과 개인, 시간과 공간 등의 주제들을 탐구해온 투르니에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짧은 글 긴 침묵』, 『예찬』과 같은 비소설류가 주로 소개되었다.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와 문필가 미쉘 투르니에의 만남은 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인생을 통해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4년 두 사람이 함께 캐나다를 여행하며 찍고 쓴 것을 모아 펴낸 『캐나다 여행수첩』을 시작으로 해서, 1993년 여기에 소개하는 『뒷모습』이 출간되기까지 미쉘 투르니에의 사진에 관한 글쓰기 중에 에두아르 부바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등장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쉘 투르니에는 젊은 시절 독일 작가 레 마르크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는데, 레 마르크가 그를 만났을 때 "당신의 번역은 내 소설보다 뛰어나다"면서 "그중 가장 탁월한 부분은 원작에도 없는 대목들"이라고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미지에 걸맞는 신조어 만들어내기를 즐긴다는 그의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글쓰기는 『뒷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는 것과 당기는 것」에서 투르니에는 미는 것은 학습에 의해 습득되는 것이며, 당기는 것은 동물적인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시지푸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미는 행위가 언제든 손을 떼고 가버릴 수 있는 인간 의지의 일면으로 읽혀질 수도 있는 것처럼, 미는 것은 의지의 발현이며 당기는 것은 노예의 구속된 행위라는 것이다.
이 글과 함께 편집된 사진 속 포루투갈의 바닷가에서 배를 진수시키기 위해 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힘겹게 기울어진 몸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주체적으로 보인다.
◈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언젠가 선배 사진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트랜스 젠더를 촬영한 경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얼굴이 슬퍼보이는 건 너무나 완벽하게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갖춘 앞모습 뒤에 숨겨진 어깨 때문이야.. 그 몸은 마치 무대 세트같아. 조금만 비껴서 바라보면 엉성하게 짜맞추어진 뒷모습 때문에 마음이 서늘해지지." 숨겨진 진실은 그것을 직면하게 되기까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등 뒤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찍히는 사람의 의식이 닿지 않는 무대의 뒤쪽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모든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듯한 뒷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 밋밋한 매력에 눈길을 사로잡히고 만다. 뒷모습에 거짓을 담을 수 없다는 면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은 서로 다른 착시점을 가지고 있을 뿐 같은 방향으로 서서 또 다른 누군가에겐 공평하게 등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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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 실린 사진 중 일부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자기애적 소망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유한하고 덧없는 존재의 뒷모습은 어쩔 수 없이 애처롭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를 위한 앞모습, 너를 위한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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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감이 형성되기 이전의 아이의 뒷모습은 보살피는 사람의 것이다. 정교하게 땋은 머리와 천사의 날개옷은 아이의 몫이 아니라 그들을 보살핌으로써 아직은 그들을 소유하고 있는 엄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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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 실린 사진 중 일부
청년기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거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울 속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를 찾아내는 일일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추구하는 지표로써 작용한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청년기와 장년기를 구분짓는 중요한 변화 중에 자아중심성의 탈피가 흔히 거론되는데, 이는 나 자신에만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속성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속의 앞모습은 사진가와 피사체가 마주보며 찍혀진 것이며, 그것은 보는 사람에게 대상에 대한 동일시를 유도한다. 매끈하게 치장하고 근사하게 차려입은 모델이 찍혀진 광고 사진은 소비를 통한 행복의 환상에 쉽게 빠져들도록 만든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황급히 못을 갈아입는 모델의 뒷모습은 트루니에의 말대로 '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존재를 회복하여' 완강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드러낸다. 빨려들어 가기보다는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뒷모습에 대한 관점이 드러내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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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 실린 사진 중 일부
사진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내가 본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무수히 많은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수잔 손탁은 이를 두고 동굴 속의 그림자만을 보던 인류가 사진을 통해 그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이라는 거울은 우리를 차마 직면하기 어려운 뒷모습에까지도 익숙하게 만들어버리는 성숙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득 어릴 적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얼굴은 없고 뒷모습만 있는 것은? - 세월... 다가오는 시간의 앞모습을 누가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세월의 뒷모습만을 볼 뿐이다. 나의 어머니는 어쩌자고 어린 나에게 이런 심오한 이야기 거리를 심어주었을까 싶다. 진실의 그림자를 더듬기라도 하듯, 헤어져 돌아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다보듯, 깊어가는 가을이 올해의 뒷모습을 어떻게 장식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글/신수진(사진심리학 /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즐거운 책보기』는 사진과 관련된 글이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모든 책에 관한 컬럼이다.
글쓴이 신수진은 사진이론과 시각을 전공한 심리학 박사이며, 현재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본 기사의 내용은 '월간 포토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