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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사두 썬다싱의 명상 1

ㅎㅎ |2007.07.17 10:10
조회 228 |추천 0

인도의 사두 썬다싱의 명상 1




1. 어느 어두운 밤 나는 기도하려고 숲 가운데 들어갔다. 바위 위에 앉아 나의 깊은 요구를 내어놓고 도와주시기를 구하였다. 잠깐 있노라니 한 가난한 사람이 나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보고 아마 구차한 사람이 나에게 빌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담요 하나밖에 없다. 그대는 이 가까운 동리에 가서 구걸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번개와 같이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물 붓듯 하는 은혜를 나에게 부어주고 문득 사라졌다. 아아! 이는 내가 사랑하고 섬기는 주님이시다. 주님은 나같이 가련한 피조물에게서 아무것도 얻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고 부요 하게 하시려고 오신 것인 줄 밝히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미련하고 통찰력 없음을 슬피 울며 그곳을 떠났다.

2. 나는 눈물로서 기도하며 주께 나의 영을 바쳤다. “나의 주이신 신이여! 나의 생명의 생명, 나의 영의 영이시여! 긍휼로서 나를 살피시며 성신으로서 부어주소서. 나의 마음은 당신을 버리고 달리 받칠만한 사랑의 전당이 없나이다. 생명과 일체의 부여자인 당신 자신 외에는 당신에게서 아무 은혜도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그 안의 보배와 하늘까지도 요구하지 않나이다. 다만 당신을 사모하며 또 구하옵니다. 당신이 계신 곳 거기가 천국이므로 내 마음의 기갈은 다만 이것을 지어주신 당신에 의해서만 만족할 수 있나이다. 오! 나의 창조주여! 당신은 나의 마음을 다만 당신을 위하여서만 지은 것이요 다른 아무것도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마음은 당신 안에 있는 외에는 평화와 휴식을 얻을 수 없나이다. 나를 창조하시고 또 평안을 구하는 욕구를 주신 당신 안에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심중에서 당신을 거역하는 모든 것을 없이하여 주시고 내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시며 이와 같이 영원히 지배하여 주시옵소서.”

3. 내가 이와 같이 기도하고 일어날 때에 한 빛나는 모양을 보았다. 그는 광휘 찬란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내 앞에 섰다.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또 나의 눈은 눈물에 젖어서 밝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명을 주는 광선과 같은 빛이 몹시 힘있게 나의 마음에 부어들어 올 때 나의 영혼은 그 중에 잠겨들어 갔다. 그때 곧 나는 사랑하는 나의 구주가 내 앞에 선 것을 알았다. 나는 곧 나의 섰던 바위에서 내려서 그의 발 앞에 몸을 던졌다. 그는 그 손으로 친히 내 마음의 열쇠를 잡았다. 그리고 나의 열쇠로서 나의 내부의 실을 열고 그의 거룩한 임재로서 내 마음에 충만하였다. 그래서 나는 안을 보나 밖을 보나 어디든지 다만 그만을 보았다.(천사나 성도나 악마나 다 우리 마음의 자물쇠를 열 권리와 능력이 없다. 또 우리 자신도 할 수 없다. 다만 우리 마음을 지으신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의 마음이 신의 보좌요 성인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이 그가 들어온 때부터 나의 마음속에는 천국이 열리었다.

 

예수님

4. “나의 참된 아들아! 참된 행복은 육안으로 보는 자에게는 없다. 그것은 영의 눈을 뜰 때에야 아는 것이요 마음에 있는 것이다. 팔레스틴에서는 수천 인이 나를 보았다. 그러나 모두 참 행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썩어질 육안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은 썩어질 물건밖에 없다. 육안으로는 영원하신 영적 실재자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네 자신이 네 영혼조차 볼 수 없거든 어떻게 그 창조자를 볼 수 있느냐. 그러나 영안이 열리는 때에는 너는 확실히 영인 그를 볼 수 있다. 또 지금 네가 나를 보는 것은 육의 눈이 아니요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팔레스틴의 모든 사람들은 다 육안으로 나를 보았다. 또 썩어 없어질 인간으로 된 줄 생각하였다. 내가 죽을 육체를 취한 것은 이로써 세상 죄를 소멸코저 함이다. 그리고 죄인을 위하여 구원의 업이 완성될 때에 죽을 육체는 죽지 않는 영광 중에 변모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부활한 후에 나를 볼 수 있는 자는 영적 시각을 받은 자뿐이다.

5. 이 세상에 나에게 대하여 아는 자는 많으나 나를 아는 자는 적다. 그것은 저들이 나와 개인적으로 직접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참 이해도 없고 나의 안에 있는 신앙도 없고 나를 저들의 구주와 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마치 소경으로 난자가 붉고 푸르고 누른 여러 가지 빛깔에 대하여 말은 하나 그 미와 관상적 희열은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눈을 뜨기 전에는 참 빛깔을 알 수 없다. 비록 박학한 사람이라도 그 영안이 뜨이기 전에는 나를 알 수 없고 나의 영광을 볼 수 없으며 내가 신의 화신인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많은 신자들은 저들의 마음에 내가 임재 하는 것이 영적 생명과 평화를 주는 줄 알고 있다. 그것은 옳으나 직접 나를 볼 수는 없다. 마치 사람이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으나 눈약 한 방울을 그 눈에 떨어뜨리면 눈은 그것을 보지 못하나 눈약이 눈 안에 있으므로 눈을 상쾌하게 하는 것같이 나의 내재가 그의 내적 광명의 눈을 밝히고 시력을 증진케 한다. 참 평화는 내가 신자의 마음에 임재 하는데서 생긴다. 그러나 나를 볼 수는 없고 다만 그 힘을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행복하게 된다. 또 나의 현재에 의하여 그들은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 감정의 본체인 정신이나 마음을 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나는 영이기에 나의 사랑하는 무리에게 숨긴 만나가 되어 생명과 기쁨을 준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6. 병중에는 입맛이 없어진다. 비록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도리어 맛이 나쁘게 느껴진다. 그와 같이 죄는 영에 관한 미각을 상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아래서는 나의 말이나 은혜, 나의 임재도 죄인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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