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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징그러운 나를 낳아줬다는 엄마1..

울홧병 |2003.06.10 16:19
조회 8,162 |추천 0

12년차이나는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는

불우한 친정생활이 지겨워 나의 아버지랑 결혼이란걸 했다.

요즘의 전문대출신인 아버지와 초등학교도 제대로 안나온 이름만 간신히 쓰는 엄마.

머리엔 든건 많지만  그특유의 무능함으로..점철된 아버지의 인생..

항상 온화하며 부드러우며 말이 없으셨던 내아버지..

어려서부터 생활고에 지쳐 악을 쓰며 살아왔던 엄마..

전혀 맞지도 않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해 아이들을 낳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10살되던해 아버진 중풍으로 쓰러진다.

반신불수에 언어장애.시력상실.똥오줌을 가리는 생활을 내기억엔 2년정도 하신것 같다.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알거지로

전세에서 월세쯤엔

아버지 병원비가 필요해.

엄마는 한의사한테 몸을 팔아 아버지를 치료한다.

이건 엄마입으로 직접들은 얘기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내막..

꼭 굳이 시집가 잘살고 있는 딸한테 알려줘야 하는지 의문스럽다..무슨뜻으로 말을 해줬는지..

전혀 이해할수없다.

색기화냥엄마의 그럴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라는 것인가..

지나치다못해 말로 표현할수 없이 살아온 인생을 이해해 달라는 것일까?..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아버지가 그렇게 까지 마누라 돌리면서 나아서 살고 싶었을까..

엄마말엔 혹여 아버지가 나아서 돈을 벌어올까 싶어서 였단다..

내가 볼땐 전혀 아니다..

아버진 2년동안 앞도 못보며 말도 못하는 그야말루 식물인간 그자체였다..

엄마의 그 끔찍한 지극정성에 아버지도 감동해 일어나셧으니 할말은 없다.

 

 

엄청난 고생끝에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공부 당연히 지진아였다.

육성회비 당연히 6년동안 내고 다닌 기억없다.

난 지진아에 쓸모없는 아이였다.

선생들 눈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준비물 당연히 해간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외가에서 장녀다.

당연히 여동생들이 많다..( 엄청 나게 잘나빠진...)

졸업식때 육성회비도 못내서 졸업도 못하게 한다구 난리치는 선생앞에

엄마는 이쁘게 파마하구 매니큐어와  뽀족구두 그리고 이쁜 꽃반지를끼고 핸드백을 메고 왔다.

선생눈길이 어처구니 없어보인다..

자기는 그렇게 이쁘게 꾸미고 다니면서 딸 육성회비두 안주냐~ 뭐이런 눈초리다.

나를 낳아준 엄마는 그런건 눈에도 안들어온다.

 

난 엄마에 대한 애증이 많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엄마를 신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당연히 나와 여동생들은 엄마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그놈의 더러운 색기화냥이모들과 할머니땜에..그리고 제일 중요한 색기화냥엄마땜에..

외갓집 인간들..

" 외할머니..   큰이모.. 중간이모.. 막내이모..  삼춘들.." 모두 나더러 중학교 가지말고

공장다니며 집안 도우라고 했다..

그나마 엄마의 한으로 남은 공부의 미련땜에

중학교엘 가게 되었다.

내동생 국민학교 5학년때 너무 못살아

동상걸린발 치료 안해 발톱 전부 무좀으로 변질돼 30대 중반인 지금도 웬만한 남자들보다 심한 두툼한

모양의 발톱을 지니고 있다.

나를 낳아준엄마란 사람은 화장하구 머리하구 옷입구 놀러다니구 돈쓰러 다니구 남자만나구 이런데만 관심있는

색기가 철철 흐르는 천박한 사람이다.

외갓집 인간들..할머니..그휘하 이모들 모두 그렇다.

아아..싫다..

내가 저런인간들땜에 이렇게 정신이 멍들정도로 살아왔다니..

 

유년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저녁이면 나와 동생들을 모두 재우고 밤마다 마실을 간다.

워낙 촌구석이다 보니 말도많고 탈도 많다.

아버지가 아프고 나선 더욱더 남의가장한테 색기를 휘날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 술한잔 받아줄께~~ " 한다.

그러면 동네남자들

모두 나를 낳아준 엄마한테 단한마디에 쓰러지고 만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싫어했다.

엄마가 돈벌러 가서 내가 새벽에 물길러 가면

동네 아줌마들 내가 물도 못길러가게 텃세를 부렸다.

눈치로 왜그런지 알았지만

커서 생각해보니

나를 낳아준엄마의 행실땜에 소위 왕따를 당하는 거였다..

너무너무 지겨웠던 내 어린시절..

정말 지우개가 있다면 쓱쓱 지워버리고만 싶다.

다 잊어버리고  살고싶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때 소위 그 도시락을 싸준적이 없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밥해서

맨날 시어빠진 김치 한쪽 싸가지고 가는게 일이었다.

물론 엄마도 고생 많이 했다.

새벽에 나가 청소부일을 열심히 했으니..

난 장녀로써의 의무감으로

새벽4시에 일어나 (아줌마들의 텃세땜에. 물길어가면 욕하구 소리지른다..구박한다)

물을 깃고..밥을 하고 김치하나로 식구들 밥을 차려주고 김치하나로 도식락을 싸

학교에 간다..

 

가난하게 사는게 지겨워서 였을까..

외갓집이 너무좋았다.

큰집에 큰방들. 엄청이쁜이모들. 돈잘버는 삼춘들..

외할머닌..

철이 없어서..너무 좋아서

찾아간 외손녀를 보기만 하면

송충이 보듯했다.

" 왜왔니~ 가라~`"

이모들 삼춘들 본척두 안한다..

외갓집 식구들이 아버지와 우리들을 모두 싫어했다..

왜냐면..

자기네딸  자기네누나..언니..고생시킨다구..

하하하하

어이가 없다..

중풍은 누가 걸리고 싶어 걸리나.

그잘난 그집의 장녀는

내아버지와 어린자식들이 싫어

집엔 안들어온다

허구헌나 밖으로만 나돈다.

지금커서 생각해보니 남자들하구 동거한거였다.

이얘긴 엄마죽기전에 한번 할생각이다..

내나이 10살때부터 고생한건 충분히 헤아리지만

엄마노릇 제대루 한거 없으면서 받으려구만 한다구 뒤집어놓을 작정이다..

 

색기충만한 엄마와.몸이 불편한 아버지.

자식새끼는 먹여살려야 겠구

버리자니 찜찜하구..해서 걍 동거나 하면서 돈이나 벌어서 쌀이나 간신히 팔아줬나보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의처증으로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집에 들어오면 난리를 부렸다..

살림을 부시고 엄마를 때리고

음..

엄마가 없을땐 내가 대타였다.

주로 내가 맞았다..화풀이 대상이었다.

내가 왜맞구 살았는지 이제야  40이 다되서야 알게되다니..난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다..

정신병원에 가보고 싶다..

가난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인생..

불쌍한 내여동생들..

지금도 색기충만한 엄마와 사기꾼 남동생새끼..

불쌍히 돌아가신 내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 맘을 헤아리게 됏다니..

 

난 어려서부터 1`0살부너

" 넌 돈벌어서 엄마 갖다주구 동생들 키워야 한다." 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았다.

소위 정신교육대상인것이다.

내여동생들 또한 그렇다.

쇄뇌가  이렇게 무서운줄 지금에야 깨닳는다

난 내가 없으면 친정집이 특히 친정엄마가 어떻게 되는줄 알구 살았다.

내동생들 또한 엄청난 피해자다

그소위 색끼 철철넘치는 엄마땜에..

막말루 친정엄마똥구녕에 돈만 발라줐다.

미친듯이 벌어서 미련없이 십원한장까지 다 갖다줬다.

난 미친년이다..

화냥끼 로 똘똘뭉친 내 엄마땜에 나와 내동생들 인생은

썩어빠진 도끼자루가 됐다..

 

중3땐 공부는 잘하면서 집안이 불우한.. 한마디로 찢어지게 못사는 아이들한테 주는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고등학교..당연히 야간상고 다니며 공부 절대 못해

1학년때부터 학교급식실에서 음식허드레기 버리며 설겆이 하며 라면끊여주는일로 돈을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너무힘들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죽으면 죽었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든다..

아침7시에 나가 저녁 11시에 들어오는 생활을했다.

나를 낳아준 화냥엄마.

청소부한다구 새벽 5시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온다..

그것두 한달에 한두번..많아야..

내가 고2땐  청소부하는 색기화냥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몸이 힘들어서 신장기능이 많이 떨어졌다구 죽는다구 엄살떨던 생각난다.

병원다니며 약먹구..

지금도 역시나 자기몸 엄청 위하며 산다.. 정말 해외토픽감이다.

나 그 어린나이에 새벽 5시에 일어나 밥하구 우물물깃구

빨래다하구 김치 담그구

그나마 쌀떨어지면 엄마회사로 전화 한다..

나  : " 엄마 쌀떨어졌어"

엄마  : " 벌써 떨어졌니" 니네들은 거지새끼냐.  밥만먹게  아이구 지겨워라.. 어쩌구 저쩌구~~

  그러면서 몇일뒤에 들어와 쌀 달랑 20kg 사주구 가버린다..

쉬어빠진 김치도 없어 집에서 만든 조선간장 (당연히 깨소금 참기름없다) 만 간장종지에 올려

밥을 맛나게 멋는다..

그나마 엄마가 안오면 밥두 맨날 부지기수 굶는다.

그땐 당연히 밥두 굷구 도식락두 안싸가야 하는줄 알고 살때였다.

집에 붙어있을땐..그나마..

주인집?엄마랑 남자들 만나러 다니기 바빳다..

주위 동네조신한 아줌마들의 차가운 시선..

정말 힘들었다.사는게.

쌀떨어지면 영세민한테 보급되는 밀가루를 가지고 국수만드는 공장에 가서 국수를 만들어

국수를 끊여먹었다..

양념두 없는 국수  뭔맛이 있을까..

허나 남은 식구는 감지덕지 하며 먹고 살았다..

천덕꾸러기였다..남은식구들..

화냥엄마한텐 철천지 웬수였겠지..아버지와 자식들이..

내가 고1때 등록금 안내서 학교를 그만둘려구 했다.공장다내며 돈벌려구.

화냥엄마 지금도 보통엄마들은 엄두 못내는  30day 화이트크림..아모레에서 나오는거..발랐다..

얼굴 화이트해지라구..

어느날은 반지를 끼고 와서 자랑한다.

주웠다구..

그러면서 난 학교에서 맨날 맞구 ( 선생한테 학생수첩으로 싸대기 맞구 손으로 얼굴 맞구..온갖 모욕다당했다) 2/4분기부터는 급식실에서 설겆이 하며 돈벌며 학교다녔다..

우리엄마 화냥엄마..

맨날 양품점에서 옷맞춰입고 놀러다니고 집에 안들어오고 남자만나며 세월보냈다..

나 당연히 엄마를 향한 증오의 구타를 일삼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길 엇었다..

엄마대신 맞고 사는게 당연한듯이..

1시간 내내 맞는다..

온몸이 멍투성이며 얼굴멍은 기본  머리의 혹은 한달 간다..

그혹이 없어지기두전에 난 또 한시간 넘게 꼼짝도 못하고 또 맞는다.

내여동생들도 아버지 한테 그렇게 맞으며 컸다.

아아..

불쌍한 내인생..

불쌍한 내동생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걸 40이 다된지금에야 깨닳는다.

내가 내아이들을 아버지한테 맞은것처럼.

또는 엄마한테 맞고 욕들은것처럼 한치도 벗어남없이 똑같이 한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내가 무지하고 정신이 황폐하여 아이들한테 퍼붓는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맨날 반복이다.

형편이 조금만 나아지면 정신과를 갈 생각이다.

나부터 치료받아야 내아이들도 상처주지 않을것 아닌가..

난 참으로 못나고 무식한 엄마다..

 

화냥엄마..

색기엄마..

지겨워서  ( 내가 결혼해 보니..이해한다..얼마나 고되고 힘들 삶을 살았는지..)  우리들한테 화풀이한다.

울음소리 밖으로 안나가게 우리들입

세수수건으로 입틀어막는다

아버지 혁대로 우리를 때린다.

엄마가 남편 가죽혁대로 입틀어막고 아이들 때리는거 들어본적 있는가..

뒷산가서 회초리 엄처나게 많이 꺽어온다

내가볼땐 적어두 30개

그게 다 부러져야 ..

팔이 아파야 안때렸다..

자식이 아니라 완전히 화풀이 대상이다..

증오의 저주의 대상이다..아버지와 자식들이..

 

 

색기엄마.화냥엄마가 저주스럽다.

엄마대신 날 때린 아버지가 저주스러운게 아니라 나를 낳아준 엄마가 증오스럽고 악마같다..

무서운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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