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다섯시, 추운 새벽이다. 이때 즈음은 대지가 가진 열까지 모두 식은 뒤라 다시 태양이 떠오르기까지(변덕스런 이곳의 날씨로는 안떠오를 수도..있지만) 하루 중 가장 추운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학교에 가려고 나서기 위해, 옷을 갈아입느라 잠시 벗고, 화장실 가서 엉덩이 까고, 샤워할때 물이 덥혀지고 하는 사이 사이의 시간이 가장 괴롭다.. 너무 추우니까. 역시 한국의 난방시스템은 정말 좋은 거 같다. 옆에 켜놓은 전기난로는 한 쪽 허벅지만 익힐 뿐 반대편의 손가락이 안펴진다... 흐흐..이 집도 싼 다른 집들처럼 오래된 시스템이라, 천정이 꽤 높고 거미줄이 있어(손이 안닿아서 못떼어요) 열기는 모두 거미집으로 가는것 같다(좋겠다).
얼마 전에 한 여스님이 전화를 하셔서 이 도시를 떠나신다고 고추장을 좀 가져가라고 하셨다. 이 것이 두번째이다. 우리는 (나와 영) 이 도시에서 몇 안되는 한국 사람과도 거의 친분을 쌓지 않고 지내서, 아는 예맨 친구에게 우리 전화번호를 얻으셨다고 했다. 우연히... 그렇게 된거다. "나도 한국사람 안만나고 사는데,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모르고 산다면서요.. 그래서.. 장 좀 주려고"라고 하셨다. 외국에서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난다. 그럼 가끔 정말 감동적이다. 단순히 고추장이 생겨서가 아니라
, 한국사람이라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도와주려고"하는 것이다. 자신이 도움을 다시 되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떠나면서"주는 것이니까.
이 나라가 멀티.. 컬쳐..라고 지들이 말하듯이, 이민자들끼리 많이 모여서 살고 따스하게 정을 나누고 지낸다. 인도사람은 인도사람들끼리,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끼리, 서로 돕고 이웃으로 지내고 같이 모여서 돕기도 하고 그런다. 아시아 사람들은 더욱 그나마 이해하기 쉽고 정서가 비슷해서 친해지기도 쉽다. 더 끈끈한 무언가를 서로 이해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가끔 인사하는 몇 명의 한국 학생들 외에.. 다른 한국인들처럼 뭉치거나, 모이거나 하지 않는 이유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초대받은 한 한국인에게 실망해서 이다. 그는 친절을 배풀고자 우리를 초대하고 그 당시 몇 안되는 다른 한국사람들을 다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서 오지않은 다른 사람을 흉보고 학번 따지고, 나이따지고 한마디로 출신이나 서열을 어찌나 소중히 얘기하는지 성격이 좋지 않은 나는 화가 나서 고분 고분하지 않은 태도로 그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고 그 다음부터도 일부러 서로 피하게 되었다. (그의 추종자들도 나를 보면 피한다)그는 또, 이곳 사람들을 "영어공부를 위해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우리(한국)세력을 넓혀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연설을 했었다. (나는 사람이 사람끼리 "이용해 먹는"법을 여기까지 와서 배우고 싶진 않았다.) 그랬더니 불쌍한(?) 우리의 영마져 어쩌다 나와 같이 떨려나오게 되었다. 그래도 나를 보면 재빨리 사라지는 것과 달리 영을 보면 한 두마디 인사도 한다고 한다.
그 날 그가 흉을 보았던 한국학생은 소심하지만 착하기만 하다(내가 보기에). 그는 한 살 높은 한 학생과 반말하고 지내는 것을 그 파(?)에게 들켜 문제가 자꾸 쌓여, 이곳에 있는 내내 마음고생도 하고 따돌림도 당했다고 한다. (얼마전 한국으로 어학을 마치고 돌아갔음) 그 사람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그 무리가 더욱 눈에 고울리 없었다. 나는 영과 둘이라도 다니지만, 그는 혼자서 일본애들과 얘기하고 밥먹고 그러지 한국 사람들과는 말도 없이 서로 모른척 하며 한교실에서 지내야 한거다. 그래서 우리가 오기 전엔 한국 사람들과 있어도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따돌림을 당한거죠) 그 파의 대장(?)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유학원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의 한국 학생들은 상당수가 그 쪽 줄을 타고 온 것이며 함께 몰려서 식당에서 떠들고 밥을 먹고 한다. 본과에 있는 (랭귀지 스쿨이 아니라)학생들까지 점심시간이면 다 몰려서 줄서서 식당에 들어와 자기들 끼리 밥을 먹는다. 어찌보면 참 정스러운 모습이겠지만, 한국에서 따돌림과 왕따를 당해본 나같은 사람은 정말 밥먹기 힘들 정도로 역겨운 모습이기도 하다. 뭉치는.. 것은 과연 힘인가? 뭉치는 것은 안으로는 좋다. 하지만 가끔 외부에서는 접근하지 못할 높은 벽으로 보인다.
아까 말한 한 소심한 한국학생에게 다른 외국 학생이 물었다고 한다. " 저애들 인종차별 주의자야? 왜 자기 들끼리만 다녀?" 이 정도면 내 선입견 외에도 그 무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서 한국 사람끼리 정을 주고 받는 것은 정말 좋은거 같다. 가끔 눈물나게 고맙다. 나도 수혜자이다. 하지만 저런 식의 "우리끼리"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한 쪽으로만의 일방적인 애정은 그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잊게 하니까 말이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 다른 뉴질랜드 사람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가면 누군가 물었다.
"한국에 언제 돌아가나요?"
"글쎄요. 알 수 없죠. (비행기 값이 없어요)"
"가고 싶지 않나요?"
"아니에요.(보고싶은 얼굴들, 사람들이 있는데 왜 아니겠어요)"
"그럼 나중에 여기서 살꺼에요?"
"글쎄요. 그럴 생각은 없지만, 한국은 안 갈거 같아요(늙으면 인도나 제 삼국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떠돌면서 살려구요)"
그럼 상대방은 조금 놀란다. 그가 본 다른 한국 학생들이나. 사람들과 대답이 조금 달라서 인거 같다. 나도 왠지 말하기 힘들지만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에 나는 내나라에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살아온 한국이 정말 화나는 곳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알만한 좋은 학교를 나왔고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면 꽤 받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유리한..위치 였는데도 그렇게 화가 났다.(나보다 더 불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는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온 교육 방식이나, 사회는 어린 나에게 요구한 것들은 "네가 다르면 죽으라"고 했지 그럼 어디 "네가 뭘 잘할 수 있나 남들과 다른걸 보여줄래? 네가 좋아하는 걸 하는게 제일 중요하지, 남들처럼 남들만큼 남들이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라고 하지 않았다. 토익책과 토플책으로 점령된 도서관에서 문학도도 아니면서 문학책을 잡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주위사람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너무 괄시를 받았다. 나보다 약한 사람이 너무 괄시를 받는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없는 사람들이 없으면 사람취급 못받는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이 철없는 "화"도 많이 잦아들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오해한 것도 더러는 있기 때문이다. 잘살고 잘 먹여주는 이나라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그렇게 엉망인 시스템 속에서도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 가난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멋진 사람들이, 그 열정이, 이 배부른 나라에서 죽어가는 영혼들보다 빛나는 영혼들이 너무 많다.
나는 지금의 내 자신의 위치가 창피하다. 처음에 내 생각은 "시스템이 마음에 안드니까,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나는 다른 곳으로 갈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부둥켜 안고,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는 작은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미움 받아 가면서도, 지켜내고 고쳐가려고 거기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누군가 "너 어디로 갈래"라고 물하면 나는 잠시 망설일거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고치며 살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사랑을 품고 떠돌지" 지금은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이곳(게시판?)에서 쪽지를 보내셨다. 외국에서 사서 고생하는 용기..가상하다고. 나말고, 정말 열심히 외국에서 열심히 젊은 날을 바쳐 공부하시는 분들은 (공부해서, 인류와, 눈맑은 이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하시며)나도 존경스럽다. 그분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 나자신은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게으른 지 알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용기는 어쩌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께, 오늘 하루 자기 자리 지키면서 즐겁게 일하신 분들께 붙여야 할 이름이 아닐까 한다. 소풍가는 아들에게 김밥말아 주시는 어느 어머니에게, 집 앞 열심히 비질하시는 구멍가게 주인아저씨께, 가난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겠다고 밥굶고 구박받는 옆집 가난한 노 총각에게 붙여져야 할 이름이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흐흐....
피.에수..
아.. 참.. 머리에 보자기 정말 묶었냐고 물으신 분이 있어서, 헤헤.. 그냥 털모자 쓰고 다니기도 하고 벗기도 합니다... 까까머리에 작은 털이 나있어서, 털모자 벗을때 마치 우리나라 찍찍이 처럼 잘 안벗겨지내요.. 그래서 수직으로 벗으면... (뿅)하는 소리가 나듯 벗겨진답니다..크크. 머리를 미니까 저는 편한데 보는 사람들이 곤욕이죠. 수퍼에 가서 용기를 내서 먼저(보통 그쪽에서 인사해야 하는데). hi 라고 했더니만, 젊은 남자 점원이 "hello, sir"라고 하더군요. 흐음.... 한국에 가면 또 여자화장실에서 쫓겨날거 같아요.
오늘 좋은 하루 되세요. 흐흐 오늘 제가 그리워 하는 자판기커피..( 한국 다방 커피 ?)한 잔 드시면, 제 몫까지 맛있게 드셔 주세요..(가격은 싸고 어찌나.. 달달하고 맛있는지..) 아 먹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