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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았던 그룹.. '소녀대'

난 좀 알아 |2007.07.30 11:33
조회 1,836 |추천 0

소녀대라고 아시나요?



정작 본국인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았던 소녀대입니다.


치이꼬, 레이꼬, 미호...

 

1983년 1만명이 넘는 오디션을 거쳐 이 세명으로 "소녀대"가 탄생하게 되죠.

물론 이름값만으론 비슷한 뉘앙스의 "소년대"와 같은 대중적 인기는 결코 얻을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인기기반이 있었지만 사실 아이돌의 전성시대라는 80년대를

그리 풍미하지는 못한 그룹입니다.

80년대 활동할 당시 연간 오리콘 싱글 차트 30위권에 든적도 없고, 1위곡도 없습니다


 

[의상부터 섹시함과 화려함을 강조한 소녀대. 그래서 오냥코를 이길수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예를 들어 2005년 3월에 방송된 TBS 50주년 쇼와 아이돌 특집에서도 한 줄 거론이 되지도 못한 비운의 아이돌 스타이죠.

앞서간 유럽팝풍의 곡들이 대중에게 그리 친숙하게 어필하지 못했고, 동년배들인 오냥코 클럽이나 다른 아이돌 스타에 가려진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80년대 중반 최고의 일본 출신 아이돌 스타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가지를 거론할수 있겠지만, 먼저 한일 양국의 아이돌스타 선호도나 나름대로 한국활동이 충실했다는 점을 들수 있겠군요.

 

아시다시피 일본에선 최고의 찬사가 "카와이"인 반면 한국에선 예전부터 섹시코드가

먹혔습니다.

 

썬텐한 구리빛 피부에 섹시한 외양이 80년대 한국 청소년들에게 호감을 가져왔다는 것이죠.


물론 일본은 귀엽고 어리게만 보이는 외관이 최고의 아이돌스타 덕목이지만 말입니다.

소녀대는 한국활동이 많은 일본 아이돌 스타였는데...



70년대말부터 개최된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가를 했었고, 이덕화 진행의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게스트로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소녀대의 한국활동.  이덕화의 "토토즐"에 게스트로 참가]

 

 

그리고 88올림픽 당시 그 유명한 "KOREA"를 불러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지명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88올림픽 전야제에서는 한강고수부지에서 공연도 가졌으니...당시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은 오냥코는 몰라도 소녀대만은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해적판이나 빽판이 세운상가 뿐만 아니라 주택가 아파트 계단에서 팔 정도로

한국 청소년들에게 친밀한 그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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