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정뱅이의 최후
형민은 아까부터 술에 취해 비틀대며 가로등에 어깨를 기대고 졸고 있
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런 그를, 무슨 벌레를 보듯이 하였는데 형민
은 간간히 정신이 돌아 올 때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큰소리로 해대
고 있었다.
"야, 이 씹쌔끼들아. 너희들이 뭔데 나를 이렇게 만들어? 우이씨..."
어두운 밤, 한껏 지푸렸던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
했다.
형민은 이년 전 까지만해도 번듯한 직장도 있고 착한 부인과 귀여운 아
들까지 있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눈이 몹시도 내리
던 날 새벽, 모처럼 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식구들을 태운 채로 시골길
을 달리다가 중앙선을 넘어오는 고급 외제 승용차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상대방의 운전자는 그리 다치지 않았건만 형민의 소형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인은 그자리에서 즉사를 했고 그의 아들은 삼일동안 병원에서
생명 유지 장치로 목숨을 연명하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다행인
지 불행인지 형민만은 일곱번에 걸친 수술과 1년이라는 입원기간을 거
쳐 겨우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지만 형민은 퇴원을 한 후로 점점 폐인이 되어갔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을 한 순간에 잃고 또 그나마 모아 두었던 재산
도 병원비 등으로 다 날린 그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취한다. 이런, 또 어디가서 술을 한 잔 더하나?"
형민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썅. 돈이 하나도 없네. 후~~~"
형민은 제법 굵어진 빗줄기를 온 몸에 맞으며 가로등 곁에 쪼그리고 잠
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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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정신차려. 일어나."
형민은 누가 자꾸 자기를 흔드는 느낌이 들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들어? 이리로 와봐."
형민은 얼떨결에 일어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참나. 미치겠군. 어디긴 어디야. 파출소지."
그리고 보니 전날 가로등 곁에서 잠을 자고 있을때 경찰차 싸이렌소리
가 얼핏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여길 왜...?"
"주민들 신고가 들어와 이리로 데려왔지. 도대체 얼마나 술을 먹었길래
사람이 그정도로 인사불성이 되? 그리고 저길 봐봐."
형민은 순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깨진 창문과 부서진
전화가 있었다.
"저것도 당신이 그런거라고. 파출소 집기를 부시면 무슨 죄가 되는 줄
알아?"
형민은 쓴 웃음을 지으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어이구. 웃기는... 주소랑 주민등록번호 대봐."
"없어요. 집도 절도 없는 몸이예요. 그리고 살아 있어도 진짜로 산 삶이
아니구요."
순경은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허, 거리의 철학자가 또 나오셨구만. 콱 쳐 넣어 버리기전에 다 얘기해.
괜히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나도 빨리 조서 꾸미고 다른 일 봐야 할
것 아냐?"
형민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감옥에 쳐 넣으시든 부랑자 수용소로 보내시든..."
"허... 나... 참."
"무슨 일이야?"
마침 파출소 박소장이 들어오다가 둘이 실랑이 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 소장님. 이 자가 어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기에 잡아왔습니다.
그런데..."
형민은 갑자기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언제 난동을 부렸어? 괜히 가만히 자는 사람 데리고 와서 죄를
덤태기 씌우려고..."
박소장은 형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을 건냈다.
"혹시... 너 김형민이 아니냐?"
형민은 움찔하더니 눈에 힘을 모아 박소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돌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맞구나. 너."
"소장님이 아시는 분입니까?"
"어? 응. 그래. 이건 내가 처리할테니 다른 일 봐."
순경은 쑥스러운 듯 쭈볏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형민이 박소장에게 심드
렁히 말했다.
"담배있니?"
"어? 응. 그런데 너 이게 어찌된 일이냐? 왜 몰골이 이 모양이야?"
"그렇게 됐다."
"너, 아침도 안 먹었겠구나. 나하고 나가자. 해장국이나 먹자구. 그리고
네 얘기도 좀 듣고."
박소장은 게걸스럽게 해장국을 입에 퍼 넣는 형민을 애처롭게 바라보다
가 혀를 끌끌찼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난 전혀 몰랐네? 허긴... 너를 만난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형민은 트림을 시원하게 한번 하더니 물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다 그런게 인생인가 보더라. 나도 얼마전까지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사
람이라구. 그런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몸도 망가
지고..."
"그래도 정신차려 살아봐야지. 허구헌날 술로 세월을 보내면 어쩌니?"
"처음에는 나도 그럴려고 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교통사고 후유증이 너
무 심했어. 날만 좀 궂으면 저리고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못 견디겠더라
고. 그래서 한잔씩 마시던 술이 이젠 거의 주식이 되어 버렸지."
"그래도..."
형민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박소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넌 몰라. 직접 당해보지 않았으니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말이야. 살고
싶지도 않지만... 질긴게 목숨이라 죽지도 못하고... 맨 정신으로는 도저
히 살 수가 없어..."
"휴우... 세상에..."
"참, 너 돈있으면 좀 꿔주라."
"응? 아, 그래."
박소장은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형민에게 건네 주었다.
"고마워. 꼭 갚을께."
"아냐. 필요없고... 이제 어디로 갈거니?"
형민은 아이같은 순진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모르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술이나 한 잔 하고... 또..."
"형민아. 이젠 정신을 차리고..."
형민은 조용히 일어나면서 박소장의 어깨를 툭쳤다.
"밥 잘 먹었다. 그럼..."
비척이며 걸어가는 형민의 뒷모습을 박소장은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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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술 더 가지고 와. 술."
형민은 낡은 포장마차에서 술병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돈 주면 될거 아냐? 술가져와."
포장마차 주인이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다가 형민이 곁에 다가왔다.
"손님.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하시죠."
"뭐야? 야, 이 새꺄..."
주인은 일순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형민의 멱살을 부여잡고 밖으로 끌
고 나갔다.
"야, 너 죽을래? 내가 한시간 동안이나 참았다고. 도대체 여기가 너희
집이냐? 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대? 이거 완전히 알콜중독자아냐?
집에 가서 니 마누라한테나 술주정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힘껏 내팽개치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취기에 흔
들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형민은 맥없이 땅에 쓰러졌다.
"에이, 재수없어서. 원..."
형민은 다시 비척이며 일어나더니 주인에게로 다가가 돈을 내밀었다.
"어이구. 술에 꼴아도 계산할 줄은 아네. 고맙게 받으마. 그리고 다신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아라. 얘야... 알았지?"
주인은 형민의 볼을 놀리듯 다독거리더니 포장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형민은 몽롱한 눈으로 사라져가는 주인을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형민의
어깨를 '툭'쳤다.
"나와 얘기 좀 할까?"
형민이 뒤를 돌아보니 나이가 오십정도 되보이는 사람이 기분나쁜 표정
을 지으며 서있었다.
"누... 누구시죠?"
"어휴. 술냄새. 음. 나는... 그래 그냥 최형이라고 부르고... 잠시 따라와
보게."
형민은 아무 생각없이 최형의 뒤를 따라갔다. 최형은 한참을 걸어가다가
한적한 골목에 있는 낡은 사무실로 형민을 인도했다.
"자, 일단은 거기 앉고..."
형민은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고 왜 저를..."
"사람... 성격도 급하네. 자 담배 한 대 피우게나."
형민은 최형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불을 붙혔다.
"음. 내가 아까 포장마차에서 자네가 술주정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꽤나
형편이 어려운가 보네?"
"예. 뭐. 그럴 사정이 있어서..."
최형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며 얘기했다.
"누구나 사정은 있지. 내가 좋은 제안 하나 할까?"
"예? 어... 떤..."
"음. 혹시 자네 장기를 팔고 산다는 얘기 들어봤나? 거 왜 있잖아 신장
이나, 눈 같은 것 말이야."
형민은 다소 놀라며 되물었다.
"한, 두번 들은 적은 있지만요..."
"그래? 그럼 얘기가 수월하겠구만. 난 그런 장기를 팔고 사는 걸 도와주
는 사람이지. 흔한 말로 장기 밀매 알선업자야."
형민은 짐작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음. 사실 사람들은 나같은 사람을 무척이나 매도하고 있지. 어떻게 사람
장기를 돈으로 팔고 살 수 있냐는 건데... 사실 우리 주위에는 돈은 많은
데 원하는 장기를 구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사는 사람도 많고 가진 건 몸
뚱아리 뿐인데 돈이 꼭 필요한 사람도 많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소개료를 받을 뿐이거든? 어찌 보면 착한 일 하는 거 아냐? 하. 하
하."
최형의 괴변에 형민은 아무말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가 조용한 목
소리로 대꾸했다.
"글쎄요... 하지만... 사람을 가지고 그런다는 건..."
"하~ 이 사람... 아직 배가 덜 고팠나 보구만... 하여간... 말이야..."
"짐작은 하겠네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그러니까 제게 장기를 팔
으라는 건가요?"
형민의 힘없는 목소리에 최형은 호탕하게 웃더니 사람 좋아 보이는 미
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땅투기로 부자가 된 젊은 사장 한 분
이 있는데 그분... 아무 걱정 거리가 없이 살 분이... 눈에 병이 걸렸다고
하더군. 나처럼 무식한 놈이야 병명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냥
놔두면 실명까지 풔?그런 병이라는데..."
형민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눈을 만지며 물었다.
"그러면... 제 눈... 을?"
"하하하. 정확히 눈은 아니고... 각막만 이식하면 되는데... 물론 자네도
보고 살아야 하니까 한쪽만 팔면되고... 아무튼 그분이 내게 돈은 얼마든
지 줄테니 각막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신장 같은 건 공급이 원할해도
눈은 좀... 구하기가 어렵더라고. 그래서..."
한창 거들먹거리며 중얼거리던 최형은 소매에서 담배를 꺼내 형민에게
권했다. 형민은 한동안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도대체 제 각막을 이식 받는 사람은 누구고... 또 얼마나 제게 돈을 주
시는 건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하하하. 그래... 당연하지...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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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병원 2층 안과 병동에는 경찰들로 가득차 있었다. 형사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병상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병
원 근처에 위치한 파출소의 박소장은 그들 사이를 어렵사리 지나 사건이
일어난 입원실로 들어갔다.
새하앴을 침대 시트는 검붉은 피로 얼룩이 져 있었고 한 남자가 환자복
을 입은 채 반듯이 누워 죽어 있었다. 그 남자의 두눈에는 1cc짜리 일회
용 주사기가 각각 하나씩 꽂혀 있었는데 주사기 피스톤 속에 뻘겋게 피가
뽑혀 있어 언뜻 보기에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입은 살아 있는 것처럼 '꾹'다물고 있어 희극적으로까
지 보였고 양쪽 콧구멍은 뜯어진 것처럼 반넘어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더욱이 죽을 때 몹시 괴로웠는 듯 목언저리에 퍼런 힘줄이 흉하게 불거져
있었고 양 손톱에는 자신의 입과 코에서 떨어져 나온 시뻘건 살점이 끼어
있었다.
또한 죽어버린 그 남자의 옆쪽 창틀에는 한쪽 눈에 붕대를 한 또 다른
남자가 커텐을 목에 감은 채 혀를 턱까지 빼물고 창백해진 얼굴로 허공
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아, 박소장님... 이제 오셨군요.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여기까지
오시라고 한건 다른게 아니라..."
"도... 도대체... 이... 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이형사가 박소장에게 아는 척을 하자 어리둥절하기만한 박소장은 그 광
경을 두리번거리며 쉰목소리로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이형사는 들고 있
던 종이를 박소장에게 건내주며 대답했다.
"살인 사건이예요. 저기 목메달고 죽은 사람이 이 환자를 죽인 것이고...
아무튼 자살한 저 사람의 편지를 읽어보시면 대충 아실거예요."
박소장은 이형사가 건네 준 편지를 다급히 펴서 읽어 보았다.
[*이 편지를 발견하신 분은 영서파출소의 박진한 소장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한에게...
네가 이 편지 -유서가 되겠지만...- 를 읽을 쯤에는 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그리고 너는 다른 경찰들의 연락을 받고 몹시도 놀라
이 병실로 뛰어 왔을 거고... 그래... 네가 짐작하다시피 나는 지금 사람
을 죽이고 목을 매달기 전에 이 편지를 쓰는 거야.
하필이면 왜 네게 이런 편지를 쓰는지 궁금하겠구나... 10년만에 단 한번
만났을 뿐인데... 하고... 말이야. 사실... 지난 2년동안 주정뱅이인 내게
그토록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은 너뿐이었어. 그리고... 너는 경찰이니
사건의 연락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도대체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몹시 궁금하겠지? 바로 그 얘기를 하
려고 편지를 쓰게 된거야. 일전에 네게도 말했지만 나는 2년전에 교통사
고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들을 잃었지... 그때 내차를 들이받은 그 운전
자가 바로 이 병실의 침대위에 누워 죽어있는... 저 놈이야.
교통사고때 저놈은 만취 상태에서 여자를 옆에 끼고 운전을 하다 사고
를 낸 거였어. 그러나 저 놈은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지닌 든든한 배경
이 있었기에 벌금만 몇푼 물고 불구속됐었지.
만일 저기 처참하게 죽어 있는 저놈이 죄값이라도 치르며... 진심으로 내
아내와 아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면 나도 용서를 했었겠지만... 그러나...
그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기
않는 파렴치한 놈이었어.
나는 저놈의 행동에 이를 갈았어. 한순간의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진심
으로 사과를 하기는 커녕 모든 일을 돈으로만 해결하러 드는... 내 가정
을 파봉막?내 몰은 뻔뻔한... 바로 저놈을... 없애기로 작정한 거였지.
그러나 저놈은 항상 사람들-경호원이라 해야하나?-과 함께 다녀 도저히
기회가 나지를 않았어.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무능력에 자책을 하게
됐고... 차츰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된거야.
그런데 얼마전... 장기 밀매 알선업자?알게 됐어. 그가 내게 각막을 팔
기를 종용했는데... 사실 내가 돈이 무슨 소용있겠니? 오직 저 놈을 죽일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찬 내가 말이야. 그런데... 내 각막을 살려고 하는
자가 하필이면 저놈이라는 걸 알고는...-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
되더구나...- 흥쾌히 승낙을 했지.
얼마간이라도 저놈 가까이에 내가 있게 될테니 죽일 기회가 생기겠다 싶은
거였어. 더구나 그의 측근들도 내가 각막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
나에 대한 감시도 소홀할 거고 말이야. 내 예상대로 일은 진행됐지.
내 오른쪽 눈을 제공한 댓가로 저놈의 입원실 바로 옆 병실에 있게 된
거였어.
혹시나 저 놈이 내 얼굴을 알아보면 어쩌나 하던 기우도 곧 쓸데 없는 생각
이란걸 알았지. 2년동안 피폐해진 내 몰골을 그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거였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장기를 파는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여긴
거야. 하여간 며칠동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지.
그러다 바로 오늘 새벽 그의 측근들이 자리를 비우고, 저놈은 불면증 때
문에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틈을 타 계획한 일을 실행한 거야. 처음에는
저 놈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도 많이 했어. 간단히 죽여버리면 내 원한이
삭이지 않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생각한 끝에... 나는 순간 접착제와
주사기를 들고 일을 저질렀지. 물론 지금 네가 저놈의 시신을 보면 알겠
지만...
나는 잠에 골아 떨어진 저 놈의 배위에 올라타고 입과 코에 순간 접착제를
흘려 놓고 입과 양 코구멍을 손으로 살며시 쥐었다가 놓았지. 순식간에
'딱'붙어버리더구나. 저 놈은 잠시후,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는지 입을
벌리려고 하더라... 하지만 접착제로 인해 저 놈의 입은 벌려질 리가 없
었지.
저놈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뜨더군. 그리고 자신의 배위에 올라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거야. 그러나 이미 저놈의 코와
입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으니... 다급히 손을 들어 코를 마구 쑤시
고 입을 벌리려고 애를 쓰더라고... 살점이 뚝뚝 뜯겨지는 가운데... 점점
숨이 막혀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가더군. 정말 통쾌한 순간이었어.
나는 한동안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저놈을 바라보다가 주사기를 들어 저 놈
의 부릅 뜬 왼쪽 눈을 먼저 찌르고... 붕대를 하고 있는 나머지 눈도 -우습
게도 얼마전까지 내 눈이었을...- 찌르기 시작했지. 저놈이 그렇게도 낫기
를 원했던 양쪽 눈을 말이야...
결국 버둥거리던 그는 죽고 말더라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애처롭게 몸만
떨다가 말이지. 하여간... 나는 저 놈의 처절한 죽음의 모습을 지켜보며
야릇한 쾌감을 느꼈어. 이제야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말이야...
자, 이제 나도 죽어야 할 시간이 된 것같아. 조금 있으면 저 놈의 측근들이
올테니... 그 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곁으로 가야겠어. 나도... 살인
을 저질렀으니... 죽어버린 저 놈과 다를바가 없겠지만... 저 놈은 자신의
죄의 대가를 이제서야 치른 셈이야. 어쨌든...
죽은 내 시신은 화장을 해서 바닷가에 뿌려주기 바래... 아내와 아들도
그렇게 했으니... 나도 그들과 함께... 영혼이나마 떠돌며 못다한 이승
구경을 해야겠어... 그리고는... 조용히 저승으로 돌아 가야 하겠지...
그러면... 이제... 안녕히...
이제서야 가족곁으로 돌아가 편히 쉬게 된... 형민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