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만 듣던 짝짓기 프로그램의 진수를 펼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만남의 장소가 여기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바의 각 테이블 마다 테이블 너머로 나이 지긋한 남녀가 쌍쌍이 마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한마디로 그랬다. 구석에 있는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는 안 봐도 뻔했다. 그는 짝 찾아 나온 남자였다. 그 건너편의 턱수염이 까칠한 남자는 마주한 여자를 보고 헬렐레 졸고 있었다.
“모두가 듀오나 비에나래에서 보낸 사람들 같군요.”
용호는 두 손을 신경 써 다듬어진 턱 아래 가볍게 괴며 말했다. 유리도 이심전심이었다.
“아니, 온리 유까지.”
용호는 눈알을 굴려 유리와 달리 나이지긋한 여자들도 쓰윽 하니 둘러보았다. 용호가 말하는 온리유는 재혼 전문회사였는데, 몇몇 여자들은 재혼 상대를 찾으러 나왔다 해도 어울릴 만큼 중후해보였다. 소장도 여기 나오면 딱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런, 건 좀 짜증 나!
유리는 인위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이나 결혼정보 회사에서의 만남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와하! 재밌겠다.”
늦게 온 유리의 파트너란 남자는 외쳤다. 그제야 유리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 지 깨달았다. 이유리 본인은 어려서부터 짝짓기 프로그램의 광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성탄이가고 성큼 다가온 신년 너무 좋져?”
“네!!!”
“누군가와 함께 야외로, 공원으로, 스키장으로, 놀이동산으로 놀러 가고 싶은 마음 그득들 하실 겁니다. 오늘 한낮의 미팅에서 여러분들의 인연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디 숨었다 나타났는지 바 매니져로 보이는 하얀 쉐터의 여자가 핸드마이크를 잡고 나타났다. 그녀가 나타나자 중후한 짝짓기 프로그램 분위기의 바가 산장미팅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재주도 좋았다. 바의 중후하고 촌스런 분위기는 금세 산장미팅에서 장미의 전쟁처럼 달아올랐다.
“우후! 선보는 딱딱한 자리인지도 모르나 모두가 젠틀하게 보이는 정장만큼 좋은 의상을 입으신 분만 모이셨네요. 아무렴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은 입장이 절대 불가능한 곳이죠. 또 85년생 이하는 절대 안 됩니다. 여기 85년생 이하는 없으시죠?”
바 메니져의 후끈한 외침에 유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도 이제 청춘의 정점을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대 중반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파릇파릇한 애들과 이미 멀어져가는 나이가 되 가고 있었던 것이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분명 엊그제까지 스물세 네 살이었는데 대학 졸업장과 멀어져버렸다.
갑자기 발랄해져버린 바 분위기와는 다르게 머릿속에 박상민의 ‘서른이면’이란 처량맞은 가사의 노래가 메아리쳤다. 서른이되면 결혼도 하고 집도 살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이 되자 결혼도 못하고 통장에 돈도 없고 변변치 않은 신세가 되었다는 박상민의 노래가 멀지 않은 자신의 미래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가 자주 듣는 넬과는 자꾸 만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우 예! 빙고게임 스탓.”
메니져 아래 스탭 한명이 쪽지를 돌렸고 유리도 아무렇게나 쪽지를 돌렸다. 빙고게임의 원리에 따라서다. 자기소개와 같은 자기신상을 쪽지에 적어 핸드마이크의 메니져가 부르는 난에 이름을 적는 중학생 수준의 게임이다. 누가 사랑을 유치하다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웨딩드레스도 굉장히 유치하다. 제정신 박힌 성인여자라면 평상시 치렁치렁 기다랗게 나풀거리는 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절대 걸어 다니지 못한다.
“빵빠라방 당첨되셨습니다.”
빵빠래가 울리며 게중 괜찮은 남녀 한명이 바 플로어 중앙으로 타박타박 걸어 나왔다.
“이름: 장** 군, 신장: 181cm, 생년: 1975년, 학력: 대학교 졸업, 직업: IT, 혈액형: A형. 한치의 거짓도 없죠?”
“네. 모두 진실입니다.”
“이름: 윤**, 신장: 163cm, 생년: 1977년, 학력: 대학원졸, 직업: 펀드메니져, 직업: B형. 물론, 한치의 거짓도 없죠?”
“넵!!”
“좋습니다. 지금부터 노예팅을 시작하겠습니다.”
골치가 아팠다. 드디어 노예팅이라 불리는 경매란 것이 시작된 것이다. 바 메니져는 장뭐라는 남자를 천원에서부터 시작해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윤눠라는 여자는 만원에서부터 시작해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얼마에 팔려들 가든 알게 뭐야? 저 아저씬 신났네.’
유리는 눈동자를 돌려 철없는 파트너 남자가 경매에 참석하는 어이없는 모양을 보았다.
‘그래, 주머니 털어 윤**하고 짝짓고 나가!’
“브라보!!”
정신없이 값이 소단위로 올라가더니 경매가 끝났다. 남자는 100만원 여자는 각각 200만원에 낙찰됬다.
“경매에 파트너를 빼앗기신 분들 서운해 마세요. 서운하신 분들은 로테이션으로 다른 파트너들을 소개팅 시켜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 좋은 인연 좋은 만남을 가지시길 바래요. 그리고.”
바메니져는 마지막이란 듯이 핸드마이크를 다시 한번 잡았다.
“자신의 파트너가 최고라는 분들 손들어 보세요. 파트너 분을 최고 경매에 부쳐드리겠습니다.”
“저요!”
‘내가?’
유리는 기가 막혔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위해 유리가 핸드백을 잡았을 때, 유리의 파트너가 유리의 손을 바에서 최고로 빨리 집어 올린 것이다.
“?”
유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완전 시선집중이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어디 보자는 듯, 남자들은 꽤 괜찮다는 듯. 남녀로 갈라진 시선이 유리 앞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중되었다.
부담스런 시선들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앗! 그 여자다.”
어디서 콕 박혀 있었는지 유리 또래의 어리버리한 남자 한 명이 유리 근처 테이블에서 머뭇거리며 유리를 가리켰다.
“아, 맞아. 제이슨과?”
‘이럴 때 난 어떡하지?’
유리는 선뜻 테이블 위에 올려 진 도자기 접시 위의 망고 한쪽이 보였다.
‘몰라!’
때론 사람은 정신적 괴력을 보인다. 유리는 어리버리한 남자의 목구멍을 향해 망고 조각을 명중시켰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푹 고꾸라졌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파트너의 손목을 뿌리친 채 후다닥 바를 뛰어나왔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유리는 최고로 피크됬을 때 마침 바로 진입하려던 수현과 맞닥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