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는 풋풋한 대학생이 아닌 암울한 재수생활로 시작되었다.
뭐.. 지금은 모두들 좋은 친구들로 남았고, 그리 후회는 하지 않지만,
공부안하고 무지하게 논 것은 후회된다.
생각보다 쉽게 나온 수능탓에 좋은편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했던 나는
일찍 재수생의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의 메카 , 노량진....
워낙에 한 일에 집중을 그리 오래 하는 편이 아니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완전 별천지였다.
더욱이 아버지의 과잉보호로인해 밖에서 오랜시간을 지내지 못했던 나는
더욱이 이제는 학생도 아니고 법적문제가 전혀 없으니 어느곳에나 들어갈수있는 신분에
이리도 밖에 오래 있어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우리 아버지의 철학은
"가족은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은 언제나 따뜻한 가정에서.." 였으며
"여자건 남자건 해가지면 집에들어와야지.. "
행여나 저녁9시이후에 집으로 전화가 오면
"어떤 교양없는 녀석이 이 늦은 시간에 전화질이야 "하며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박통과 전통시절 통금의 페해산물적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큰 딸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절대 3일 연속나가놀지 못했으며, 친구들과 전화로 10분이상 전화도
주말에 영화도 가끔 두 동생들과 봐야했다.
해가 짧아지는 동지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이었으며,
해가 긴 여름도 나가 놀지 못하는 나에겐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내가 학원 자습을 핑계대고 저녁 11시까지 밖에 있어도 된다니
이 얼마나 놀랄만큼 좋은 일인가..
사실 처음엔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전혀 여성스럽지 못하고 괄괄대는 성격이라 금방 사람들과 친해져서는
이리저리 놀러다니고...
노량진일때의 노래방, 만화방, 겜방은 내가 모두 섭렵했다.
들어갈때 인사는 당연하고 언제나 보너스는 기본이요, 가끔은 간식거리도 제공되었다.
아...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오지게도 놀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놀며 마시며 1년을 보냈으니
처음본 수능보다 점수가 덜 나온것은 당연지사...
지금 난 집에서는 통학도 어려운 지방 국립대에 재학중이다.
그때 놀았던 것은 후회없지만, 조금이나마 수능을 잘 봤다면 그들이 있는
수도권에 있겠지만... 키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