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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memoi... 8

미무아미무아 |2007.08.25 09:08
조회 129 |추천 0


단속은 움직이는 거야


일반 국민들은 다양한 단속의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  노상방뇨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무단 횡단, 쓰레기 투기 등 상대적으로 약한 것부터 술집에서의 패싸움, 지하철 성추행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건은 매일 일어난다.  아마 최근 가장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
단속 내용은 음주 운전과 과속 일 것이다.  음주 단속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하게 여겨져
이제는 통상적으로 밤 11시 이후에만 하던 것이 시도 때도 없다.  과속에 대해서는 각
지역에 카메라가 있어 견제를 하고 최근에는 고장이 났거나 아예 처음부터 껍데기 만
설치 하였던 곳이 많다고 하여 철거 중이다.  재미 있는 것은 음주의 경우 단속을 방송
매체를 통하여 사전 예고를 한다는 것이다.

 

사전 예고는 어떻게 보면 답을 가르쳐 주고 보는 시험과 같은 격이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해석은 다르다.  문제는 단속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있다.  한 명이라도 더 잡아
인원 수를 채우고 벌금을 더 벌고자 한다면 몰래 숨어서 내지는 불시에 단속을 할 것이다. 
하지만 경각심을 주고 음주 운전 자체를 방지 하고자 한다면 사전 예고제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최근에는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확고한 목표가 없이 결정권자의 기분에 따라 방침이 정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꿈꾸는 것은 단속이 필요 없는 시대인 만큼 사전 예고제를 넘어서서 교육을 통해
우리 모두가 단속 받는 일이 없도록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Say memoi(미무아)...

 

링 안과 링 밖의 차이


얼마전에 열린 K-1 홍콩대회에서 최홍만의 상대였던 게리 굿리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게리 굿리지는 "최홍만과 나는 친한 친구다.  경기

전에도 친구지만, 경기가 끝나도 여전히 친구로 남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서로 주먹으로 치고 받고, 발로 상대방을 무섭게 가격하는 '비정의 링'위의 두 사람이지만

경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친하게 지내고 서로 격려하는 것이 아름다운 승부의

세계이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매번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경쟁자들끼리 심한 인신공격을 한다.  이번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정말 그 어느 때 보다도 낯 뜨거운 인신공격과 도를 넘어선 공격이

난무했다.  후보는 결정되었다.  그럼 이제 '링 위의 경쟁'은 끝난 셈이다.  그렇다면

'링 밖'에서는 다시 화합하고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승복과 화합은 비단 같은 당 내 경선 뿐만 아니라 여야의 대결이 되는 소위

'본선'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 아닌가?

그리고 승부의 결과는 5천만 국민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를 감싸안고, 패자는 승자가 잘 해내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K-1의 악동이라고 불리웠던 '바다 하리'는 예전 피터 그래함 이라는 선수와 경기전에

주먹다짐을 하는 추태를 연출했다.  이번 홍콩대회에서 두 사람은 재경기를 치루었는데

멋진 경기가 끝난 뒤 서로 포옹하고 화해했다.  감정적 주먹다짐을 했던 두 사람이라

더욱 보기 좋았다.  정치인들은 최소한 '주먹질'로 싸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 안에서 '승복과 화합'의 역사가 써지기를 희망한다.


                                                                                             Say memoi(미무아)...


엄마는 대학 나왔어?


유명인들의 '학력위조'가 나날이 더 크게 터지고 있다.  처음 동국대 신정아 사건에서 시작하여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학력위조자'들이 출몰(?)하고 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학력까지 속인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런 '공인'들의 학력 위조에 분노하고, 이러한
가증스러운 '이중성'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 모임의 이야기거리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학력위조가 사회의 화두가 될 때 우리가 모르게 가슴아파하는 분들이 있다.
너도 나도 다 대학에 갈 수 있는 요즘과는 다르게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집안 사정상, 사회의 구조상 공부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이 가난해서,
여자라서 등등의 이유로.

 

6.25 직후인 50년대, 가난하던 시절인 60, 70년대 학교를 다니던 분들은 가정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한 분들이 많다.  심지어는 '무학력'의 주부들도 제법 있다.  대학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 고등학교 조차 갈 수 없었던 분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등록금이 없다는 이유로 등등….

 

이러한 분들이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학교에 보내고…
그런데 학교에서 학년이 바뀔 때 마다 써내는 '부모님의 학력'난이 있다.  먹고살 만한
시기인 요즘 이런 학력난에 '중졸' '초등학교졸'이라고 써 넣기가 사실 부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고졸'이라고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숨긴 채.

 

얼마전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네티즌의 글이 있었다.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무슨 공무원이
되었는데 입사서류에 부모님 학력을 졸업년도까지 상세하게 써 넣어야 했는데 결국
고졸인줄 알았던 어머니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것이다.  그 글에서 '사실 나는 중, 고등학교는
안 다녔는데'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는 어머니의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웠다고 한다.

 

시대를 잘 못 만나서 대학은 고사하고 중, 고등학교도 못 나오신 분들, 평생을 '공부에 대한
'한'이 맺혀서 살아오셨을 것이고,  인터넷이다 영어교육이다 해서 점점 똑똑해 지는
자녀들과 대화도 안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학력'과 관계된 것이 화두가 되고, 이야기거리가 될 때 배우지 못한 아픔으로 수십년을
살아오신 '아픈 가슴'이 얼마나 더 답답하실까?

 

 

학력을 속인 공인들은 분명이 잘못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학력제일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제공한 부분도 있다.  자식에게조차 떳떳하게 학력을 솔직히 밝히지 못하는 많은
우리의 부모님들…  그 분들도 '학력을 속인 위선자'들은 아닐 것이다.  배우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오시고 우리 나라를 이끌어 오신 우리의 부모님세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분들에게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와 한을 더 높이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분들은
이미 학벌 제일주의의 피해자이면서 최근에 자주 화두가 되는 '학력문제'에 대해서 피하고
싶은 분들일 것이다.  학력 제일주의에서 잠시라도 탈피하여 그 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드렸으면 좋겠다.


                                                                                                   Say memoi(미무아)...

 

개미와 베짱이


어린이를 가르치는데 쓰이는 동화 가운데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것이 있다. 부지런히 일해야지
게으르게 놀고만 있다간 큰일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새로운 줄거리로 바뀐
이야기가 등장했다.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일하던 개미는 겨울이 되자 모두 허리디스크에 걸려서
벌어 놓았던 돈을 치료비에 탕진하면서 고생을 한데 반해, 여름내내 노래하며 놀기만 했던
베짱이는 겨울이 돠자 개미들을 모아놓고 지난날 즐겁게 놀았던 일들을 소재로 '토크쇼'를
벌려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어린이보다 어른들에게 일만 하지 말고 좀 인생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하기야 우리 귀에 익은 민요에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것이 있고 보면 일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일찌기 터득하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요즘 절약만이 아니라 소비도 미덕이라는 것이 상식화되고
있는데, 이른바 'Well Being'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들의 의식구조도 변해가고 있고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악착같이 벌어들이는데만 연연하고,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과 함께 누리는 인간적 행복을
상실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신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한편으로 와닿는 셈이다. 
여유롭고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삶의 지혜도 필요한 세상이다.

 

                                                                                                          Say memoi(미무아)...

 

'아이스께끼'에서 '설레임'까지


무더위가 극심한 지금, 아이스크림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인기 상품이다.
우리나라의 아이스크림 역사는 실로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우선 '아이스께끼'라는 것, 1950-60년대 얼음통을 매고 다니던 장사꾼이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거리에서 골목에서 팔던 것이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아이스크림이었을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아이스케키'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여자의 치마를 들추는 장난을 할 때 '아이스께끼'라고 하는 것도 이 시원한 아이스께끼에서
유래된 것이다.  왜 아이스께끼라고 외치는지 모르겠지만 치마를 들추면 시원해서 라는
설과, 얼굴이 화끈거려서 차가운 김이 나오는 아이스케키가 연상된다는 설이 있다.

  

이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구멍가게라고 불리는 지금의 슈퍼같은 곳에서 네모나고
길죽한 아이스크림 통이 있었고, 그 통에서 누런 얼음주머니를 꺼내고 속에 있는 '하드'라고
부르는 나무막대기 바를 들고 빨아먹는 빙과가 70년대 초 인기를 모았었다.
'빙고 아이스바'라는 것이 이 때 인기를 모은 상품이며, '국민아이스크림'인 '부라보콘'이
나온 것이 이 70년대 초라고 한다.  부라보콘은 아이스크림이지만, 70년대만 해도 대세는
하드'였다고 한다.  즉 딱딱하고 차가운 얼음과자가 인기였고, 빙과통의 고무로 된
뚜껑을 열고 누런 얼음주머니를 꺼내고 그 좁은 통 속을 뒤져서 '하드'를 꺼내주던 시절이다.

 

'냉장고'가 대중화가 되고, 아이스크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빙과통'이 없어지고
냉장고속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파는 시대가 왔다.  아마도 70년대 중후반쯤이
아니었을까? 그 즈음 칼로 입구를 오려서 쪽쪽 빨아먹는 '아이차'라는 빙과가 나와서
큰 인기를 끌었다.  코미디언 '남보원'의 노래로도 유명한 '아이차'는 이후 '쭈쭈바'를
비롯한 유사제품을 양산하게 만들었다.  냉장고 아이스크림통이 처음 나왔을 때 잘
모르는 가게 주인이 전기를 아끼려고 밤에 스위치를 꺼두었다가 다 녹아버리는 헤프닝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이차'가 칼로 오려먹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걸 개선해서 나온 제품이 바로 80년대에
'폴라포'라는 것이었다.  얼음빙과로 된 것은 똑같지만 칼이 필요 없고,  위에 덮여진
얇은 종이를 떼어내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게 더 업그레이드 되어
나타난 것이 최근에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설레임'이다. 알다시피 '설레임'은 뚜껑을 돌려서
따는 '첨단(?)' 방식이다.  아무튼 '폴라포' 역시 유사제품이 많이 나왔고, 빙과류의 역사를
새로 쓴(?) 히트상품이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으로 흘러가면서 베스킨 라빈스, 하겐다즈, 코니 아일랜드 등 
외국의 유명 브랜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외국의 브랜드 아이스크림은 가격이
우리나라 제품보다 서너 배 이상 비쌌지만, 훨씬 뛰어난 맛으로 시장을 잠식, 수많은 체인점을
양산하면서 어느덧 우리의 먹거리문화에 깊숙이 들어왔다.  이로서 아이스크림 시장은
국내브랜드 제품과 외국브랜드 제품으로 양대 체제가 공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서 '캔디바'나 '메로나' 같은 '막강한(?)' 인기 상품이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그리고 특이하게 '구슬 아이스크림'이라는 것도 나와서 인기를 모았다.


21세기인 2000년대 들어서 아이스크림 시장은 또 한번 특이하게 변모되었다.
바로 '반값판매'가 성행된 것이다.  가격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는데 동네 슈퍼에서
정가의 반값에 파는 것이 시작되더니 이젠 편의점이 아닌 일반 개인 슈퍼에서는
반값이 아니면 경쟁이 안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국내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싼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50,60년대 먹고 싶어도 사먹지 못하는 어렵던 시절의 '아이스께끼'에서 몇 백 원이면 쉽게
먹을 수 있는 대중화된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먹거리 문화의 또 하나의
상징으로 흐르고 있다.  그 와중에 30년 이상 꾸준히 출시가 되고 있는 '부라보콘'이나
아맛나' '누가바' 등 장수브랜드들도 여전히 건재하여 부모가 어린 시절에 먹던 제품을
자식들도 함께 먹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정겨운 느낌이 든다.

 

                                                                                               Say memoi(미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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