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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춱

호!피!티! |2003.06.23 17:58
조회 464 |추천 0

장마가 시작됐다네... 하루종일 시원하게 쏴아쏴아 퍼붓는다.
나는 호피티... 물론 별명이다. 나의 동그랗고 통통거리는 듯한 뒤뚱대는 걸음보때문에 남편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전엔 더 심한 거였다. 미쉐린타이어... 그 미이라같은 온몸에 몇겹의 레이어가 있는 그녀석... 나더러 그거랬었다. 그때 무지하게 항의했더니 부르기도 귀여운 호피티도 바꾸어주었다. 모두들 우리오빠에게 천재라고 했었다.

결혼한지 넉달... 같이 살아보니 참으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많다.
이래서 몸이 피곤하고 저래서 마음이 상하고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으면 결혼은 왜 했을꼬 곰곰히 생각하다가 제대로 청혼도 못받은 주제에 8년 사귄 정이랍시고 결혼하라시는 어른들 말씀에 이때다싶어 결혼한 나를 꽁꽁 쥐어박는다. 그러다 밤이 되면 신랑이는 등돌리고 그르렁 그르렁 낮은 코골이소리를 내고 나는 한동안 그 코고는 소리와 뒤척임으로 말똥말똥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럼 엄마생각, 동생생각, 친구들생각... 결국엔 옛 남자친구들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꿈에서라도 만나 작은 들꽃들 만발한 뒷동산에서 손이라도 맞잡고 뱅글뱅글 돌아볼까나...

 

 

1. 고등학교 시절

그때 나는 여고에 다니고 있었고... 남자구경은 교회나 가야했다. 그러나 몹시 사춘기였던 나는 그저 쑥스럽기만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그 교회를 다녔으니 몇년이나 알고 지낸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이름도 못부를 정도였다.
그때 나랑 친했던 남자친구들은 한 네명정도 되었던 것 같다.
꺼벙하면서 큰 눈, 낮은 코, 넓적한 얼굴,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노래는 끝내주게 잘하던, 그림을 아주 잘그리던 친구
큰 키에 하얀 얼굴, 우수에 젖은 눈동자, 약간은 매부리코였지만 그 자체가 매력이었던... 그러나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았던 친구
쬐꼬맣고 까맣고... 나한테 한주먹도 안될 것 같은... 그치만 마음만은 제일 어른스러웠던 친구
희멀건한 얼굴, 갈색머리, 약간의 주근깨, 속삭이지좀 말라고 나한테 쿠사리 많이 들었던 덩치에 안맞는 조그만 목소리... 공부 잘하고 아는 것 많고 예의도 바르고... 아니다, 그냥 멜라민 색소가 부족했던 친구
그리고 나까지... 다섯이서 그나마 친했다.

자... 녀석들을 어떻게 불러야할까...
첫번째는 그림친구, 두번째는 숏다리친구, 세번째는 난쟁이친구, 네번째는 멜라민친구로 하겠다.
아니다... 그림친구만 너무 좋은 이미지잖아... 얼큰이친구로 정정!

우리 다섯중에서도 숏다리는 넘 왕자병이라 우리가 은근히 따시키는 분위기였고 난쟁이친구는 뭐든지 너무 시리어스해서 재미가 없었다.
나랑 얼큰이, 멜라민이가 가장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덕분에 우린 대학가서도 오래오래 친할 수 있었고...
자, 사건은 이러했다.
고1때... 여름수련회였다.
나는 교회에서 반주를 했었고 음대를 지망하고 있었다. 그 여름은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엄마한테 무쟈게 살살대던 시기였고...
긍까 엄마한테 잘 보여야했다. 그리고 그 잘난 8학군... 긍까 샌님 말씀도 잘 들어야 나를 예체능반에 넣어줄 수 있다고 하셨다.
엄마랑 샌님의 요구사항은 여름 수련회 가지 말고 학교 보충 수업 안빠지고 자율학습 나가고... 어쩌구 저쩌구...
근데... 그때는 그랬다. 그 나이에 식구들하고 바닷가를 갈겐가, 친구들하고 여행을 갈겐가...
그나마 숨쉴 구녕이라고는 여름수련회 뿐이었는데... 글구 쥐뿔도 모르면서 식구가 아닌 남자들이 옆방에서 자고 있다는 엉뚱하고도 음흉스러운 즐거움!  나는 사춘기였단 말이다. 나는 그런 가슴설레는 상황과 감정이 궁금했단 말이다!!!!!
결국 엄마랑 샌님은 이빠이 승질+짜증+엄포를 놓으시며 나를 하루 늦게 보내주셨다.

반가웠지... 암, 반갑고 말고...
두어시간 떨어진 낯선 시골에서 얼큰이랑 멜라민이랑 그 잘난체 하시는 숏다리까지도... 너무 반가웠다.
밥도 잘 먹고 부흥회도 하고... 기도 반, 졸기 반 하다가... 부흥회가 끝나고 자유시간이 좀 남아 친구들하고 산책할 기회가 있었다.
으응....? 근데 이 쑥스러운거 이거이거 뭐냐? 어엇... 부끄... 수줍...

벌건 대낮에 만날때랑 훤한 달밤에 만날때랑... 어쩐지 얘덜하고 눈길조차 마주치기 부담스러웠다.
오홋... 이제 나도 여자인가봐... 케엑...
그 쭈뼛스럽고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은 분위기는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멜라민이만 빼구 다들 들어가버렸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야지 할때... 멜라민이가 쪼기쪼기에 개울이 있다구 가보잔다.
어후... 순진한 호피티야, 가지마... 가지마...
크악... 거기서 호피티는 멜라민이랑 나무 밑에 옹색하게 쪼그리고 앉아 어정쩡한 폼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맞대게 되었다.
어쨰서... 그 훤한 달빛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던 걸까?
하여간 그렇게 5분을 못앉아있었다. 궁뎅이가 굉장히 아팠다...


그 후로 나는 멜라민이를 어색하게 대했다. 멜라민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난 그녀석에게 들릴만큼 심하게 심장을 울려댔기 때문이었다.
한번의 어깨동무로 나는 고3때까지 멜라민이를 쌩뚱맞게 대했고... 대학에 붙은 후 얼큰이랑 셋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경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 멜라민이의 등에 업혀 4층까지 올라간 후에야 우린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중에 멜라민이가 제일 먼저 결혼했다... 미국에 유학간 녀석이 뻔질나게 연락질을 해댈때... '역시 외로우니까 나밖에 없지?'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던 나의 뒷통수를 후리고 결혼한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띠발... 어깨동무는 나랑하고 결혼은 왜 딴 뇬이랑 해....???'
가끔 행복하다는 둥, 진작할 걸 그랬다는 둥... 꼬부랑 영어로 가득 채운 메일을 받으면 나두 기쁘다. 그래서 친구라는가...?
요즘도 행복하냐? 보고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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