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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만난 그녀

독신주의자 |2003.06.24 23:58
조회 957 |추천 0

그녀(P)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 벌써 10년이 되어 가네요. 예전에 쓴 글이 있었는데, 지금 찾아 보니 없어서 간략하게 앞서 쓴 내용을 설명하고 그 후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렵니다.

 

저는 현재 34살 독신으로 여의도에 위치한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월드컵으로 한창 씨끄러울 즈음에 P를 7년만에 만났었죠.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출현에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길가다가 우연히 대학동창을 만나면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눕니다. 정말 반가운 사람이라면 퇴근 후에 만나 술자리를 하는 반면에, 별로 친하지 않는 동창이라면 그 자리에서 인삿말만 나누고 기약없는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집니다. 그런데 그녀는 친했다면 더 없이 친하던 ..., 아니라면 더할 나위없이 아닌 ..., 이미 뇌리에서 지워져 버린 한 때 사귀던 여자였습니다.

 

난 89학번으로 서울에 위치한 OO대학 건축학과를 지원했습니다. 아버지가 건축을 전공하신 분이라 어릴 때부터 작업실에서 설계를 하시며 담배를 연거푸 태우시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남다르게 학과에 대한 애착도 있었고 설계에 대해 흥미가 많았던 터라 흥미있는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한 여자동기(H)를 짝사랑 하게 됐죠. 당돌하면서도 리더쉽이 강하던 그녀의 카리스마에 매혹되어 끌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Y선배(88학번)를 좋아했고 그 둘이 결국 사귀게 됐다는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나름데로 첫 사랑의 엇갈림에 힘이 들어 군대에 가기로 작정하고 2학년 종강 후 휴학계를 냈죠. 군입대 후 병장을 막 달 즈음에 친구로 부터 그녀(H)의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걔 프랑스로 유학 갈 준비 한다더라. Y선배랑 안 됐나 봐.'

Y선배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로 헤어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미 마음을 정리한 터라 그녀의 소식에 씁쓸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에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제 첫사랑은 이렇게 흘러 가 버렸죠.

 

93년 3학년으로 복학을 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수습기자로 활동하던 신문사(학내) 선후배들을 만나 보기도 하고, 학과 선후배들과 얼굴도 다시금 익히면서 복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고사를 막 끝낼 무렵에 신문사 선배의 권고로 편집부장이란 직급을 떠 맡게 됐죠. 부임을 축하 겸해서 회식을 갖게 됐는데 제게 새로운 인연이 닿더군요. 당시 그녀(P)는 저와 같은 학년인 91학번으로 의류디자인을 전공하는 흔하디 흔한 그저 그런 귀여운 후배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만 해도 첫 사랑의 엇갈림 때문에 여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랑이란 줄다리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죠. 술 자리 중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보니, P 옆에 빈자리가 있어 아무 생각없이 그녀 옆에 앉게 됐습니다. 왁자지껄 군대가기 전에 학생운동을 했던 이야기 하며, 전경이나 백골단에 붙잡혀 닭장신세를 당했던 ..., 취루탄이나 지랄탄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을 되뇌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옆에 앉아 있던 P가 제게 말을 건네 오더군요.

"W선배님, 편집부장 된 거 축하드려요. 말로만 듣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까 선배님에 대한 소문이 왠지 딴 사람을 말하는 거 같네요. 군대 가기 전에 그렇게 야단을 떨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소문? 무슨 소문을 들었길래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 같다. 오히려 저 놈들이나 저기 선배들이 더 고생했어."

사실 군대 가기 전 89~91년 초반에 학생운동의 막바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데모가 많았었습니다. 이 글에서 분명히 밝히지만 극우파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학생으로써 내세워야 할 걸 주장했을 뿐이니까요. 아무튼 이게 그녀와의 첫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나는 학과 일과 신문사 편집 일 때문에 빠쁜 3학년1학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3학년1학기를 종강하고 방학을 맞아 P는 집이 지방이라서 내려갔고 저는 아르바이트(설계사무실)를 시작했습니다. 알바를 마치고 집에 가던 어느날, 책상 위에 두 통의 편지가 올려져 있더군요. 한 통은 프랑스로 유학간 H에게, 다른 한통은 P에게 온 편지였더군요. H에게 온 편지에 먼저 궁금증이 가더라구요. 프랑스에서 인테리어 공부를 하고 있더랍니다. 문득 내가 생각나서 편지를 썼다는 내용 등등 ..., P의 편지는 그저 그런 ....,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죠. 난 두통 다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흘러 3학년2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가을이 무르 익어갈 시즌이면 어김없이 건축과는 바쁩니다. 시내건축대전과 전국건축대전 준비에 여념이 없거든요. 설계~모형만들기~전시판넬의 작업을 거쳐 공모전에 참가해야 하는 일이란 전쟁 그 자체입니다. 1주일에 이틀 밖에 잠을 못잘 지경이니까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P는 늘 집에서 가져온 김치나 고기, 밑반찬 등등을 챙겨 작업실(아뜨리에)로 가져 옵니다. 처음에 후배가 선배에게 해 주는 배려겠거니 하고 부담없이 주는데로 받아 후배들과 함께 나눠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후배 중에 한 놈이 하는 말이 나에게 일침을 놓더군요.

"W형, 형은 사람이 왜 그래? 형수님이 뭘 갖고 왔으면 좀 기쁜 표정이라도 해라."

"형수?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 쟤는 신문사 후배야. 너네가 몰라서 그렇지 이게 다 전통이란다."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순간 나의 우유부단과 무관심이 내심 그녀에게 미안하더라구요. 이때 까지만 해도 P와 저는 이렇다 할 개인적인 대화는 없었습니다. 그저 일상적인 선후배의 관계였던 셈이죠.

 

그 뒤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됐고, 우리는 남들이 말하는 캠퍼스 커플이 됐습니다.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면서 서로의 사랑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녀와 나는 결혼 전까지 성관계는 피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저 역시 당시만 해도 숫총각(?)이었고, 성에 대해서는 정말인지 우둔했고 스스로 크리스챤이라 우겼으니까요. 그녀 역시 보수적인 가정환경의 영향인지 혼전관계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다른 커플과 다름없이 다투기도 무지하게 했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졸업을 했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고, 그녀는 집이 청주라 그나마 조건 좋은 대전에 위치한 XX백화점 광고플래너로써 직장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애정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러길 95년6월인가부터 그녀가 내려오지 않길 바라는 거였습니다. 시간되는데로 그녀가 직접 서울로 올라오겠다는 다짐만 남기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죠. 내가 연락을 하면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해 달라거나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란 시간이 지나가도 우리는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동기이자 신문사 동기인 친구가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며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퇴근 후 만나 술을 거나하게 마셔 분위기가 익을 무렵에 이 친구가 엉뚱한 말을 합니다.

"W야, 너 P랑 헤어졌다는 소문이 사실이냐?"

"뭐라고? 너 간만에 만나서 무슨 뚱한 소릴 하는 거냐? 헤어지다니 무슨 말이야?"

"아니었어? 그래. 나도 헛소문이겠거니 했다. 너네들 뗄래야 뗄 수 없는 대한민국 공식 C.C잖냐?"

"농담하지 말고. 도대체 무슨 소문이 나돌길래 그러냐? 안 그래도 요근래에 P랑 제대로 된 대화도 못 나눴다. 말해 봐. 무슨 소문인데?"

"몰랐구나? 내가 말해도 될련지 모르겠다. 괜히 고자질 하는 거 같아서 찝찝하다."

"아.. C발.. 뜸들이지 말고 말해 봐. P한테 무슨 일 있는 거지? 그치?"

"너 정말 모르는구나? 너 S라고 알지? 왜 우리 4학년 때, 3학년으로 복학했던 S 말야."

"S? 걘 P랑 같은 과 동기잖아. 그리고 걔네 둘도 없는 친구고. 설마 S랑 P가 사귄다는 말을 하려는 거냐? 그런 소문이라면 신경 안 쓸란다. S는 내가 P랑 사귀는 사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놈이고, 걔네들 형제처럼 지네는 사이란 걸 내가 잘 안다. 쓸 때 없는 소문이다."

"그렇긴 한대. 걔네들 우리가 복학하기 전에 사귀던 사이였다더라. 내가 듣기로는 우리가 복학하기 전에 둘이 심하게 다퉜나 봐. 알만한 사람들 다 알던데 ..., 그래서 지금 신무사 선후배들 난리났어. 난 이미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그 친구의 말은 내가 복학하기 전년(92년)도에 S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걸 P가 직접 목격하는 바람에 심하게 다툰 후 S는 휴학을 했고, P는 한동안 힘들어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막차를 타고 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딱거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해야 옳겠죠. 그냥 헛소문이길 바라는 마음에 혼자 집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을 위로 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3주 정도 흐를 무렵, S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W선배, 저 S예요. 잘 지내셨죠?"

"S? 아! 반갑다. 그 동안 잘 지냈냐? 이래저래 바빠서 연락도 못했다. 미안하다."

"아.. 실은 지금 P랑 같이 있어요."

"P랑 같이?"

"네"

"왜 이 시간에 너네가 서울에 있냐?" (순간 친구 말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S랑 P랑 사귄다더라더라더라)

"아~ P가 광고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야 한다고 해서 ..., 저랑 같이 왔어요. 선배, 퇴근하고 저녁 좀

얻어 먹으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

"긴히 드릴 말도 있어서 그럽니다. 꼭 좀 시간 내 주세요."

"알았다. P 바꿔 봐."

(둘이 무슨 말이 오가는 거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림)

"선배님, P가 그러는데요. 전에 만나던 그 카페에서 기다리겠대요."

"알았다."

반가움 반, 분노 반으로 뒤엉킨 감정을 억제하는데 힘들었습니다. 일손도 안 잡히고... 설계에 집중도 안 되고 엉망진창이 된 체 퇴근시간이 되길 시계만 멍하기 쳐다 봤습니다.

거의 뛰다시피 약속장소인 강남의 OO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군요. 어떤 얼굴로 어떤 몸짖으로 표정으로 그들을 대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어렵지 않게 많이 헬쑥해진 그녀의 얼굴을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너무 우스웠습니다. 둘이 나란히 앉아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S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 거리고 있더군요. 벌써부터 제3자가 되 버린 거 같았습니다. 맞은 편 텅하니 빈 소파가 멀건히 나를 기다리더군요. 그들 중 P가 나를 먼저 발견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마주 치는가 했더니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구더군요. 그런 그녀의 행동에 S도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집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너무나 당돌하면서도 당당한 그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불안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반갑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침묵이 흐르다가 내가 먼저 말문을 열렀습니다.
"얼마 전에 J(친구)를 만났다. 너희들 사귀던 사이였다지?"
"알고 계셨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선배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들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습니다. 어떤 일로 인해 저는 휴학을 했는데 그동안에 P가 너무 힘들어 했어요. 워낙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얘라 ...,"
S의 말을 들으면서 간간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 치려고 기웃거렸지만, 여전히 P는 고개를 들 줄 몰랐습니다. 화가 나다 못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그러던 중에 선배님이 복학했던 겁니다. 이제와서 저희들이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복학 했을 때 선배님께 말씀 드리려고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P도 나를 받아 들이지 않았구요."
"그래. 그래서 이제라도 둘이 다시 시작하겠다는 거냐? 그러니 나보고 그만 쟤(P)와 헤어져 달라?"
"죄송합니다. 선배님."
웃음이 나오더군요. 달리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는 웃어 보이는 거 밖에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알았는데. 하나만 물어 보자. 너네들 언제부터 둘이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거냐?"
그 순간 P가 고개를 들면서 입을 열더군요.
"오빠, 오빠를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넌 가만 있어. 난 지금 S한테 묻고 있는 거야.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한 거지?"
"사실 올해 초부터 만났습니다. P가 대전에 내려 간 후로 가끔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난 친구로써 가끔 내려갔던 겁니다. 그러다가 ...,"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습니다.
"됐다. 그만 얘기해라. 더 이상 들었다가 그나마 지금 억제하고 있는 감정 폭발할 거 같다. P야. 지금은 너한테 할 말이 안 떠오르는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마냥 너한테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니.내가 참 한심한 놈이었구나."
"오빠, 미안해요."
"너희들 참 일방적이구나. 차라리 너(P)가 직접 나한테 와서 해명을 했어야 옳지 않았니? 한동안 연락없다가 둘이 나타나서 다시 사귀니까 물러서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니? 차라리 나 모르게 니네들끼리 사귀던 말던 이렇게 나타나질 말던가."
"선배님, 저 P를 사랑합니다. 그 동안 선배님이 P랑 사귀는 거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 우리를 이해해 주십시오."
"오빠, 나 오빠랑 사귀던 거 행복했어요. 나 정말 얘(S)를 잊으려고 했는데 ...,"
"하하하. 내가 너희들한테 다시 시작하게 되서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해 줄까? 아니면 깽판이라도 피울까? 어떻게 해 줄까?"
하도 기가 막혀서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페를 나왔습니다. 너무나 분해 다시 들어가 S의 멱살을 붙잡고 훔씬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내 자신이 추해 보여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뒤로 그들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주변 선후배들은 내게 위로를 해 주면서 소개해 주는 여자들이 많았지만 난 한사코 거절했죠. 두어달 동안 거의 매일 술에 찌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간간이 들리는 그들의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내 귀까지 들릴 때마다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설계사무실에서의 일도 도통 잡히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까지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무실 소장과 신나게 싸우게 됐습니다. 제가 맡은 설계 건축주가 도면이 맘에 안 든다고 몇번을 시정요청을 할 때마다 내 주장만 내세웠고, 시공현장 사람들과도 시시콜콜 부딛쳤습니다.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어떻게 해? 도대체 요즘 왜 그래?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당장에 때려 쳐!"
"네. 그러죠.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바로 사표를 내고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저들의 소문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집에는 회사 그만둔 걸 당분간 비밀로 하고 외국어학원에만 전념했죠.

 

그 다음 해 96년1월에 독일로 떠나기 일주일 전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출국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 생활은 제게 또 다른 신선함을 주더군요. 바로 현지 사립어학연수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친구(J)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한국소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길 6개월이 흘러 내가 원하는 대학입학허가서를 발급 받았을 즈음 P에게서 한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간생략... 선배님(오빠에서 선배란 호칭으로 바뀜)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요? 그 날 뒤로 S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믿었는데 아니었나 봐요. 지금 생각해도 선배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는데 ..., 아직 늦지 않았다면 우리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연락 기다릴께요.>
쓴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습니다. 바로 찢어 버렸죠. 아마 누구라도 찢어 버렸을 겁니다. 그 뒤로 계속 일주일에 1~2통의 편지가 올 때마다 뜯어 보지도 않고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다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추억이니까요. 2년 뒤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이상 그녀에게 편지가 오질 않더군요. 독일에서 적잖은 한국 여학생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저 그런 친구나 오빠와 동생 관계였을 뿐이었죠. 단지 내 머리 속에는 성공하려는 마음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독일로 오는 여학생들 중 60%는 아무 생각없이 도피성 유학이 태반이란 겁니다. 뭣 때문에 비싼 돈 들여가면서 여기(독일)까지 왔나 싶을 정도로 1~2년 있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물론 성(sex)적인 부분도 포함해서 말하는 겁니다. 독일이 워낙 문란한 곳이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종종 바라보니 여자들에게 아예 관심조차 안 가더군요. 그렇게 4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 원하던 공부를 마치고 2000년 2월말에 귀국했습니다.

 

여전히 가시지 않는 IMF여파 때문인지 직장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건축설계사무실이나 연구실 등등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서 면접을 수십군데를 봤지만 허사였습니다. 당시 건축경기가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미 저보다 1년 먼저 귀국했던 B형(현재 같은 회사 다니고 있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부서가 증설 된다며 입사시험을 치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필기시험을 거쳐 면접시험까지 통과해서 입사할 수 있었죠. 그렇게 내가 원하던 건축쪽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써는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던 터라 열심히 일했습니다. 때때로 여자도 만나보고 사귀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7개월이란 짧은 시간동안 사귄 여자였지만, 역시 딴 놈이란 눈이 맞아서 떠나더군요.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이젠 내 팔자려니 하고 생각하니 더 이상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더군요. 그래서 혼자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워낙 혼자였던 시간이 긴 탓이었던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부모님께도 이미 설득시켜 드렸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또 그게 아닌가 봅니다. 가끔 선을 보라시면서 이쁜 규수를 소개해 주실때 마다 난 그녀들에게 말합니다.
"나 독신주의예요. 그리고 불구거든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년 2002년6월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직장동료와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로비를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P였습니다.
"선배님. 저예요. 기억하시겠죠?"
"네? 누..구시죠?" (사실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저 P예요. 정말 기억 못하시나 보죠?" (살짝 미소를 짖는 그녀가 가식스럽게 보였습니다)
"아~ 기억난다. 신문사 후배 맞지?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냐?"
"아 네. 여기 기획실에 볼 일이 있어서요.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여기 광고를 맡았거든요."
"그래? 아무튼 반갑다. 서울에 있나 보지?"
"네. 선배님 언제 귀국하신 거예요?"
"꾀 됐어. 벌써 3년이 넘었는 걸. 나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만나면 커피나 한잔 하자. 어차피 자주 볼테니까"
급하게 도망치다시피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분 참 묘해지더군요. 드럽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날 오후내내 마음이 착찹하더군요.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지 B형에게 퇴근 후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 뒤 로비에서 B형을 기다리고 있는데 P가 등뒤에서 인기척을 보이더군요.
"선배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퇴근하실 거면 저랑 얘기 좀 해요."
"아직도 안 갔니?"
"네. 일단 오늘은 프리젠테이션만 제출하고 다음 주부터 일이 시작되요."
"그런데 할 얘기가 있다고?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너랑 나는 할 말이 없을 거라 생각되는데. 그리고 난 선약이 있어. 다음에 보자. 미안!"
마침 그 순간에 B형이 저 먼발치에서 나타나더군요. 그녀를 등뒤로 하고 난 회사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 뒤로 그녀에게 한 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광고 일로 바빠서 그러려니 했죠.

 

바로 지난 주 딱 1년만에 학교후배들이 주최하는 신문사(동아리)행사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 옆에는 한 남자가 서 있더군요. 남자인 내가 봐도 한마디로 멋진 모습을 한 사내였습니다. 중간에 우리는 시선이 마주칠 때면 일부러 나는 외면했죠. 이번 행사에 광고후원을 그 사내가 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녀와 동석을 하게 됐습니다. 넌지시 묵례인사를 하더니 내쪽으로 다가 왔습니다.
"인사해요. 이쪽은 한 때 날리던 신문사편집부장님 W선배구요. 이쪽은 이번에 새로 거래하는 △△이벤트회사 대리세요."
"안녕하세요. W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아니, 누가 보더라도 그 둘은 연인사이 처럼 보였습니다. 그 생각을 하다보니 알지 못할 분노가 왈칵 치밀어 오더군요. 어떻게 내 앞에 당당히 다가와서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서둘러 J가 있는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J가 그러더군요.
"저 치. P랑 몇달 전에 만나는 사이라더라. 벌써 몇 명째인지 모르겠다."
J의 말로는 나와의 사건을 알만한 선후배들은 다 P를 따 돌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이렇게 떳떳하게 행사에 나타나서는 그녀의 모습이 참 가증스럽게만 보입니다. 혹자는 아직도 내가 P를 못잊어서 이런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닙니다. 다만 난 그녀의 그 마음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도대체 몇장의 철면피를 얼굴이 쒸웠길래 저토록 당당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작년에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요? 알 수 없는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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