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소."
비서를 통해 던부 다 들었을텐데 남의원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
더군다나 고형사가 이 집에 온 것은 낮이었고 지금은 벌써 새벽 2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비서분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그 비서는 보고하는 방식이 상당히 독특하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요?"
고형사는 더 참지 못하고 남의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네 더러운 목숨 지켜주려고 왔다. 이 쓰레기야."
갑자기 달려든 고형사의 눈에 살기가 보이자 남의원의 거만했던 눈빛이 한 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컥, 이거 못놔? 경찰을 부르겠다."
"여기 와 있잖아. 기자들만 부르면 되겠구만 그래. 이 두더지 같은 놈아."
고형사는 한껏 힘을 준 손은 놓으며 남의원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세워진 엽총을 들어 만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하러 준비했나? 그가 찾아오면 죽일 셈인가?"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남의원이 목을 메만지며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고형사는 느긋하게 총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이거, 총알 들었나? 멧되지 정도는 한방에 가겠군 그래........"
이렇게 말한 그는 총 끝으로 남의원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푹 찔렀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놈...."
남의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부르르 떨자 고형사가 써억 웃었다.
"그럼 어서 나가봐야겠군 그래...... 나가서 경찰을 불러라. 경찰이 오기 전에 단두대가 먼저 올 것이다."
"뭐, 뭐라고?"
"네가 주머니를 채우는 동안 영문도 알지 못하는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그들의 무덤에 꽃이라도 바쳤나?"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남의원이 소릴 지르면서 자신을 향하고 있던 총구를 손을 휘둘러 치웠다.
그와 동시에 고형사도 벌떡 일어서며 총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다시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곤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분노에 찬 표정으로 비웃었다.
"단두대는 바로 너같은 놈들이 만든 것이다. 너희가 만들어낸 저승사자지. 그는 자신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하기 위해 널 찾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위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 밖으로 나간 비서가 다시 오지 않고 있구만....... 그럼 난 갈테니 여기서 깨끗하게 죽어라. 여기에 흑만 채우면 되겠군. 무덤은 필요 없겠어. 안그런가? 국회의원 나으리."
말을 마친 고형사는 잡았던 멱살을 놓으며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뒤에선 남의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
"뭔가?"
"범인이 와 있는데 그냥 간단 말이오?"
"나도 죽기는 싫으니까."
고형사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실을 나왔고 계단을 오르면서 비서와 마주쳤다.
손엔 마실 것을 들고 있던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는 그냥 지하실을 나와버렸다.
이층으로 올라온 고형사는 방금 나온 문의 앞에 앉았다.
만일 단두대가 오늘 남의원을 찾는다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오지 않고 해가 뜬다면 남의원은 거처를 옮길지도 모른다.
외국으로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벌써 외국으로 도망치듯 출장을 간 인물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놔버리는 꼴이 되는 상황이기에 남의원도 이제까지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형사의 방문이 그를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든 꼴이니........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의원이 움직이려 한다면 그가 잡을 것이다.
남의원이 다음 목표라는 심증이 굳어진 이상 그는 남의원을 미끼로 쓸 각오를 하고 있었다.
쌍칼은 졸린 눈을 비비며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고형사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몰래 근처에 부하들을 상당수 배치시켜 놓았다.
처음 고형사가 말한 대로 범인이 나타나면 먼저 그냥 들여보냈다가 바로 쳐들어가서 숫자로 밀어부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신이 단두대를 잡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형사 몰래 애들을 풀어서 단두대를 잡으려고 했지만 고형사가 자신과 함께 행동하자고 하는 바람에 그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단두대를 잡으면 어떻게 해서는 고형사를 구슬려서 자신이 혈투 끝에 잡은 것으로 해달라고 사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도 아무런 이익도 없이 이렇게까지 고생했으니 그정도의 부탁은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고형사라는 사람은 유명세 따위는 관심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주변에 잠복을 시켜놓은 부하 하나가 차 유리창을 두드렸다.
쌍칼은 짜증나는 표정으로 유리창을 내렸다.
"왜?"
"좀 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단두대로 보이는 사람이 저기 쓰러져 있는데요."
놀란 쌍칼이 고개를 내밀고 부하가 가리키는 쪽을 보자 거기에 부하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차에서 내린 그는 그쪽으로 뛰어갔다.
부하의 말대로 정말 단두대로 보이는 자가 온 몸에 검은 천을 두르고 등에 칼을 멘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쌍칼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들 몰래 남의원의 집으로 들어가야 할 인간이 자기가 타고 있던 차 바로 뒤에서 쓰러져 있으니....
고형사는 순간 이 자가 단두대라면 어서 자신의 거처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이 자 또한 저번처럼 단두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무슨 이유로 피까지 흘려가며 이곳에 쓰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으면 죽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번 기회에 유명세를 타보려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야, 고형사님 오시라고 해.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었나 보다. 에이....씨팔. 왜 여기서 뻗어있어."
전화를 받고 달려온 고형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태를 보니 아직 죽은 것은 아니였지만 맥박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우선 그는 쌍칼을 시켜 태성을 자신의 차에 실었다.
"저기.... 형님."
"왜?"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 자가 단두대 맞습니까?"
"이자는 아냐."
"에? 그럼 이건 누굽니까?"
"내가 심어놓은 친구야. 아무래도 단두대가 근처에 있다가 이 친구를 공격했나 보구만. 난 병원으로 갈테니까 자넨 계속 여길 감시해줘."
"예. 그럼...."
쌍칼이 문을 닫아주자마자 고형사의 차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사라지는 차를 보며 쌍칼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던 자는 분명 긴 칼을 등에 메고 있었고 옷차림도 단두대가 맞는 것 같은데 고형사는 엉뚱한 얘기를 하더니 데리고 가버렸다.
그리곤 진짜 단두대가 아직 근처에 있으니 계속 지키란다.
이건 분명히 자길 빼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단두대일지도 모르는 자를 데리고......
처음 병원으로 향하던 고형사는 잠시 차를 멈추었다.
우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단두대는 왜 이지경이 되어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잠깐이라도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왜 그를 데리고 쌍칼 몰래 데리고 나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고형사는 고개를 새차게 흔들고는 우선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자는 지금 맥박이 약해질 정도로 목숨이 위험해져 있다.
이대로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
우선 살리고 보자는 생각에 고형사는 다시 차를 몰았다.
노과장은 오랜만에 집에서 일찍 잠이 들었었다.
그동안 목이 잘린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다고 무거운 헤부도구를 들고 이리저리 휘두른 덕분에 피로가 겹쳐 있었다.
자식들은 전부 출가를 했고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마누라와 조용히 살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들어왔다며 좋아하는 마누라와 같이 나가서 좋아하는 장어구이에 수주도 한 잔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근데 소주를 먹고 너무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깨고 말았다.
지금 일어나면 다시 잠들기는 힘이 들 것 같아 그냥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그대 갑자기 이상한 소리에 잠이 팍 달아나 버렸다.
소리는 거실에서 들리고 있었다.
도둑이 든 것이라는 생각에 노과장은 천천히 일어나 양말서랍 밑에 있는 전기봉을 꺼냈다.
늙은 마누라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오래 전에 하나 장만해 둔 것이다.
노과장은 전기봉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살금살금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고민했다.
조용히 지켜보다가 살금 문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놀라도록 크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갈 것인가.
어떤 방법이 효과가 더 클지 생각하다가 노과장은 두 번째 방법으로 결정했다.
아직도 밖에선 사람소리가 들렸고 잠시 잠잠해지자 그는 갑자기 문을 열며 뛰어나갔다.
"도둑이야!"
이렇게 소리치며 그는 전기봉을 시커먼 그림자를 향해 휘둘렀다.
태성을 바닥에 눕히던 고형사는 노과장이 갑자기 뛰어나오며 휘두른 전기봉을 팔뚝으로 급하게 막으며 자신이 누군지 말하려 했지만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았다.
도둑이 쓰러지는 것을 본 노과장은 얼른 뛰어가 스위치를 올렸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려 덤벼들지도 모르는 도둑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내 전기봉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 고형사? 자넨가?"
"어이구....... 네..... 영감님.... 접니다. 어이구......."
"아니, 자네 여기서 뭐하는 건가? 직업 바꿨나?"
이렇게 물으며 다가온 노과장은 숨을 헙 들어마셨다.
주저앉은 고형사의 옆에 누군가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방 안에서 마누라가 깨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는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고형사가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여기밖에는....."
"우선 옮기도록 하지."
잠시 후, 노과장은 시집간 딸의 방에 태성을 눕히고는 응급처치를 하고 닝겔을 꼽았다.
그리곤 아직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자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지금 데려가면 바로 경찰에 알려지게 됩니다."
"자네가 바로 경찰이잖아."
"사정이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내가 뭐 용서고 뭐고 할게 있나.....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건 그렇고 용케 잡았구만. 어디서 잡았나?"
노과장은 쓰러져 있는 태성을 보고 그가 단두대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고형사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밖은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참 태성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고형사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사실 나도 이자가 죽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 통쾌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 어디 나만 그런가?"
"하지만......"
"말할필요 없네. 자네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하지만 이 자가 앞으로 사람을 더 죽이는 것은 막아야 할텐데....... 그렇게 할 자신은 있나? 그럴려면 이자를 감옥으로 보내야 할텐데."
"그건 이 자가 깨어나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구만...... 위험하진 않겠나?"
"그렇진 않을 겁니다."
노과장은 한숨을 쉬며 고형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도 이젠 이 짓 못하겠구만."
"그럴 생각입니다."
"어쨌든 마무리 잘 하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노과장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방을 나갔다.
태성의 옆에 누운 고형사는 긴장이 풀리며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태성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작은 방에 자신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지난 밤의 일을 떠올렸다.
인겸이 건네준 해독제를 씹어 삼키며 그는 남의원의 집을 찾아갔다.
고형사의 차가 있는 것을 보고 아직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봉고차에 많은 수의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 그는 그 차의 뒤를 돌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으로 침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그의 몸은 해독제의 기운이 퍼지기 전에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곤 바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자기를 잡아야 할 고형사가 한 번 살려준 것도 모자라 이젠 자기를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데려와 치료까지 하고 옆에 누워있는 것이다.
고형사는 다시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서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바로 고형사가 눈을 떴다.
그는 태성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는 척 하며 내버려 두었다.
어찌되었든 그의 살인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는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고형사는 마음속으로 저 자가 다시는 단두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서 서장에게 제출할 사직서에 뭐라고 쓰면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과장의 집에서 늦은 점심을 얻어먹은 그는 방에서 작성한 사직서를 품에 넣고 서로 향했다.
노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슬그머니 웃더니 경치 좋은 낚시터에 식당이나 하나 하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고형사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일손이 딸리면 안되니까 자주 와서 도와달라는 말까지 했지만 고형사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나와서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사표라는 것을 만들고 나니 이제까지 혼자서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범인을 잡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던 자신의 과거가 한순간의 영상으로 지나쳤다.
후회는 되지 않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아직 장가도 가지 못한 자신이 처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이제부턴 사람같이 살아야겠다는 웃기는 욕심이 이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만 결국 단두대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체포하지 못한 채 그만두는 것이 이제와서 아쉬워지는 것은 또 무슨 감정의 장난인가......
노과장의 집에서 나온 그는 차를 그냥 두고 걸었다.
걸으면서 이제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다 자신의 차가 견인되어 가는 것을 보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뛰어서 쫒아가고 있는 아줌마를 보고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자신의 안주머니에 있는 경찰뱃지가 생각났다.
그 뱃지만 운전석에 잘 보이도록 놔두면 절대 견인당하는 일은 없었다.
이제 그 특권도 아쉬워질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웃음이 일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누군가가 단두대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는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데 누군가 그의 옆에서 같이 걷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슬쩍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고형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 인겸."
"누가 듣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유명한데 말이죠."
그의 말은 사실이다.
아직 신문과 뉴스에선 이인겸이라는 자가 범인이라고 떠들고 있으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인겸이라는 이름을 모를리 없다.
고형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그냥 깔끔한 양복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한 쪽 팔이 없었다.
속이 텅 빈 왼쪽 소매가 너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팔..........."
"제가 샀습니다. 이 팔을 주고."
"무얼 말이오?"
"우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근처 다방에 들어간 둘은 대충 커피를 시키고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인겸은 처음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있었다.
살기가 베어 있던 그의 눈에는 사람다운 분위기가 돌고 있었고 회색으로 변한 눈동자에도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인겸은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고형사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숨기고 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고형사님. 저 때문에 형이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가 당신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거요."
인겸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조직의 부름을 받아 죽음을 가장했을 때 형이 바로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사부님에겐 오래된 빚을 갚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말이죠. 만일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누나의 복수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나와의 약속은 그런 식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잊은 것이죠."
"그럼 당신이 직접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타났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제가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말이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