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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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격렬했던 전투를 치룬 후로부터 우리의 이동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요령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요령이라는 것이 좀비를 죽이는 요령이 아닌 좀비에게서부터 피하는 요령이라는 게 웃긴 점이라면 웃긴 점이랄까?
이 좀비들은 느리다. 멍청하다. 하지만 끈질기고, 힘이 세고, 감염성이 있다. 그 덕분에 더욱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고, 당하는 순간 공포심을 배로 증가시킨다.
좀비에게 물리면 K-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잠복형으로, 감염된 즉시 그 사람을 좀비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몸이 쇠약해졌을 때가 바로 바이러스의 활동 시점. 서서히 사람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해 만약 해당 인간이 죽는다면 즉시 그 사람은 좀비로 변화된다. 내가 이 태완이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죽은 시체의, 썩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누런 이빨에 물어뜯겼는데 과연 몸이 무사할까? 이런 위급시에 얻은 상처는 아주 사소한 위생상태의 변화만으로도 인간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켜. 더군다나 지금은 한 여름이고. 결론은 물리지 말라는 거지."
과연. 그런 이야기였다. 하기야 그 놈들이 누구 좋으라고 이빨자국만 살짝 내겠는가? 한움큼을 물어뜯을텐데 몸에 그렇게 큰 이빨자국이 나고도 멀쩡할 리가 없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고, 각종 잡병에 시달릴 것이다. 거기다 목 같은데를 물어뜯겼다면.. 게임오버지.
우리는 도장으로 가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길을 가는동안 대략 10마리의 좀비를 만났다. 우리는 녀석들 중 단 한 마리만을 죽이고 그 길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 물론 몇몇 놈들은 우리에게서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피해 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천천히 길을 가며 조사해본 바로 녀석들의 먹이 감지 센서는 바로 '기척'. 소리도, 시야도, 냄새도 아닌 기척이다.
녀석들의 시각과 후각이 제로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확신하고 있던 우리는 혹시나 녀석들의 청각이 발달되었나 해서 먼 거리에서 녀석들 근처에 돌을 던져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녀석들은 돌이 바로 근처에 떨어져 큰 소리가 나기 전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실험을 해 보았다. 큰길가에 나 있는 문방구점에서 세발 자전거를 가져와 큰길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좀비들 근처로 멜로디 사이렌을 켜놓고 있는힘껏 굴려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길 저 쪽까지 달려가버린 세발자전거를 좀비들은 딸리는 다리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열심히 쫓아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대폭소한 우리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도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길가에 서 있던 좀비는 태완이가 목도로 밀거나 나와 윤호가 파이프로 밀치면서 지나갔다. 일단 넘어지기만 하면 별 위협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완전히 열려있던 도장 안에 있던 좀비 한마리..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는 녀석을 처리하고 도장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근데 너네 관장님도 대단하다. 이렇게 문단속도 안 하고 살어?"
"그게 아니고, 제대로 된 위험감지센서가 있는거지. 그 뉴스 뜨는 걸 보자마자 관장님은 아이들부터 챙겼어. 근데 늬들은 뭐냐? 내가 그 난리를 떨어야 겨우 우리집으로 왔잖아. 나 진짜 너희들이 좀비 된 꼴 봤으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상상도 안 간다."
"으음. 그건 확실히 싫군."
구조를 잘 모르는 친구녀석들에게 아무데나 뒤지도록 시켜놓고 나는 관장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얻은 무기는 역시 익숙한 곳에 걸려있던 진검. 한국의 장인이 만든 도검이라는데 글쎄 나는 그정도까지 알 수준은 아니라 별 감상은 없었다. 그 외에 3단 이상부터 만질 수 있는 낫 달린 쌍절곤, 창 등이 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길을 다니기 위해선 좀비들과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러려면 기다란 무기가 필요하다. 다른 케이스로, 확실하게 전투를 해야 할 상황을 위해 좀비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가 또한 필요하다. 창을 짧게 해서 쓰면 좋겠지만 낭창거리면서도 튼튼한 저 중국창을 부러뜨릴 능력이 내겐 없다.
나는 기다란 무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가져온 식칼을 떠올렸다. 우리 집에 있던 것 중에 제일 큰 것을 골라온 것이다. 나는 이 녀석을 곤봉 끝에 달면 훌륭한 견제용 무기가 되리라 생각하며 가볍고 튼튼한 막대기를 찾아 헤맸다. 쇠파이프는 조금 무거워서..
"아 김윤호, 김태완! 거기 체육관 모퉁이에 선반 있을거야. 거기서 우리가 쓰는 오픈핑거 글러브 있어. 그거 3페어 챙겨."
"왜?"
"글러브 끼면 손 물릴 가능성이 적어지니까. 그리고 싸우다보면 땀 때문에 무기를 미끄러트릴수도 있잖아."
"이거 말하는거야?"
태완이가 MMA용 글러브를 들고 오며 말했다. 나는 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그건 펀치글러브 겸용이라 쿠션이 꽤 두꺼워. 그거 끼고는 무기 못 휘둘러. 거기 바이크글러브처럼 얇지만 그랩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검은 장갑 있을거야."
"아 찾았다 찾았다. 이거 들고가기보단 아예 지금 끼고 있자."
"뭐 그러던가.."
나는 진검과 관장님 책상에 들어있던 현금, 던지는 나이프 5자루를 들고 나왔다. 현금은 자판기에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나중에 이 사태가 끝나면 갚아드려야지 뭐.. 지금은 일단 챙길 수 있을만큼 챙기자.
내가 챙긴 물건들을 들고 방 가운데로 오자 태완이와 윤호도 각각 챙긴 물건들을 들고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가 챙긴 물건들은 아래와 같았다.
목도 세 자루
진검 두 자루(한 자루가 더 있었다!)
죽도 두 자루
나무배트 두 개(초단 이상 기합용, 격파용)
서바이벌 나이프 세 자루(이건 파는건데 윤호가 멋대로 꺼내왔다. 도둑놈새끼)
스로잉 나이프 일곱 자루
아이언피스트 두 개
나무곤봉 두 자루
그래플링 글러브 세 페어
"이 정도면 되겠지? 솔직히 이 이상 들어봤자 들고가지도 못할 것 같아."
"그래. 여기 말고도 바로 옆에 철물점 있어. 거기도 들릴 거니까.."
"에? 더 가자고?"
"이왕 나온거 더 가야지 뭐. 그리고 좀비 상대로는 쌍절곤보단 쇠망치가 나을 테니까."
나는 글러브를 손에 끼고 목도를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목도를 몇 번 휘둘러본 뒤 내려놓고 곤봉과 식칼의 손잡이를 대조해보았다. 별로 큰 차이는 없었다. 나는 두 녀석에게 각각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린 뒤 곤봉이나 쇠파이프에 나이프를 달아놓으라고 시켰다. 투명한 박스테이프를 이용해서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윤호놈이 이상한 짓을 했다. 곤봉과 나이프를 이용해 창을 만들지 않고 둘을 기역자로 맞붙혀 낫과 같은 찍는 무기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괴상한 무기를 만들고 좋아라 하고 있는 윤호에게 내가 말했다.
"뭔 짓이야?"
"어? 아니 그게 나는 그런 무기 다루는 건 익숙하질 않아서 그냥 찍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네가 만든 그걸로 폭 찔러봤자 좀비를 죽이진 못할 거 아냐.
나는 말없이 관장실로 가서 낫달린 쌍절곤을 가져왔다.
"이거랑 곤봉 연결하는게 백만배 낫겠다."
"...."
윤호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더니 곧 궁시렁거리며 자신의 무기를 해체해 우리와 같은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태완이는 윤호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더니 관장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진환아. 저 창은 안가져가?"
"쓸줄도 모르고 취급도 어려워. 또 크고. 그건 휘청거리는 창이라서 견제용으로는 별로야. 대 인간용이지 대 괴물용은 아니야. 그렇다고 좀비를 확실히 죽일만한 물건도 아니고."
"흐음.."
윤호가 무기를 고치는 동안 나는 서바이벌 나이프 세 자루를 다시 챙겼다. 휴대할 수 있는 단검이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곧 무기의 수리를 마친 윤호와 함께 우리는 각각 무기를 챙기고 체육관을 나섰다. 아마 다시 볼 일을 없겠지만, 세상이 안정되어 다시 여기서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빌었다.
"다음은 철물점이랑 편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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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으아아아!"
푸석
정말 듣기싫은 소리였다. 내가 생각해낸 무기로 죽이는 거지만, 넘어진 좀비의 두개골을 식칼창으로 찔러 쪼갤 때 들리는 서걱거리는 소리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뭐랄까, 뭔가를 자르는 서걱 하는 소리와 쩌억 하며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를 합친 것 같달까? 거기다 그 촉감. 뻣뻣하지만 부드러운 살을 가르고 들어가며 뼈나 장기에 걸려 뚝뚝 끊어지는 그 느낌은 기다란 곤봉을 타고 내 손에 똑똑히 느껴졌다. 정말 할 짓이 못 된다.
체육관에서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붙은 편의점에 들어가 좀비 두 마리를 없앴다. 문을 여는 순간 벨이 울리는 바람에 달려든 좀비의 머리를 태완이가 눈부신 솜씨로 가르며 일단 한 마리. 무서운 속도로 때려내린 진검은 소뇌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좀비의 정수리부터 턱까지를 둘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깊히 박힌 칼을 뽑아내기 위해 태완이는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렇게 넘어지는 좀비 옆에서 달려오는 다른 놈. 우리는 옆으로 급히 달려 피한 뒤 껌 진열대를 넘어뜨리고 그 너머에서 대기했다. 아니나다를까 진열대에 걸려 넘어진 좀비를 윤호가 목도로 두들겼고, 확실히 죽이지 못한 것을 확인한 나는 카운터의 계산기를 뽑아다 내리쳤다. 그래도 움찔거리는 좀비를 보고 내가 식칼창으로 내리꽃아 뒤통수를 쑤신 것이다. 정말 싫다.
"일단 여기서 인스턴트랑 음료수, 과자같은 걸 가져가자."
"짐이 많은데 말이지."
"만약을 위해서야. 부피가 작고 안 썩는것만 골라서 가져가자구. 음료수는 물만. 콜라같은거 챙겼다간 주욱는다? 특히 김윤호."
"내가 뭘!"
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쇼핑백에 육포나 초콜릿, 껌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가스가 떨어지거나 전기가 끊어질 것을 대비해 라이터를 충분히 챙겼다. 진열대에서 빙빙 돌고 있는 보충이 가능한 고급 지포라이터도 다섯개쯤 챙겼다. 담배는 물론 안 챙겼고.
가정시간에 배운 걸 여기서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보관이 용이하고 위급할때 쓸 보조식품, 그리고 약을 챙겼다. 약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던 나와 윤호는 태완이가 여러가지 약을 챙기는걸 보고 부리나케 태완이 흉내를 냈다. 마데카솔과 부루펜 등을 챙기던 나는 다른 약을 보려다가 태완이가 약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는 걸 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괜한 거 챙겨봤자 짐만 될테니 녀석에게 맡기자.
슬슬 나가려고 하는데 윤호가 태완이 옆에서 뭔가를 덜컹거리면서 꺼냈다. 보니 녀석은 구급상자 키트를 꺼내고 있었다. 먹는 약을 생각하다보니 저걸 생각 못했군. 저 안엔 붕대라던가 가위, 바늘, 실 등이 있어서 기본적인 응급처치는 가능하다. 다만 그걸 제대로 쓸 놈이 있을까 하는 게 문제겠지.
"대충 챙겼으면 가자 다들."
"어."
"딸리면 나중에 또 오는거지 뭐."
나는 문을 열기에 앞서 문에 달린 종을 떼어버렸다. 혹시 윤호 말마따나 또 왔을때 이 종 때문에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을 살며시 열고 옆의 철물점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좀비들이 서성거렸으나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철물점은 문 자체가 없어서 자칫 뭔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철물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짐을 많이 챙긴 우리는 일단 짐을 입구쪽에 내려놓고 제일 우선인 무기를 챙겼다. 일단 망치. 윤호가 장도리를 챙기고 있는데 내 눈에 주인 방 근처에 놓여있는 손도끼가 보였다.
"야아 이거 쓸만한데.."
손도끼는 두가지 타입이 있다. 손잡이가 짧고 날이 긴 넓은 도끼 유형과, 손잡이가 기다랗고 끝에 날이 붙은 전형적인 유형의 도끼. 이건 전자였다. 이거면 잘 하면 목을 자르는데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도끼를 천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무거웠다.
"어 진환아 이거좀 봐."
태완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손도끼를 들어야 할지 넣고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걸 넣었다 빼었다 하며 태완이에게 다가갔다. 태완이가 무언가를 집어들며 말했다.
"타정총이야."
"타정총? 그게 뭐야?"
태완이는 타정총이라 부른 물건과 작은 책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공사장에서 못 박을때 쓰는 총 있잖아? 그거."
"오오 대못총? 그거 멋진데. 대한민국에서 총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니까. 근데 그거 어떻게 쓰는줄은 알아?"
"뭐 대충은.."
태완이는 예의 그 작은 책을 뒤적거렸다. 설명서인 모양이었다. 설명서를 읽고 있던 태완이가 얼굴색을 흐리면서 말했다.
"아 이거 못쓰겠다."
"왜?"
내가 묻자 태완이는 타정총의 주둥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이 부분을 못을 박고 싶은 곳에 꾹 누르고 쏴야 한대. 좀비한테 다가가서 이걸 누르고 쏘느니 그냥 검이 낫지 않겠어?"
"흐음.. 줘봐봐."
나는 타정총을 받아 주둥아리쪽을 살펴보았다. 과연, 이 총의 주둥아리쪽엔 원통형의 조그마한 파이프 모양 쇠가 덧씌워져 있었는데, 이걸 꾹 누르니 뒤쪽으로 밀리면서 속에 발사구가 보였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하면 고정시킬 수 있을까 하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잠깐동안 주변을 뒤진 나는 찾던 물건을 발견하고 말했다.
"이걸로 개조를 해 보지."
"글루건? 그건 왜?"
뒤쪽에다 글루 스틱을 넣고 전력을 공급한 뒤 방아쇠를 누르면 강력한 본드가 나오는 글루건을 찾아낸 나는, 그걸 이용해 타정총의 입구 부분을 뒤로 당긴 후 봉합시켜 버렸다. 태완이가 작게 탄성을 지르면서 말했다.
"대단한데?"
"내가 좀 하지. 킥킥. 일단 이거 두 개 다 가져가자. 타정총은 근데 못을 어떻게 쓰는거야?"
"어.. 자동권총과 거의 같은 원리인데, 코드를 꼽아야 쓸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이건 충전식인것 같아. 우리한텐 행운이지."
태완이는 설명서를 보며 타정총 옆에 있던 못과 이상한 색색깔의 주렁거리는 줄을 챙겼다.
"그게 뭐야?"
"화약. 이걸 못 뒤에 붙이고 장전해야 타정총이 나가는거야."
"진짜 빨리도 이해한다."
태완이에게 타정총을 맡기고 글루건을 챙긴 뒤에 나는 윤호를 찾았다. 녀석은 망치와 장도리중 무엇을 챙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녀석 옆에는 튼실해보이는 쇠파이프 두 개와 알루미늄 배트가 있었다. 나는 파이프를 치우면서 말했다.
"우리 이미 짐이 넘칠듯이 많으니까 이건 두자. 알미늄 배트는 챙기고."
"아 그것보다 나 얘내중에 뭘 골라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장도리와 망치를 보며 잠깐 생각을 했다. 망치가 상대적으로 무거운 만큼 살상력은 크겠지만 장도리는 뒤가 뾰족하니까 여러가지 용도에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레로도 자주 쓰이고. 나는 말없이 장도리를 챙기라고 한 뒤 입구로 나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이제 가자. 날이 어두워질라고 그래."
삼류 좀비영화처럼 날이 어두워지면 좀비가 강해진다던가 하는 설정은 없겠지만 시야가 차단되면 불리한쪽은 우리다. 그것도 절대적으로. 내 말을 들은 태완이와 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옷의 틈이라는 틈, 가방과 쇼핑백의 구멍이라는 구멍에 있는대로 무기를 쑤셔넣은 우리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따. 특히 태완이는 작은 몸집에 온 도검류를 다 챙긴 탓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목도는 무거워도 챙기기가 쉬웠지만 죽도는 손목 분리대 때문에 상당히 방해가 되어서 일단 여기에 버리고 가기로 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 Home sweet home 으로."
"아 배고파.. 샤워도 하고 싶다."
나와 태완이가 궁시렁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윤호가 말했다.
"야 저기 봐봐."
"뭐?"
윤호가 가리킨 곳은 길 건너편이었는데, 좀비 두 마리가 사람 시첸지 같은 좀비인지 모를 무언가를 열심이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저게 뭐?"
"실험 또 해보자구. 나 그때 웃겨 죽는줄 알았다."
싱글벙글거리는 윤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누구누구랑 연락이 없다고 지랄을 하더니 이젠 혼자 신났다. 이런 상황에 좀비들을 자극해봐야 좋을 게 하나 없겠지만 우리들 근처엔 좀비가 한 마리도 없었고, 아까의 실험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전할지 알고있던 나는 맘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자.. 1번투구 김윤호 갑니다."
윤호는 짐을 내려놓고, 돌멩이를 하나 집어든 뒤 퉁퉁한 몸으로 멋지게 와인드업을 하며 놈들에게 돌을 던졌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며 한 놈의 머리에 돌이 맞았다. 그 놈은 먹고있던 시체에 얼굴을 박았고, 뭔가를 느꼈는지 다른 한 놈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감지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있었다. 윤호는 키득거리면서 돌멩이를 하나 더 집으려고 몸을 숙였다.
"자 하나 더.."
땡그랑 땡땡
윤호가 돌을 집어들려는 순간 등에 지고 있던 야구배트가 땅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저 쪽에 있던 그 좀비 두 놈이 이쪽을 확 바라보았다.
"아.. 미친."
"야 빨리 가자. 나 더 피보기 싫어."
"쏘리 쏘리."
우리들은 좀비들이 멀리 있음에도 잔뜩 쫄아 짐을 추스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걷고 있는데 익숙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탁..
발걸음 소리? 아니 근데 너무 간격이 짧다. 이건 흡사 달리는..
유난히 감이 뛰어난 나는 이상한 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태완이를 밀고 윤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윤호가 짜증을 내며 내게 말했다.
"뭐야 임마! 왜 차!"
"빨리 뛰어 미친새꺄!"
"뭐?"
그제서야 윤호와 태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녀석들 역시 뭣빠지게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 뒤의 그 좀비들이, 우리에게 미친듯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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