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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9) 한밤중의 레이스, 그리고.

Ruka |2009.08.07 13:21
조회 1,246 |추천 1

 

 

 

 

 

누구든 어렸을적엔 의례 '술래잡기'라는, 인류 탄생시절부터 존재하는 원시적인 놀이를 해 보았으리라 믿는다. 근데 아무리 단순한 술래잡기 놀이라도 쫓기는 사람 입장은 의외로 무섭다. 어떤 이유가 붙었건간에..


그런데 그 쫓아오는 놈들이, 나를 진심으로 뜯어먹기 위해 전력으로 뛰어오고 있다면 그거야 말할 것도 없지.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참 싫어하게 될 것 같다. 그것고 한밤중에 말이다.


"쿠허! 쿠허! 께아아아아아악!"


우리가 타고 있는 봉고차는 절대 양철판으로 만들어진 마리오카트같은 부실한 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 괴물들의 소름끼치는 괴성은 차의 외벽을 뚫고 우리의 귓속까지 파고들어왔다. 수정형이 놈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외쳤다.


"아 미치겠어 저놈의 비명소리! 어떻게좀 해봐 진환아! 나 운전대 놓을 것 같아!"


"절대 안돼요! 귀막고 정신차려요 수정형!"


나는 오른쪽 상반신을 차 밖으로 내놓고 뒤를 쳐다보았다. 다행이도 놈들은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았는데(차 뒤를 바짝 붙어올 정도라면 윤호는 벌써 죽었다), 무서운 건 저 놈들은 체력게이지라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놈들은 자전거를 힘차게 몰아야 낼 수 있을정도의 속도를 끝없이 유지하며 우리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한 놈 빼고는 아까 수정형이 던진 화염병에 맞아 온 몸이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한밤중에 도로를 달리고 있는 불타는 시체라! 내 이 동네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불타는 시체와 술래잡기를 하고 놀 줄 누가 알았을까?


쿠당탕


내가 어떻게 칼을 던질까 손을 휘적거리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일 앞에서 달리고 있던 놈의 한쪽 다리가 두동강이 나면서 자빠져 데굴데굴 구르며 빠르게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놈의 몸뚱아리는 제일 뒤에서 두번째로 달려오고 있던 놈에게 명중해, 결과적으로 우리는 좀비 두 마리를 처리한 꼴이 되었다. 아마도 썩은 몸에 불까지 붙은 채 몇분을 달리고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른 놈들은 아직 쌩쌩해 보였다.


언젠가 말했듯이, 칼 던지기는 내 특기 중 하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이 스물에 나만큼 칼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달리는 차 뒤를 따라오고 있는 달리는 괴물에게 칼을 맞추라니.. 관성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웃겠다.


내가 체육관에서 가져온 비도는.. 몇 자루였더라? 하여간에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비도는 다섯자루.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은, 아까 나가떨어진 두 놈과 방금전에 따라붙은 놈들을 빼고 더해 여덟마리. 참으로 장관이었다.


"진환아, 간다!"


달리고 있는 차에서 머리를 빼고 있는 내 반대편에서 태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투슉 하는 소리가 났지만 뒤에 있는 좀비들 중에 쓰러진 놈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있는데 태완이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빗나갔어!"


"말 안 해도 돼! 그냥 쏴갈겨!"


태완이가 행동을 개시했는데 나라고 가만있을 순 없지. 나는 한쪽 눈을 감고 혀를 빼물고 칼을 세 번 까딱거린 뒤 팍 소리가 나게 팔을 털었다.


투팍


뭉쳐서 달려오고 있는 놈들의 특성상 한 놈이 자빠지면 뒤엣놈도 넘어진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칼은 선두에 있는 좀비의 어깨에 박혔고, 그놈의 어깨가 팍 제껴지며 놈의 몸이 붕 뜨는 사이 뒤에 달려오고 있던 좀비 둘이 차례대로 놈을 포옹하며 셋은 사이좋게 아스팔트에 누웠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낄낄거리며 외쳤다.


"잭팟!"


"꿰에엑!"


내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태완이의 못총에 맞은 좀비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자 남은 건 넷. 어떻게 처리할까? 내가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칼을 꺼내려는데 태완이가 외쳤다.


"진환아! 저놈들은 나로도 충분하니까 칼 아껴!"


"진짜?"


"괜찮아!"


태완이가 나에게 대답함과 동시에 다시 투슉 소리가 나며 좀비 한 놈이 굴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칼을 다시 품에 집어넣은 후 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칼던지기를 성공시키다니, 나 서커스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뭐 잘됐네, 어차피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게 태산같으니까."


나는 창문을 닫으며 옷매무새를 다가듬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은 어떻게 된 거예요? 화염병은 도대체.."


"아하하, 화염병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배운거야. 학생때 데모를 자주 하셨던 분인데, 재미로 배운 게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혼자서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을 때 만들어놨던 거야. 너네 집에 처음 들어갈 때도 몇 개 들고 있었는데 못 봤나 봐?"


"그랬어요?"


그러고보니 수정형이 옆에 걸치는 가방을 하나 메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땐 나오는게 우선이라서 충분히 살피지를 못했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수정형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네가 가고 나서, 나는 완전히 지친데다 너한테 찐빠먹고 난 뒤라 앉아서 멍때리고 있었어. 그러다가 태완이가 남기고 간 노트가 발에 걸려서 그걸 살펴보았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이 번쩍 뜨이더라구. 내가 직접대학로의 지옥이 기억나면서 너희들이 지금 어떤 상황을 겪고 있을지 상상이 가더라. 그래서 당장 밖으로 뛰쳐나와 너네 앞집에 있던 봉고차를 몰고 나온거야. 나 점화플러그 선 쇼트시켜서 차 시동걸 줄 알거든."


"희한한 걸 알고 있네요 형은.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요. 그리고 그, 협박했던 건 미안했어요. 그땐 내가 정신이 없어서."


"뭘.. 내가 잘못한거지. 그나저나 정말 너희들 아무도 죽.. 그 뭐냐, 실패하지 않고 정말 친구를 구해냈구나. 진짜 대단해 너희들은. 북한이랑 전쟁나도 살아남을 것 같아."


"그냥 운이 좋았죠 뭘."


윤호가 옆에서 거들었다. 때마침 태완이가 정리를 끝냈는지 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면서 숨을 돌렸다.


"다 없앴어?"


내가 묻자 태완이는 못 탄창을 빼내 탄창수를 점검하면서 말했다.


"두 마리 남았는데 우리가 방금 골목 돌면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어. 아마 더는 못 따라올거야."


태완이는 남은 탄창을 빼버리고 새로운 탄창으로 갈아낀 다음 수정형에게 물었다.


"형, 남은 여자분 셋은 어떻게 됐어요? 설마 진환이네 집이 위험해진건.."


"아냐. 내가 막 열내는 거 보고 그 사람들도 정신차려서, 지금 너희들이 늘어놓은 짐 정리하고 식사 준비해놓는다고 했어."


"식사를 준비한다라.."


나는 피식 웃으면서 몸을 의자에 쭉 펴 기대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풍나온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다고 핀잔을 줄 수 있는 행동도 아니고. 나 참. 그러고보니 그 사람들 이야기는 하나도 못 들어봤는데 집에 가서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사실 망원역에서 우리집까지 차를 타고 곧장 달리면 5분이 채 걸릴까 말까다. 하지만 달리는 좀비를 뒤에 달고 집까지 갈 수는 없었기에 꽤 구비구비 돌아온 우리는 10분정도 걸린 난리법석 끝에 가까스로 집 가까이에 올 수 있었다. 집 바로 근처 길목을 빠져나오는데, 찻길 저편에 내가 오늘 아침인가 망원경으로 살폈던 빌딩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의 라이트에 비춰졌다. 순간 뭔가 나쁜 느낌이 들어 빌딩의 입구쪽을 보는 순간 아니나다를까, 유리로 된 빌딩의 입구쪽엔 좀비들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수정형 어깨를 확 잡아챘다.


"형, 라이트랑 시동 꺼요!"


"엥? 왜, 왜?"


"아 제발 빨리! 죽고싶어요?"


내가 형을 마구 재촉하는데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졌다. 푸드득 하면서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들린 뒤 잠시간의 정적.


"뭐.. 뭐예요? 형이 껐어요?"


"아니. 이건 차키로 시동건 차가 아닌 거 알잖아. 내 맘대로 껏다켯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이건 그냥 꺼져버린거야. 이 차는 이제 죽었어."


이제 이 차는 못 쓴다는 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무엇보다 지금은 타이밍 좋게 시동이 꺼진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군.


나 말고는 아무도 사정을 몰랐기에 내 호들갑에 잠깐 침묵을 고수하던 녀석들이 조바심을 내며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왜 그래? 왜 차 시동을 끄라고 했어?"


"저쪽 빌딩 보이냐?"


내가 빌딩 입구 쪽을 가리키자 차 안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달빛과 가로등 빛을 받고 울렁울렁 움직이고 있는 좀비들의 무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재복이의 여친이 히익 하는 소리를 내려는데 재복이가 가까스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는 친구들과 일일히 눈맞춤을 하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저 빌딩 안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걸 내 두 눈으로 봤지. 지금 보지 못했다면 아마 큰일이 일어났을 거야. 만약 저 놈들이 단체로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챈다면 그야말로.."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빌딩을 쳐다보았다. 빌딩 입구에서 우리집까지는 차도를 하나 사이에 두고있지만 성인의 걸음으로 십 분도 채 안 걸린다. 더군다가 녀석들이 우리들을 발견했건 말건 이제부터 저 안에서 좀비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나는 가슴 한켠이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동시에 엄청난 불안함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에 이 동네는 이제 좀비천지가 되겠지.


"그.. 그럼 어떻게 해야돼? 저놈들이 퍼져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지트를 옮길 때가 된 것 같네. 그것도 오늘 밤 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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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남아있던 세 명의 여자 생존자들. 그녀들은 우리가 챙겨왔던 무기들을 정리하고 내가 당장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던 음식들을 찾았는지 그것들을 뎁혀놓은 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이야기를 지긋이 듣고 있던 세 여자들 중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학생복을 입고 있던 애가 말했다.


"그.. 그럼, 지금 모두 가야 해요?"


"그렇지 뭐. 안 그러면 늘어지게 자고 내일 아침 우리집 앞에서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몰려있을 좀비들과 아침체조를 해야 할 텐데. 좋아?"


"조.. 좋다니, 그런.."


나와 그 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복이와 함께 저편에 앉아있던 재복이의 여친 서영이가(우리랑 동갑이다)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디로 갈 건데? 다음번 아지트."


"끄응.. 그게 문제란 말이지."


나는 미간을 지푸리고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낑낑거리다가 태완이를 보며 물었다.


"난 우리 전교1등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뭐야 그게. 나도 몰라."


태완이는 김치를 한입 뜯어먹은 뒤(이 녀석은 작은 김치조각이라도 꼭 뜯어먹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일단 놈들의 특성을 살펴서 우리가 있을 곳을 골라야겠지. 일반 좀비들뿐이라면 거의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그 뛰는 좀비들의 기동성도 고려해봐야 하고, 또 다른 변종이 혹시 있을까 생각해봐야 해."


"나는 돌벽이 있는 곳에 일단 한표."


윤호가 말했다.


"돌벽이 둘러싸고 있고, 출입구가 한 곳에만 나 있는 곳. 그리고 정찰스팟이 있고 식량조달과 무기조달이 가능한한 쉽게 되는 곳. 되도록이면 넓은 곳."


"무슨 맵 에디트 하냐?"


윤호가 주절주절 조건을 늘어놓자 내가 핀잔을 주었다. 내가 명확한 답이 나오질 않아 불안해서 오만상을 찌푸린 채 물을 마시는데 재복이가 저쪽에서 기어오며 말했다.


"아예, 우리도 어디 사람들이 많이 살아있는 곳을 찾아보는게 어때? 예를들어 육삼빌딩 같은 곳이나, 고위급 인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생존자들이랑 군 병력이 있을지도.."


"너무 멀어. 연료만빵에 변수 생각없이 달릴 수 있을 장갑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만.."


내가 수정형을 바라보자 수정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우리의 이동수단이었던 봉고차는 이제 죽은 상태. 또 다른 차를 찾아 이동하면야 좋겠지만 말이야 쉽지.


"제길, 우리집이 국회의사당 옆에 붙어있었으면 좋았겠구만."


"썩은냄새 나는 집이겠군, 그럼."


나랑 윤호가 영양가 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수정형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밥을 쩝쩝 씹고 있다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있을지도 몰라. 윤호가 말했던 이상적인 대피소."


"에?"


"진짜요?"


우리들이 깜짝 놀라 형을 쳐다보자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거기까지 갈 수 있을 확률이 너무 적어서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희들과 함께라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어.. 어딘데요, 거기가."


수정형은 모두를 쳐다보며서 말했다.


"여기서 걸어서 30분, 내가 다니던 패밀리마트의 지점이 하나 있어. 그 곳은 윤호가 말했던대로 돌벽으로 둘러쌓여있고, 출입구도 하나야.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단점은 출입구가 유리라는 거야. 어때, 괜찮겠어?"


"거기 식량은요?"


태완이가 물었다. 그러자 수정형은 어깨를 으쓱 하더니 말했다.


"거기까진 모르겠어. 하지만 편의점이니까 괜찮을 거야. 게다가 그 근처엔 유난히 편의점이 많아. 다 그 근방이니까 괜찮을 거야."


이 곳에서 십년을 넘게 구른 몸이다. 나는 형의 묘사를 머리에 그리면서 눈을 굴리다 보니 대충 그 곳이 어디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손바닥을 탁 치면서 말했다.


"나 거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저기 서쪽에 큰 은행앞에 주유소 돌아서?"


"어, 거기야. 문제는 거기까지 갈 방법이 도보밖에 없다는 거야."


"상관없어요. 이래도 저래도 죽을거, 당장 가자구요."


"어?"


"당장?"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내게 되묻는 반면, 태완이와 윤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동시에 일어났다. 좀비사태가 일어나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빠른 행동엔 이골이 난 우리다. 나는 멍하게 날 쳐다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우리가 챙길 짐이 있어요. 모두들 짐 챙기시고, 언니들도 짐 챙기고. 너도. 아 이재복, 너 그 서점에서 니 가방 내가 가져왔다."


"아 고마워."


내가 현관문 쪽에 놓아둔 가방을 가리키자 재복이가 가방을 가지러 걸어갔다. 갑자기 집안이 분주해졌는데 예의 그 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김진환이다. 이름으로 불러."


"아, 진환오빠. 저기, 피곤하지 않으세요? 다른분들도 조금 쉬었다가 가시는게.."


"피곤하니까 지금 가는거야."


"네?"


나는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 두시 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윤호도 나도 태완이도, 오늘아침 일어난 이후로 계속 사건이 터져서 녹초가 된 상태야. 사실 난 당장이라도 뻗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내일 죽겠지. 지금은 빨리 움직여서 안전을 확보해야 돼."


"나는 너네 사정도 궁금하다 야."


윤호가 옆에서 끼어들자 그 애가 살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수정형과 같이 온 저 세 사람들은 아직 이름도 모르고 사정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이름을 모른다는 건 꽤 크다. 만약 어떤 사람의 뒤에서 좀비가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그걸 발견하고도 '저.. 저기! 아 누구더라? 뒤에 좀비가..' 하다보면 그 사람은 1초 뒤 좀비와 같이 뒹굴것이다. 당장 출발하면서 이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졸린데 잘 됐다.


"너는 이름이 뭐냐?"


"네? 아름이예요. 김아름."


"다 김씨네."


윤호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태완이도 윤호도 김씨. 거기다 얘도 김씨다. 다른 두 누님은 성씨가 어떠려나?


슬슬 짐을 다 싸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나는 박수를 치면서 윤호와 태완이 곁에 서서 말했다.


"자 그럼 잠깐만 모두 들어요. 지금부터 밖에 나가면 나랑 수정형이 앞장서서 그 편의점까지 갈 겁니다. 모두들 무기를 하나씩 들고 가도록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난리치면서 비명지르지 말 것! 그럼 좀비를 더 불러모을 뿐이예요! 그리고 길을 가다가 뭔가가 어둠속에 보이면 혼자 눈쌀 찌푸리고 살피지 말고, 당장 누군가에게 말할 것. 알았죠?"


"무슨 소풍가냐 시꺄?"


"니는 닥치세요 좀. 김윤호 너는 태완이랑 같이 뒤를 맡아. 그리고 이재복이랑 수정형. 형들도 남자니까 각자 우리 일행의 옆구리를 맡아요. 그리고 여자분들은 가급적 긴 무기를 쓰세요. 꼭 칼 같은게 안 달려있어도 돼요. 빗자루같은 걸 사용해서 밀어내기만.."


쿠과과과과광


퍼어엉


"꺄아아아악!!"


"우와악! 뭐야!"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집의 전등이 번쩍거리면서 집 전체가 흔들렸다.


꽈아아아앙


"우와아악! 귀아파!"


또 한 번의 굉음. 이번엔 정말 근거리에서 울린 소리인지 한순간에 귀가 터져버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지며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번쩍거리는데 갑자기 내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챘다. 태완이었다. 태완이도 얼굴을 찡그리고 귀를 막고 있었는데, 손을 흔드는 걸 보니 밖으로 나가자는 소리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등을 밀면서 외쳤다.


"모두! 밖으로 나가요 밖으로!"


꽈아아아앙


쿠과과광


"꺄아악!"


"밖으로! 빨리!"


사람들이 각자 들고 있던 짐을 챙겨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간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건 어디선가 피어올라오는 거대한 구름기둥이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비추는 땅에서부터의 붉은 빛! 이것은 언젠가 스크린 속에서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우리의 위로 무언가 큰 물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리고 또 굉음.


꽈과광 퍼엉


"우와아아악!!"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폭발이 일어난 건 바로 우리가 우려하고 있었던 빌딩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온 땅이 뒤흔들리는 걸 느끼면서 내가 소리쳤다.


"폭격이다! 비행기로 폭탄을 떨구기 시작한거야 이 미친놈들이!"


"야 이 강아지들아! 아직 생존자들이 있다고!!"


쿠구구궁


어디선가 또 폭격이 시작되었는지 멀리서 붉은 빛이 나며 무거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지트를 옮기려고 하는 순간 시작된 폭격.


좀비에게서 살아남으려던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떨어뜨리는 폭탄에게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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