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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12) The Sniffer

Ruka |2009.08.07 13:26
조회 1,450 |추천 0

 

 

 

 

 

"괜찮아?"


"네.. 충격이긴 했지만.. 요전에 안 사이고..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예요."


지혜 누나의 죽음을 확인한 우리는 아름이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녀석은 얼굴이 새햐얘지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 처럼 울고불고 난리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수정형이 아름이를 설득할때 말했던 '계기' 가 없어졌으므로 너는 우리와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말했지만 녀석은 괜찮다고 말했다.


니가 괜찮은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란 말이다. 의욕없는 녀석을 구하려다 다시 동료를 잃는다면, 설사 녀석을 구한다 해도 그건 적자다. 이 게임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들어가라고 한 건데..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름이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도 글쎄.. 막상 놈들을 앞에 두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행동력을 보여줄런지. 그래도 자기 입으로 나서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믿어보자.


폭격의 효과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큰길로만 나가면 좀비들로 들끓었는데 지금은 동네가 상당히 한산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골목골목마다 돌아다니는 놈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우리들은 꼭 필요할 때만 녀석들을 처리하고 불가피할 때에도 어지간하면 밀어내면서 길을 만들어 나아갔다. 도중에 녀석들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아름이에게서 식칼창을 빼앗아 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좀비사태가 일어난지 딱 사흘째다. 그런데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새 차를 타고 빠져나간건지, 다 죽어버린 건지, 숨어있는 건지 알아 낼 도리가 없었다. 무턱대고 아무 집이나 찾아들어갔다가 좀비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부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눈에 밟히는 건 폭격의 흔적. 큰길가에 나 있는 큰 건물이다 싶으면 예외없이 구멍투성이었다. 길 자체는 말 할 것도 없다. 가만히 걷고 있다가 얼굴에 뭐가 찰싹 붙어서 떼어내보니 무슨 재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공기에 잿가루들이 가득했다. 대학가라 붐비는 교통량으로 인해 항상 탁한 공기를 지닌 동네였지만 이렇게 폭격이 지나간 뒤니 더 심해진 건 당연하다.


수정형이 말했던 편의점은 이제 5분거리.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그 편의점이 있는 골목에 들어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갈림길에 봉착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유일하게 그 곳을 알고있는 수정형과 내가 동시에 말했다. 우리 뒤를 따르고 있던 태완이와 아름이가 그런 우리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건물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담이 둘러진 한 가정집의 창문을 보니 누군가가 뒤로 빠지며 커튼을 치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내가 소리를 치면서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잡았다.


"왜 그래? 사람이 있다구!"


"냅둬. 지금은 우리만으로도 바쁘다구. 다른 생존자를 본 순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저 인간.. 혹은 인간들은 우리와 협력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소리야."


"태완이 말이 맞아. 무시하자."


인간의 마음이 저렇게 황량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 집의 창문을 원망섞인 눈으로 노려본 뒤에 이를 꽉 물고 고개를 돌렸다. 잘먹고 잘살다가 뒤져라 개꼬추같은 새끼야. 나는 근처에 좀비들만 보이지 않았어도 돌을 던저 유리창을 깨뜨려버렸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흩어질까요? 어차피 이 근방일텐데."


"그러자."


"그럼 5분있다 일로 다시 오기로."


"근데 누구랑 누구랑 가?"


태완이가 말하자 나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뚝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그렇군. 누구랑 누구랑 가지? 살아남기 위해선 태완이를 내 옆에 두고 싶지만 아름이랑 수정형은 혼자 두기엔 영..


고민하고 있는 내 눈에 아름이가 쥐고 있는 식칼창이 들어왔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랑 아름이랑 가지 뭐."


"네?"


아름이가 깜짝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반응에 놀라 말했다.


"뭐, 싫어? 싫으면 태완이랑 가. 대신 식칼창은 나 주고 이 쇠파이프로.."


"아, 아니, 아니예요. 그냥 놀라서요."


아름이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자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제발 뭐 결정할 때 마다 네? 예? 하는 버릇좀 고쳐라. 우린 지금 1분 1초가 아깝다구."


"네.."


내가 아름이에게 핀잔을 주자 옆에서 태완이랑 수정형이 웃었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자 그럼 조금있다 보자구요. 그 편의점이 멀쩡하길 바래야죠."


"아 진환아. 이거 하나 가져가."


수정형이 막 떠나려는 나를 붙들고 화염병을 내밀었다. 나는 거절하려다가 장거리 무기를 든 사람이 내 쪽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해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화염병은 꽤 조잡했다. 크기가 클 수록 안에 든 연료가 많을테니 강력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휴대성을 최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이 화염병의 크기는 꽤 작았다. 색을 보니 소주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거기 심지에 불을 붙이고 던지면 돼. 단 멀리 던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고. 화염병은 던져서 병이 깨지는 순간, 던져진 관성과 병이 깨진 충격에 의해 퍼지는 석유가 공기중의 산소에 노출되고 심짓불이 옮겨붙으면서 확 터지는 거야. 만약 불씨가 옮겨붙은 석유가 한 방울이라도 네 몸에 닿으면 대단히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해."


"크게 다치다뇨? 구체적으로 어떤.."


"피부에 닿으면 그 근처는 다 타들어갈 정도. 거기다 옷까지 입고 있으니까 말 다 했지 뭐. 소이수류탄만큼은 아니지만 연료에 의해 붙은 불은 대단히 잠식성이 강하거든."


볼 살에 불똥이 튀어 온몸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어젯밤 상대한 달리는 좀비들 꼴이 될 나를 생각하니 오싹하며 소름이 돋았다. 나는 등에 지고 있는 등산용 배낭의 물병을 넣는 망 부분에 화염병을 곧게 밀어넣으며 아름이에게 뒤에서 잘 보라고 말했다. 형은 덤으로 라이터도 하나 건네주며 태완이와 저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자 우리도 가자구."


"네."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자리를 뜨면서 아까 우리를 보고 커튼을 닫은 집의 창문을 다시 한번 째려보았다. 아예 지금 저기다 화염병을 던져버려 그냥?


다행히도 골목은 꽤 넓었다. 벽쪽에 붙어있는 좀비들은 무시하고, 이동로에 있는 녀석들은 밀어내거나 하면서 이동하고 있자니 꽤나 지루했다. 나는 아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났어?"


"네?"


"어떻게 살아났냐구. 이 난리통에서."


아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괜히 물어봤나 하며 저편에 서 있는 좀비를 주시하는데 아름이가 입을 열었다.


"미술학원에 있었어요. 저녁스케쥴에 따라서 그림그리고 있는데 재료를 사러 나가셨던 원장선생님께서 팔을 물어뜯기신 채 학원으로 돌아오셨어요. 아이들이 모두 난리가 나서 부 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조퇴처리 시키려 하시는데 원장선생님께서 부 원장선생님 뒤에 나타나 모.. 목.. 목을.."


아름이가 말을 하다 말고 그 때의 상황이 생각나는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녀석이 양 손으로 쥐고 있는 식칼창이 내 얼굴 근처에서 흔들리자 나는 고개를 튼 뒤 녀석의 뒤로 돌아가서 어깨를 잡으며 급히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물어서 미안하다."


"흐흑.. 흑.."


"자연스러운 현상을 참으라 해서 미안하다만 울지 않아줬으면 한다.. 니가 울으면 좀비들이 몰려올테니까."


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말하자 아름이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 생각이 나서 그만.. 흑.."


친구들이라.. 그러고보니 아직 연락할 놈들이 많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미국에 금방 갈 예정이라 핸드폰 서비스를 중지시킨 상태다. 이번 일이 진정되고 아지트가 안정되고 나면 다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봐야겠다.


이제 골목을 거의 빠져나왔다. 한 칸만 돌면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순간 좀비 한 놈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놈은 멀쩡한 상태였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벽 쪽에 처박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그냥 지나갔겠지만 이 골목 출구는 전봇대 때문에 상당히 좁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멀쩡한 놈 뒤를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의 모험을 할 배짱은 내게 없다. 나는 아름이에게 말했다.


"어때, 니가 해치워 볼래?"


"네, 네? 무, 무리예요! 무리! 무서워요."


아름이가 고개를 마구 흔들자 나는 한숨을 길게 뽑았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하기사 세상 어느 여고생이 '식인괴물 머리 뽀개볼래?' 라고 물었을 때 '응!' 이라고 대답할까? 하하. 이거 웃을 수도 안 웃을 수도 없구만.


나는 조용히 손도끼를 꺼내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좀비로 변하기 전 큰 충격을 먹은건지 어쨌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벽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사정거리에 놈의 뒤통수가 들어오자 나는 이를 까득 물면서 어깨 저편부터 손도끼를 풀스윙으로 올려쳐 놈의 뒤통수와 목 사이에 손도끼를 꽂아넣었다.


뻐걱


굉장히 기분나쁜 소리가 나면서 놈의 뒤통수가 빠개지고 놈은 5센치정도 공중에 떳다가 빠르게 땅으로 무너져내렸다. 나는 깨어진 놈의 골을 보지 않기 위해 빨리 고개를 돌린 후 팔에 튄 피를 닦아내었다. 아름이를 바라보니 녀석은 눈을 꼭 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 이끌었다.


"빨리 나가자. 여기 그 편의점이 없으면 되돌아가야 하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아까 골목에서 마주쳤던 놈들이 얼마나 되나 기억해 둬."


"으으.."


여기까지 와서 싫다고 해봤자 뺄 수도 없다. 아름이는 정말 싫다는 식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내 뒤를 쫓아왔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내 눈에 폭탄을 크게 맞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집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와를 얹은 현대식 집이었는데, 분명 폭탄을 맞은 흔적이 보이는데도 기적적으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걸 잠깐 본 뒤 나는 옮겨온 길을 확인했다. 좀비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지만 불행히도 그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아 신발."


아무리 나라고 해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일반인이다. 안전하게 지나온 길이라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다시 기다리고 있을 좀비들의 얼굴을 생각하지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돌아가야지. 아름이가 불안한 말투로 말했다.


"어.. 없는거예요?"


"그래. 미안하다. 삽질하는 길에 널 끌어들어서. 미안하지만 다시 되돌아가야겠어."


"히잉.."


아름이가 울상을 지으며 울먹거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는 수 밖에. 다행히 저쪽엔 태완이도 있고 편의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수정형이 있으니 우리가 올 것에 대비해 더욱 확실한 대처를 해 놓고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니 불안이 조금 가셨다.





"음?"


몇 걸음을 더 옮겨 폭격맞고 폐허가 다 된 집의 돌담 옆에 서 있는데 순간 뭔가가 내 볼을 탁 때렸다. 나는 인상을 씨푸리며 그 물체를 보았다. 조그마한 돌조각이었다. 녀석이 날아왔을 곳을 쳐다보니 그 집의 담이 금방 무너지려는지 빠직 빠직 소리를 내면서 금이 가고 있었다!


"꺄악!"


나는 아름이에게 달려들어 녀석을 밀쳐내면서 나도 역시 저편으로 다이빙해 한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 집은 바로 무너졌다.


쿠르르릉


꽤 크고 무거운 소리가 나면서 엄청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나는 쿨럭거림면서 아름이를 일으켰다.


"고마워요 오빠. 콜록! 콜록!"


"쿨럭.. 너 나한테 빚 많이 졌다? 쿨럭.. 언제 나 한번 구해줘야 돼 진짜로."


"헤헤.. 콜록! 어? 오빠 저기 사람이 있어요!"


"뭐?"


아름이가 기침을 하다 말고 먼지구름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덩달아 그쪽을 바라보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쳐다보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시오.. 누구.."


"젠장!"


진짜로 사람이 있었다. 목소리로 보니 할아버지 같았다. 나는 먼지구름 안으로 들어가 발로 돌조각들을 밀치면서 말했다.


"어디예요! 구하러 왔어요!"


"여.. 여기.."


내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팔을 마구 휘저어 먼지를 떨쳐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 집을 둘러싸고 있던 돌담의 안쪽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었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하반신이 무너진 집의 파편에 파묻힌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다리쪽에 쌓인 돌조각들을 치워내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꺼내드릴게요!"


"쿨럭.. 고맙네 학생.."


"오빠 누구 있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 도와줘!"


아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외쳤다. 곧 아름이도 안쪽으로 들어와 나를 돕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집은 이 할아버지 근처로만 무너졌지 바로 덮치지는 않았어서 이 분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얇게 쌓인 먼지, 모래와 돌조각들을 치우고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무너진 집의 파편 속에서 그 분을 꺼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노란색 재킷과 헐렁한 바지, 운동화를 신고 계셨고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을 메고 계셨다. 나는 쿨럭거리면서 말했다.


"왜 우리가 이 앞에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미안하네..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늙은 몸이라 귀가 어두워서."


"오빠! 저놈들이!"


아름이가 다급히 말하자 나는 아까 우리가 온 골목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저 쪽에서 밀치고 지나온 좀비 몇 놈이 집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욕을 씹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달릴, 아니,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못 걷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다시 욕을 한번 내뱉은 후 아름이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너를 써먹게 된 것 같네, 아름아. 내 뒤를 봐 줘. 이제부터 골목을 돌아서 아까의 합류지점으로 갈 거야. 꽤 돌아가야 할 것 같으니까 니가 잘 해줘야 해."


"네.. 네!"


아름이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녀석도 자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름이에게 배낭을 맡긴 뒤, 할아버지를 아예 업어버리고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업고 있자니 아까 이 분을 구출해 내면서 보았던 옆으로 메고 있었던 작은 가방이 손에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뭘까 이건.



골목을 돌아나오자 큰길이 보였다. 여기 역시 폭격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다행히도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힘이 별로 센 편이 아니라 꽤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좀비들이 없어서 안심하고 발을 옮기고 있는데 저편에 뭐가 보였다.


"학생, 내가 줄 게 있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할아버지. 조용히! 앞에 좀비 한 마리가 보여요."


"좀.. 뭐라구?"


"그냥 조용히 좀 계셔주세요 제발!"


나는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말한 뒤 녀석을 주시했다. 희한하게도 놈은 땅에 엎드린 채 네 발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딱히 빨라보이지는 않았다. 기어다니는 변종인가? 그렇다면 환영이지.. 아예 다 저렇게 변해버려라 망할.


"아름아. 저 놈은 기어다니는 것 같으니까 니가 창으로 밀어낼 수 있을거야. 할수 있지? 난 할아버지를 업은 채로 전력으로 옆으로 빠질게."


"네. 해볼게요."


대답은 잘 한다.. 그래도 이런 상황일수록 동료를 믿어야 한다. 나는 아름이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뛰기 시작했다. 세 걸음인가 갔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쿨럭!"


내 얼굴 옆으로 뭔가가 튀어나왔다. 피였다. 각혈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기침에 피가 섞여나오다니..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이미 늦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버리고 갈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앞을 보았다.


"어?"


뭔가 이상했다. 저편에 있던 좀비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순간 방향을 잘못 잡았나 하며 뒤로 도는데 아름이가 외쳤다.


"오빠! 조심해요!"


"어? 우와앗!"


갑자기 내 시야 앞으로 뭔가가 위에서부터 덮쳐내려왔다! 나는 할아버지를 떨어뜨리면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뭐가 뭔지 몰라서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고 있는데 나와 아름이 사이로 아까 그 기어다니는 좀비놈이 좌악 미끄러지면서 착지를 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럼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점프해서 왔다는 소리야?


내가 정신없이 머리를 돌리고 있는데 놈이 다시 펄쩍 뛰어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우아악 신발!"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러 엎어졌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놈이 이상한 방향에 착지를 해 땅에다 입을 대며 마구 손으로 그곳을 후벼파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잠시 녀석이 하는 양을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피하고 보자!


"아름아 빨리 와! 할아버지 죄송해요! 좀 끌고갈게요!"


나는 아름이에게 외친 뒤 할아버지를 질질 끌고 폭격에 맞아 박살이 난 어떤 건물의 벽 뒤로 숨어들어갔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힘들어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안쪽에 기대놓고 벽에 등을 대는 순간 아름이가 뛰어들어와 내 옆에 붙었다. 나는 벽 너머로 놈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놈은 아까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었던 곳 근처의 땅에 코를 대고 마구 이빨을 들이대는가 하면 손톱으로 마구 그곳을 긁거나 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곳을 보고 있자니 빨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피였다.


"아아, 아까 할아버지가.."


놈은 땅에 떨어진 피에 대고 마구 냄새를 맡고 손으로 그곳을 후벼파더니 잠시 뒤 동작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놈이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정말로 괴상했다.


피.. 피라. 우리가 근처에서 막 소란을 피우며 지나가도 몰랐는데 피에만 집착을 하다니..


"내.. 냄새를 맡는 게 아닐까요?"


아름이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깊은 건 놈의 도약력. 저런 놈이 불시에 나를 덮쳤다면 그건 그야말로..


"쿨럭!"


다시 할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아니 지금 소리가 문제가 아니지.. 냄새가..


콰앙


"으악!"


"꺄악!"


벽에 몸을 대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며 그 벽이 울리자 나와 아름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벽에서 떨어졌다. 빠르게 벽 너머에 고개를 내밀고 확인해보니 그 놈이 보였다. 그새 피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뛰어왔다가 벽에 부딫힌 것이다. 이 벽이 없었으면 지금쯤 저 할아버지는 놈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놈은 킁킁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아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놈 냄새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뒤로 돌아가서 죽일게. 혹시라도 할아버지 근처로 놈이 가면 니가 막아야 해. 알았지?"


"네."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벽을 등에 댄 채 게걸음을 해 벽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놈을 보니 놈은 아직도 저편에서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저기까지 걸어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뭔가 미끼가 있으면..


순간 내 머릿속에 화염병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름이에게 다가가 화염병이라고 입모양으로만 말한 뒤 뒤로 돌라고 시켰다. 아름이가 뒤로 돌자 나는 화염병을 배낭 옆에서 꺼낸 뒤 아까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니 놈은 아까 피가 있던 자리로 기어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화염병의 심지를 뽑은 뒤 벽 너머 내 앞쪽에 석유를 뿌렸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맡을 정도로 석유의 냄새가 확 퍼지자 놈이 그새 방향을 틀어 이 쪽으로 뛰어들었다. 놈은 석유 위로 착지해 손을 마구 휘둘렀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화염병의 심지를 다시 꽂고 땅에 내려놓은 뒤 손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놈은 지근거리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


"후우우.."


나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한숨을 뽑았다. 그 순간 놈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우와악!"


나는 가까스로 몸을 틀어 벽 안쪽에 넘어졌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당황해버린 내 입에서 마구 뿜어져나오는 입김이 놈을 불러들인 것 같았다. 나는 욕 한번 외칠 새도 없이 엎어진 채 손도끼를 고쳐잡으려 했다. 하지만 놈이 너무 빨랐다. 나는 손도끼를 손에서 놓고 몸을 틀어 놈을 피하려 했다.





"끄아악! 귀가!"


놈이 어떤 식으로 몸을 확 틀며 내 근처로 지나가는 순간 픽 소리가 귀에서 울려퍼졌다. 다음 순간 내 오른쪽 귀 쪽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오른쪽 귀로 모으자 피가 후두둑 쏟아지는게 느껴졌다. 윗쪽 귓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미친 강아지! 죽여버릴.."


고통과 분노가 반쯤 섞여서 눈이 돌아버린 내가 손도끼를 집어드는데 내 눈에 다시 들어온 건 달려들기 직전의 그 변종 좀비였다.


탕탕 탕


탕-


갑자기 큰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눈을 꽉 감고 있던 나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심스레 눈을 떴다. 눈을 뜬 나는 뒤통수와 등에서 김을 피우며 앞으로는 피를 쏟고 있는 채 땅에 엎어진 그 변종 좀비를 볼 수 있었다.


"하.. 하하.. 뒤지는 줄 알았다.. 신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른 채 허탈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자리에 무너졌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 할아버지! 그거.. 총이예요?"


총?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몸을 반만 일으킨 채 힘겹게 양 손으로 권총을 쥐고 계셨다. 방금 불을 뿜은 권총의 총구에선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놈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걸 확인한 할아버지는 신음을 뱉으시며 손을 늘어뜨리고 다시 몸을 기대며 쓰러지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얼른 다가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쿨럭.. 난 괜찮네 학생.."


별로 안 괜찮아보입니다만은.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고개를 흔들며 내 손을 거부하고는 말했다.


"나는 됐네. 방금도 나 때문에 당한 일이잖나.. 나는 이제 머지않아 죽을 몸이야. 나 때문에 밖으로 나간 순경 아들놈도 돌아오지 못했고.. 그러니까 두고 가게."


"그럴 수는 없어요!"


내가 외쳤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않고 고개를 흔든 뒤 기침을 한 번 하면서 내게 작은 가방을 건넸다. 옆으로 메는 카메라 가방 크기의 검은색 백이었다. 아까 보았던 그거였다. 열린 상태의 그 가방 안엔 아까의 권총과 몇 개의 탄창이 들어있었다. 탄약도 보였다.


"아들 순경놈이 나한테 맡기고 간 걸세. 이걸 가지고 가.. 너희들을 보고 있으니 내 손자녀석이 생각나는구나."


"할아버지!"


"빨리 가!"


내가 외치자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소리를 치셨다. 내가 깜짝 놀라서 움찔하자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따라가서 너희들을 또 위험하게 하느니 여기에 남겠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내 아들놈을 찾아봐 주겠나? 이름은 신 성환이라고 하네."


나는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름이가 나를 잡은 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술을 꽉 물었다. 물고있는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잠시 생각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전 절대 할아버질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 계세요. 동료들을 데려올게요."


"그럴 필요 없어."


"필요 있어요! 더 이상 내 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두고볼 수는 없다구요!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나는 아름이에게 손짓을 한 뒤 그 총가방을 챙기고 빠르게 자리를 떳다. 벽을 등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층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빨리.. 빨리!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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