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연이라도 해보고자 올렸던 글이 톡이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어제 아는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더 알게 될까봐
지우려고 톡에 와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길래
자동 삭제 된 줄 알았더니 .....
설마 설마 했는데 톡커님들의 댓글 한 줄에
정말 많은 희망을 얻었습니다.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도 사는데...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글을 쓸 땐 부정적인 생각만 많이 한 거 같아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요 몇일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음을 톡에서 치유 받고 나니
지금 당장 과외하러 가는 길이
너무도 유쾌할 것만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 주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 도움을 받을만큼 힘든 사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래도 전 아직 몸도 성하고
가능성도 많으니까 당장 검사 받을 돈이 없다고 해도
곧 좋은 일이 있을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아요.
너무 감사한 마음만 모아도 전 벌써
강남에 고층 빌딩을 지은 느낌입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
다음 학기엔 어쩔 수 없이 휴학해야 되서
과외도 더 많이 할 예정이구요.
지금은 방학이라 수요가 적어요... ㅠ
톡에서 위로 받고
앞으로도 가끔씩 힘든 일 있으면 위로 받으러 오고
다른 분들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예쁜 마음으로
더욱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대 중반의 여자 입니다.
얘기가 길어질 수도 있어요.
간략하게 말하면 가정사, 죽음, 남자 친구, 그리고 불치병입니다.
답답한 일이 생겨서 조언과 위로를 얻고자 판에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이 순탄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 가기도 전에 부모님 이혼하고 재혼하고 돌아가시고
지금은 외가집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사는데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에도 살아 봤고
할머니가 억척스럽게 살아 보겠다고 벌인
일수 사업 때문에 빚에 빚을 지다가
집에 조폭 아저씨들이 찾아 와서 협박하고 부수고 하는 통에
집 계단에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 치고 불안 증세가 나타나곤 했어요.
고등학교 가서는 나약한 얘기지만 주변 친구들과의 격차에
저만 자꾸 소외 되는 느낌이 들고 미래를 찾아 볼 수 없어서
자퇴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내 인생 이렇게 지속 되다가 끝나겠구나
하고 정신 차리고선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입학했고
이제 졸업반 입니다.
저도 취업 준비만 하고 싶고 취업이 제 최대 고민이 될 줄 알았는데
평생 주어진 상황에만 맞추어 살고 확실한 꿈이 없었던 제가
불과 이주일 전에 제가 꿈에 그릴 수 있는 간절히 소망하는
"장래희망"도 생겼는데 말이죠.......
이혼한 이후로 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몇일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사실 몇번 본 적이 있어요.
집에도 몇번 오셨었고 제대로 본 마지막 기억은
몸이 마비되어 가고 있어서 틱장애처럼 같은 동작을
무의식 중에 반복하고 얼굴이 마르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런 상태에서 뵙고 저희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마지막으로 본 건....
사람 많은 길가에서 마주쳤었는데
제가 먼저 인사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모른척 지나가야만 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도 절 보셨는데 아마 뇌손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저를 못 알아보신 모양이에요...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몸 한 쪽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면도할 시간도 힘도 없었는지 도인마냥 수염을 길게 기르시고는
지팡이도 없이 힘들게 힘들게 혼자 걸어 가시는 모습이에요.
지금도 이때 그냥 지나친 생각만 하면
제가 미친년이 아닐까, 사람일까 하고 죄책감이 심하게 밀려와요.
그래도 저를 낳아 주신 아버진데 어쩜 그렇게 모른 척 지나갈 수가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지금도 이 부분을 쓰는데 숨도 못 쉴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와서 참 힘들어요...
그 이후 아버지는 소식에 의하면 무수히 많은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셨어요. 다행이도 저와는 호적 관계가 없는 상태로
기초생활 대상자로 선정 되어 병원비는 걱정 없었구요..
가끔씩 병원 번호를 알면 일년에 한번쯤 전화를 하고 말았어요.
병원에서 잘 지내신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끊고...
찾아가 봐야지 찾아가 봐야지 했는데 제 생활에 치이다 보니까
그게 마음처럼 안 되더라구요... 사실 이런거 다 변병이겠죠.
보기 싫었어요. 제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외할아버지...
집에 환자용 침대 들여 놓고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누워 계시고 제가 할아버지 목욕에 관리에 다하고 있는 상태에요.
다행인지 할아버지는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시고는
서서히 좋아지셔서 몸 왼쪽이 완전 마비 되었지만
한 발을 끌고서 화장실도 다니시고 한 손으로 식사도 하세요.
몇번 화장실에서 크게 다치셔서 수술도 받으시고 살이 찢어지도 터지고..
사실 매시간 할아버지께서 화장실 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집에 못 있었던 적도 많고 몇분에 한 번씩이든 제가 꼭 부축해 드리고
같이 화장실 가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행이도 안 넘어지신지 4개월은
되신 거 같아요. 안심이지만 또 언제 다칠지 몰라 걱정입니다.
음식을 삼키기만 하면 폐로 흘러 들어가서가래에 기침에 사래에 ....
저도 구역질을 같이 하면서 옆에서 식사 도와 드렸던 때가 2년 전이네요 벌써..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학자금 대출 이자에 허덕이고
아르바이트라도 없는 시기가 오면 다음 달 이자 낼 걱정에,
제 생활비에 걱정에 걱정을 또하고 아무리 계산해봐도
돈 나올 구멍도 없고 만들 곳도 없고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자주 처하면서 아버지 보러갈 돈이 사실 부담이 많이 되었고
평생 술 먹고 생긴 뇌졸중 같은 병에 제가 동정심을 주고 싶지도 않았어요.
아버지 혼자 사시는 집에 고1때 갔었는데 벽 한면에 있는 책장 가득한 소주병
더러운 침구, 가득찬 푸세식 화장실, 전화도 가스도 다 끊긴 거지 소굴 같은 곳에서
계셨어요. 일을 안 해서 돈도 없었을텐데 소주를 저렇게 사다 먹는 돈은
어디서 나올까 하고 비판적인 생각만 들었었어요...
다 아버지가 자초해서 생긴 일이라고...
그렇게 편하게만 생각하고 살았었죠.
저 4살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기 전에도 별거 하셨었는데
저희 엄마가 일하면서 저를 돌보기가 너무 힘들어
아버지 집에 데려다 놨는데 몇일 후에 가보니까
저만 덩그러니 대청마루에 놓여져 있고 옆에는
뜯지도 않은 우유팩과 함께 제가 너무 울어서 울 힘도 없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길래 가슴을 치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 일기장에서 보고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어요.
제가 크면서 계속 불안 증세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가
아버지 때문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태어나서 기억나는 한 처음으로
친척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4남매이신데
작은 고모 한 분만 오셨더라구요.... 다 돌아가시고 큰 아버지와
자기만 남았는데 큰아버지도 지금 아프시다고...
그런데 제가 본 고모의 모습은 병색이 너무 완연했어요.
아버지를 마지막에 본 느낌이랄까... 저는 원래 그런줄 알고
그냥 넘어 갔어요. 처음 뵈었으니까요.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해서 아버지는 신고만 하고
장례식 없이 화장만 했어요. 지금 고모님이 유골함을 가지고 계신데
몇일 후에 제가 전달 받아서 저희 동네에 뿌려 드리려구요..
고모님과 식사하는 도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모도 말하시기 불편하고 어려운 말 잘 못 알아 들으시고
밥 먹기 불편하고 틱증세가 계속 되길래 사실 예상은 했었습니다.
아버지랑 고모랑 같은 병일 거라고...
그런데 사실 아버지는 뇌졸중이 아니라 유전병에 의한 사망이라고..
가족 구성원 6명 중에 3명이 그 병으로 죽었고 고모마저 걸린 상태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저에게 전이 될 수 있는 병에 대해
생각하느냐 머리가 정말 터져 버릴 뻔 했습니다.
이런 저런 검색을 해보니 유전자 변형에 의한 병으로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면 발병 확률은 100%이며
적절한 치료법도 없고 병명 마저도 발견된지 오래 되지 않은
그런 병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4~8가구가 걸리는 희귀병이에요.
심지어 제가 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면
제 자식한테도 전이가 될 수 있다고 해요..
게다가 발병 후 앓는 기간만 10년이 넘는 주변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병이라구요...
사실 유전자 검사만 하면 제가 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쉽게 판별이 가능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검사하는게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제가 그 유전인자를 안 가졌다면 다행이고 계속 살 수 있겠지만
만약 제가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요?
그럼 전 그 병이 발병 될 때까지 그냥 넋놓고 있어야 하나요?
그럼 전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못 가지겠죠...
발병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공포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거에요..
한 번도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한 적 없고
사람일 모르는 거라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던 제가
막상 공포가 닥치니 두려워요..
사실 아직도 죽음보다는 제가 10년 이상을 흉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결혼도 못하고 지금 있는 가족도 모르는 일이죠..)
에게 고통과 피해 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어요..
어쩌면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기엔 제 미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못할 짓이구요..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어요. 제가 병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지금 돈 들여서 대학 다니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꿈을 이루면 뭐할까.. 어차피 곧 죽을텐데...
이렇게 말이죠.
사실... 검사할 돈도 없네요..........
제 벌이가 한 달에 과외비 50만원이 전부고 이거 마저
언제 그만 두게 될 지 모르는 과외일이라서
아껴두고 만약을 대비해야하고 당장 이번 달에 나올
학자금 대출 상환비만 40만원 돈인데 ......
첫 학기에 대한 대출금의 마지막 원금 상환인데...
이 40만원만 갚으면 학자금 대출 계좌가 하나가 줄어든다고
좋아했었는데....
어쩌면 이 대출금 낼 돈과 다른 불량 대출금으로 검사 받고
저는 대출금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지난 달에도 과외가 끊겨서 1달 연체 했는데....
이런 상황에 검사 비용은 아무래도 사치만 같습니다...
꼭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자 제가 사랑할 마지막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친구는 지금 군대에 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면 결혼하자 하고 얘기했지만
아직 훈련병이라서 연락도 안 되고 답답한 마음만 들어요...
(남자친구 군인이니 너 일 모르는거다...라고 생각 하시면 할 말이 없어요...)
남자친구가 위로 해주면 저 혼자여도 어떻게 해서든 검사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돈도 마련해보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하긴 검사 결과가 잘 못 되면 전 남자친구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헤어져야겠죠? 어차피 결혼하면 서로 힘들어 질텐데요...
아이도 가질 수 없을테고.. 제 먼 꿈은 자식들 정말 잘 키워서
저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도록 식당에서 뛰어 다니지 않는
개념있고 도덕적인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요...)
주변 친구들에게 터 놓고 말하기도 힘들고 아버지 돌아 가셨는데
위로의 연락도 못 받고 ... 지금까지 같이 놀고 얘기하던 제 주변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싶은 심정입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용기의 말 한 마디라도 들으면 힘들겠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데
완벽하게 홀로 되고 나니 혼자 지은 성 속에서 혼자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할머니 고혈압이신데 쓰러질까봐 외가집에는 말도 못하겠고......
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 정말로 누군가 있다면
이렇게 하지는 못할 거 같아요...
제 인생으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막장 드라마 찍자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짐 캐리의 트루먼 쇼처럼 모든게 다 거짓이었으면
드라마나 영화마냥 다 허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정말 있다면 찾아 가서 따지고 싶은 심정입니다...
친구들은 지금도 취업 준비하면서 어느 직장에 가게 될지
남자 친구랑 싸워서, 살이 쪄서 걱정할 때
저는 불치병에 대한 두려움과 제 미래가 송두리채 뿌리 뽑히는
걱정을 하려니 죽겠어요..,.
혼자 너무 답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