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평소처럼 톡을 읽고 있었는데 익숙한사진의 메인.....! 톡이다 +ㅁ+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정말 남의 이야기라고 넘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 리플도 달아주시고. 축하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밤늦게 눈물을 글썽거리고있어요(내일은너구리....)
저희 가게 궁금해하시는 분들 계셔서 살짝 홍보할게요!
저희 가게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수곡초등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어요 :)
지금 가게 홈페이지 같은거 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제가 컴맹이라서 아직 구상만..
가게가 아파트 단지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오실 때는
수곡초 앞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찾아오시는게 더 빠를거에요 '-'*
전화번호 같은건 저에게 쪽지 남겨주시면, 답장 드리겠습니다 :D
저의 감정만 앞세운 글. 찬찬히 읽어봐주시고, 같은 마음으로 축복해주신 여러분.
여러분도 저도,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도록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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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10만명이 넘게 읽어주시다니;
리플....모두 감사답변 달아드리고 싶은데.....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의 기쁜 마음과 달리, 오늘 대한민국은 슬픈 하루네요.
저에게 응원 메세지 남겨주시는 마음 따뜻한 톡커님들,
오늘은 큰 어른이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깊은 조의를 표하는
경건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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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소 톡을 끼고사는 스물하나 대학생입니다.
톡을 통해서 늘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보기만 하다가 오늘은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볼까해서 이렇게 키보드를 톡톡 두드리고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국경일인 광복절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에게 경사스러운 날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부모님께서 작은 떡집을 오픈하셨습니다.
요즘은 비일비재하게 가게를 오픈하고 또 금방 닫아버리기도 하는 세태라
그리 흥미있지 않은 일이겠지만, 저에게는 오늘이 열 번이고 눈물이 터져버릴 정도로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대한민국의 중산층 가족입니다.
(중산층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못마땅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
그럼 제가 이 글 속에서 쓴 중산층은 사회가 정해놓은 어떤 규격이 아닌,
저보다 어려운 사람도, 그리고 부유한 사람도 많아서 저희는 그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고 쓴 단어라고 해석해주세요 '-'* & 제가 잘못된 어휘 사용을 한 것에 대해서
저의 학교까지 운운하고 뭐라고 하신 분은 조금 속상하네요. 주의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등학생 남동생 그리고 사범대학에 다니고 있는 저 . 10년동안 동고동락한 애완견 예삐 이렇게 다섯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는 평범한 가족입니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는 식당일에서부터 잡화용품 판매까지 안해본 일이 없으시고, 그래서 저희 남매는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물품은 살 수 있을 정도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문제는 제가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족 중 한분이 아버지에게 동업을 해보자고 권유하셨고, 결국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하시고 친척 분과 함께 제조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회사, 허울은 그 뿐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서는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고, 친척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께 찾아와 삿대질을 하면서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동업이라는 미명아래 저희집은 전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동생은 집안에 큰 소리가 난다 싶으면 불을 끄고 잠이 든척 누워버렸고, 저는 사춘기 시절을 거실에 나가는 것 조차 두려워한 채 살았습니다.
빚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자, 가압류에 대한 압박이 들어왔고 웃기게도 저는 교과서와 참고서에도 딱지가 붙으면 어떻게 학교를 다녀야 할까 하는 걱정으로 며칠 밤을 뒤척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부모님이 결혼이후 10년만에 단칸방에서 벗어나서 마련한 저희의 보금자리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늘 어머니의 손길로 찾아오는 사람마다 새집같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 곳을 뒤로 하면서 핏줄이라는 게 뭐길래 그렇게 쉽게 믿어버리고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화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술과 싸움과 냉랭한 분위기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다른 지역에 있는 떡집을 운영하시는 친척 분께 떡 기술을 배우기 위해 2년 동안 저희와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명절마다 일년에 두 번 남짓 얼굴을 보게 되었고, 그동안 초등학생 동생은 고등학생이, 중학생인 저는 교사를 꿈꾸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모두 부러워하는 손을 가지셨던 저희 어머니는 지난 날 외할머니의 손과 똑같아 지셨습니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다시 시작하게되었습니다.
오늘 개업식에 오셨던 분들 모두 저희 어머니 아버지께 잘 될거라고 덕담을 건내셨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정말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요행도 바라지 않고, 오직 두 분께서 열심히 하고 묵묵히 그리고 성실히 일한다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저희 남매를 위해 초새벽에 나가셔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두 분, 정말 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거라고 늘 다짐합니다.
이렇게 고되고 힘드신 이유가 모두 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는 것, 정말 잊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모든 일에 임할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집안이 시끄러운 순간에도 두 남매가 삐뚤어지지 않게 정도의 중요성을 알려주셨고, 집안 경제가 어려울 때에도 미안하다고 우리 조금씩 이해하면서 참아보자고 말씀해주셨던 부모님.
다른 친구들이 등록금에 용돈받으면서 돈 걱정하지 않고 쓰는 것이나, 방학 때마다 명품가방에 해외여행 타령 하는 것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들의 여유로움과 풍족함보다 조금 힘들어도 이겨내는 방법과,
풍족하지 않아서 아껴쓰면서 얻는 보람을 가르쳐주신 부모님께 더 감사합니다.
한 번 넘어져서도 우는 것보다 자꾸 넘어졌을 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저희 남매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해서 보답할게요. 꼭 효도할게요.
그리고 아부지, 선생님되면 딸내미가 꼭 비행기 태워서 여행시켜드릴게요. 꼭!
위에사진은 저희 떡집 사진이에요!
전화번호같은건 홍보성 글이라고 생각하실까봐 가렸습니다
^^
저희 가족의 작은 새출발- 꼭 응원해주세요 :)
지금까지 긴 제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여러분도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