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그 말을 순수하게 믿고 지금까지 수 백그릇을 먹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새 내 머리 속에는 '바다는 못 가더라도 냉면만큼은 꼭 먹자' 라는 인식으로 살고 있다.
내가 처음 냉면과 만났을 때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연일 계속되는 제육덮밥, 육개장,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감자탕 등 매운음식과 무더운 여름날씨에 지쳐가고 있는 한국왕초보인 나를 구해준 냉면님!!! 냉사마ㅋ
한국음식=매운맛 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매우 쇼킹한 일이었다.
'아니~ 한국사람도 안 매운거 먹고 있네??의외다~'
그리고 처음으로 냉면집에 들어갔는데 메뉴판을 보고 깨달은 것도 있다.
냉면에는 물냉면과 비빔냉면 두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미처 몰랐으니까 한국친구가 '사야까~ 물냉? 비냉?' 라는 말에 계속 '냉면!냉면!냉면을 달라고~ 냉면 주세요~' 이라고만 답해서 친구를 답답하게 만든 적도 있다ㅋ
그냥 냉면이면 냉면이지.....물냉, 비냉은 뭐고ㅋㅋ
그렇게 나의 냉면생활은 매년 여름마다 계속되었다.
수많은 냉면집을 돌아 본 결과 이제는 냉면맛에 있어서는 아주 까칠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냉면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공부했는데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했다.
우선 냉면은 여름음식이 아니고 겨울음식이라는거.. 헐~ 추운겨울에 추운냉면을....
근데 생각해보니까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으니까...^^
또 냉면은 북한음식이라는거.. 헐~ 그럼 김정일장군도 먹는거야?ㅎㄷㄷ
또 한국사람은 국물을 마실 때는 숟가락으로 먹는데, 냉면국물을 마실 때는 그릇을 들고 꿀걱꿀걱 먹어도 괜찮는 것 같다. 한국사람만의 암묵의 양해인지...?
자... 이제 나의 냉면스토리는 이쯤하고 보통 일본인인 나의 혀로 냉면을 평가해보자.
먼저 함흥냉면 시리즈.
한국에서 보통 냉면하면 함흥식 냉면이다.
<함흥식 비냉>
양념을 붙인 회와 고구마전분으로 만든 쫄깃쫄깃한 면. 그리고 매콤한 양념이 기본.
게다가 45년의 전통있는 집이다.
양념은 일반냉면집 음.. 예를 들어 김밥헤븐이나 고깃집에서 나오는 그런 양념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맛이 아주 미묘한데 그냥 매콤하지도 않고 그냥 달콤하지도 않다.
글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맛을 가지고 있는 함흥식 비빔냉면.
<함흥식 물냉>
나는 기본적으로 물냉을 좋아해서 이제까지 많이 먹어왔다.
근데 이 물냉을 먹고 이제까지 내가 가짜육수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함과 깊은 맛이 상상을 넘어선다.
면은 역시 쫄깃쫄깃한 고구마전분이고 고기는 양지머리.
어떤 냉면집을 보면 몸에 좋은 여러가지를 넣는다고 한약냄새가 많이 나서 냉면육수의 진정한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느낌^^
<함흥냉면 결론>
이제까지 맛 본 적이 없는 비냉의 양념과 물냉의 육수.
7000원이라는 냉면으로서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둘 중에 어떤 것을 맛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정말 어려울 정도..
근데 함흥냉면의 맛을 잘 표현하는 것은 물냉매니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왠지 '비빔냉면'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냉승!!
비빔냉면 맛을 알게 되서 왠지 한국 사람이랑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자! 다음 선수는 평양냉면 시리즈.
냉면의 원조답지 않게 함흥냉면에 밀려 한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 보이는 평양냉면.
<평양식 물냉>
첫 느낌은 닭육수 맛이 난다.
상냥한 맛? 밋밋한 맛? 이 육수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나ㅠㅠ
확실히 어정쩡한 맛이었다.
평양냉면의 면은 메밀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함흥냉면보다 쫄깃쫄깃한 맛은 떨어지지만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오는 게 매력이다.
함흥냉면에 익숙해져버린 내 입맛에 평양물냉은 좀 어정쩡한 맛이라고 할 수 밖에....
<평양식 비냉>
함흥식과 다른 점은 면이 메밀로 되어 있다는 것밖에 없어보인다.
잘 비비고 고기를 면에 말고 먹어봤는데.....
양념이 잘 못 된건지... 내 입이 잘 못 된건지...
메밀의 비린내? 고소한 것 같으면서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메밀의 특산지인 나가노에서 자란 나는 메밀을 엄청 좋아하지만 이 양념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평양냉면 결론>
내가 평양냉면이 이상하다고 하면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평양냉면은 한 번 먹어봐서는 절대 그 참맛을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말에 100%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ㅋ
몇 번 더 먹어보고 빨리 평양냉면의 진정한 맛을 찾아보고 싶다^^
그리고
둘 중에 더 맛있는 것을 뽑으면 음.... 평양은 물냉이다^^ 물냉승!!
평양냉면, 그리고 함흥냉면.
확실하게 평양보다는 함흥냉면 쪽이 일본사람에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소문난 맛집을 몇 달간 어렵게 찾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냉면은 절대 간단한 음식이 아니다' 이다.
그리고 이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한가지 소원이 생겼다.
북한의 유명한 원조 냉면 맛집을 탐방하고 싶다는 소원^^
음식으로 북한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다니..냉면은 대단한 음식이다ㅋ
근데 과연 언제쯤 내 소원은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