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thout your love, it's a honky-tonk parade.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는 어떤 면에서 오만하다.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거라 거의 확신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다시 돌아오는데 성공하지만, 매일 누군가 조금씩은 돌아오는데 실패한다. 99%이상이 돌아오고, 1%미만이 돌아오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유사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인류의 1%미만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00%가 귀환에 성공하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적어도 한 명 이상이 귀환에 실패할 확률은 매일매일 100%이다. 나는 내일도 여전히 귀환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에 실패할 거라는 사실에 대해 120% 정도쯤 확신한다. 누군가는 실패하겠지만, 나는 성공한다. 그것이 확률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니까 다녀, 오겠다고? 천만의 말씀. 퍽이나 오만한 인사다. 인사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다녀오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단, 나가보겠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역시 당신과 함께했던 지난 날들은 저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보름 전 나는, <다녀오겠습니다>도 아니고, <다녀올게요>도 아닌, <갔다올게>라는 인사를 하면서 집 밖을 나선 적이 있다. 도무지 지금까지 한번도 그 규모에 대한 짐작에 성공한 적이 없는, '우주' 어느 지점의 행성 '지구' 동경 126도 북위 34도쯤 되는 어느 서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1Q84는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 앞에 바로 친절히 진열되어 있었다. 1초에 7권씩은 아니었지만, 아닌게 아니라 그 책은 정말 아르바이트라도 동원된 것처럼 벌써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어느 신문기자의 표현은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었다. 전혀 살 마음이 없는 심리학서적이나 신간소설따위를 뒤적이는 척하다가 쎄시 9월호를 구매하는 어떤 여자들처럼 나는 1Q84 1,2권을 들고나왔다. 이제 집에 가서 읽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귀가에 성공했고, 모친께는 <갔다올게>가 오만이 아니었음을 <갔다왔어>를 통해 입증해보였다.
지금 내 옆에 놓인 1Q84 1,2권은 나에게 다 읽혀진 채로 평화롭게 잠들어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두툼한 두 권의 하드커버는 실로 영화 <쥬만지>의 게임판 만큼이나 위험해보인다. 장난이라도 다시 열고 싶지가 않다. 실수로 한번 열었다가는, 또 한바탕 '공기번데기'니, '리틀피플'이니 하는 것들이 마구마구 기어나와 나를 어디론가 현실 저 멀리 위험한 세계로 보내버릴 것만 같다.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는 세계.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세계. 어느 누구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오만한 인사를 입에 올릴 수 없는 세계. 지난 15일 간, 나는 그 세계에 있었다. 48장, 12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멀고도 머나 먼 그 아득한 세계에서 나는 정말 안전하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 맞을까. 후카에리가 말했다. "그건 아무도 알지 못해요."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도 육십줄에 접어들었다. 제 아무리 조깅을 열심히 한다 해도, 매일 체력은 조금씩 줄어들기 마련이고, 상상력은 조금씩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것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물론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이치를 거스르는 경우도 있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체력과 상상력은 과연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들처럼 다이내믹하다. 하루키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의 필력과 상상력은 여전히 단단히 발기해 있다. 그의 부엌은 여전히 백색아스파라거스나 샐러리나 미역된장국 등으로 분주하고, 냉장고에는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화이트와인과 셰리주와 하이네켄이 진열되어 있다. 그 어떤 담론이라도 그것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루키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테이블을 세팅한다. 그리고 어디로 외출을 하든간에, 준코 시마다의 정장을 입었다거나, 찰스 주르당 하이힐을 신었다거나 하는 것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독자에게 성실히 보고한다.
그는 언제라도 독자들을 <다녀올 수 없는 세계>로 보내줄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 금세기 소설가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능을 하루키는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스토리가 병렬로 진행되는 하루키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플롯 구성과 세카이계의 교범으로 삼아야 할 것 같은 판타지적 요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면 이뤄낼 수 없는 매우 특수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다. '하루키 디테일'로 대변되는 유니크한 문체 그것이 곧 매너리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매번 새로운 담론을 문체에 실어나름으로써 그러한 지적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입증해 보인다.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이야깃거리의 배경은 1984년이다. 조지오웰이 일찍이 '디스토피아 원년'으로 설정했던 바로 그 시기임과 동시에, 일본에서는 옴진리교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 그리고 '신흥종교'라는 키워드가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세계에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잘 녹아들면서, 읽는 이는 그저 하염없이 이상한 나라로 추락해 들어가는 앨리스가 되고 만다. 어림짐작도 할 수 없게 커져버린 스케일과 다시 봉합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것 같은 서사는 '일시정시'된 상태로, 가까스로 2권을 힘겹게 빠져나온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그대로, 하루키는 내년 여름을 기해 제3권을 발표하겠다고 이례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나도 내년 가을을 기해 <1Q84>에 관한 방대한 리뷰를 써보이고 말겠다고 이례적인 다짐을 해본다. 1Q84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 감상은 여기서 이대로 세이브된 채로 일시정지 돼있다. 그리고 책은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