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공의 불륜 그 실질 >>
너희가 과연 영혼을 모른다고 치고서.
마음과 몸은 알 테니 그 간을 말해보고자 한다.
몸 속엔, 물리적으론 몸의 부속이 있고
형이상적으론 마음이 있다.
대개가 외향적인 인식의 소유자들인 너흰
언제나 먼저 타인의 몸을 인지하고서
차츰 타인의 맘을 알아가고는 한다.
경험상 너희 순서가 그렇다고는 하나, 엄연히
결국 그 누구라도 마음이 최종적인 중심이 된다.
즉, 누굴 안다는 것은 그 맘을 안다는 것으로서 통한다.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생각하면 비유하건대
몸이라는 두께의 껍질 안에서 맘의 빛깔이 새나온다.
너희 대개는 소위 말하여 투시력이 없으니
맘을 알아보기를 못하고서 타인을 잘못 대우하고는 한다.
여기 어떠한 사람들이 있다고 보자.
그들은 모두 이중의 세계에서 존재를 산다.
두 겹의 세계란, 외적으로 규정된 세계
그리고 내적으로 규정된 세계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경계는 저마다의 몸이다.
두께가 있는 껍질인 몸을 경계로, 우리 세계는
외세로써 규정되거나 내적으로 인식된다.
그러한 현실 가운데 일례로서 양성의 관계들을 고찰해 본다.
< 현실의 정석 >
이분법적인 성의 세계는 결정적으로는 부모로서 부부인 관계로서 수렴된다.
배우자들은 결국 그 자녀에게, 이중의 세계 속 역할 배분을 시현한다.
자녀에 대한 두 인격체의 역할은 외적 세계의 기능만이 아니라
내적 세계의 의미 및 가치까지 전달해 주는 통로가 됨을 말한다.
그러하다면 자녀에게 임하기 전에, 부부인 사람들은
상호간 역할들의 배분에 대해 조정이 되어있을 것이며 또한
스스로 역할 이내에 이중적인 세계를 조율하여 구성하기가 우선이다.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줄 부모들은 이렇게 우선 자신들로서
서로 역할조정을, 또한 스스로 각자 세계조율을 선취한다.
상호간의 역할조정은 사회적인 관계의 결실이며, 즉
그들 이질적 성의 관계가 정돈되었음을 뜻한다.
각자 스스로 이중적인 세계를 조율하는 방식은 각자에게 고유한 자질이며
각자의 존재 자체를 통해 이중적 세계들은 새롭게 유지된다.
즉, 개별적인 각각의 존재들을 통해서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가 연결된다.
세계의 모든 일반적 또는 다반사적인 측면들은 분명히 외적 세계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반적 또는 다반사적인 생각들과 사고법들이 포함된다.
그러한 생각들과 사고법들은 인간 감정과 태도 및 사리판단들을 총괄해 낸다.
거기에 비해 내적인 세계들은 상호간 표준화가 어렵고, 각기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해간다.
다만, 외적세계의 화석화된 이정표 같은 대표적 사례들이
내적인 세계여정들의 향방을 앎에 참조되고는 한다.
결국에 내적 세계도 우리 현실에 그림자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세계여정을 그것 자체로 목도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외적 세계가 상호간의 효과적 역할조정과
지배적 의미규제들에 의해서 수립되고 장려되기에 그러하다.
내적인 세계 여정은 수월하게 정의되기가 어려우며 따라서
관계상에 지진(느릿한 진전)을 초래하고, 사실상
어떤 지배적 규제에도 속하지 않는 의미방식을 밟고있다.
이분법적인 성의 세계는 모든 인격을 지배하진 못하며
오직, 내적세계여정이 외적 현실과 일치하는 경우들만을 대표한다.
즉, 종종 개별인격이 이중적인 세계구조를 예외적인 방식으로써 조율하는 현실이 있다.
가령, 신체의 성과 불일치하는 심리적인 성별을 지닌 개별인격체들 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적 현실들이 일어날 수 있다.
< 예외의 해석 >
최근 태자는 자기 남편인 몸을 데리고 여행갔다.
태자는 항상 거울을 보면 생각을 한다
' 우리 남편은 정말 잘생기고 멋있어.
비록 난 귀신이나, 이 남잔 내꺼가 틀림없어. '
그런데 '나'는 거울을 보며 생각하고는 했다
" 이 여자 언제까지 데리고 살아야 하나?
허구헌날 날 제쳐놓고 관심을 몽땅 모으는
이 잘난 년 땜에, 남자인 나는 기를 펼 때가 없어.
내 아무리 귀신이라 해도, 껍데기인 년이 엄청
설쳐대는군, 이거 언제 빨리 갈아치워야 하는데.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태자에게 구애를 했고 그러나 태자는
자기 몸 바로 자기남편의 위신에 연연하며 내숭을 떨다가
다시 어느날 태자는 '나'에게 말했다
" 애기 낳아줘야 해. "
이에, 태자가 여자임을 아는 '나'는 의아해하며 태자에게 물었다
" 여자인 너가 아기를 바람을 나는 이해하지만
왜 내게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가? 지금 태자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귀신이니까
무시해도 된다는 건가? "
그러자 태자는 '나'에게 말했다
" 당신의 몸이 아기를 낳을 수 있잖아. "
나는 그래서 태자에게 물었다
" 당신에게 남편이 따로 있으며, 바로 그 자가
자기승계를 위해 내 것인 몸을 이용하겠단 게지?
태자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는 않고
당신 남편인 당신 몸을 더 사랑하고
내 몸을 대리모 삼으면서, 남자인 나를
함부로 대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러면
이미 있는 당신 남편과 결투를 해야 하는가?
사회적 위신 그것은 당신의 남편이자 껍질,
감히 남편이 이미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밟아대며 그 몸을 이용하겠다? 태자 당신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귀신이기에?
비록 내 몸이, 내 사회적인 위신인 나의 껍질이
다소 연약한 여성이긴 하지만 엄연하게
남자인 나는 귀신이기는 하나 그 껍질 안에
강건히 임재하여 있으니, 결코 당신의
남편에게 이 몸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오. "
이 사례에선, 외적인 몸의 세계와 심리적인 내적세계를
보통 경우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조율시키고서 살아가는
한 쌍의 이성간이 사실상 서로 역할조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역할조정에 서로 쉽사리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인격체들
각자가 스스로에 대해서 이미 양성을 확보하는 까닭에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간단하게 당연한 상호질서를 쉽게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자는 스스로의 심리가 심히 여성적이고
몸은 남성으로서 준수하며, 자연히 여성적인 마음은
강한 남성의 몸에 의지하면서 몸을 사랑하면서
정작 실제의 이성이자 타인인 여성들에 대해서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심리적인 수준에서는 동성이기 때문에
그들과는 우애를 느끼면서 친밀한 이해까지 지닌다.
'나'는 스스로의 심리가 심히 남성적이고
몸은 여성으로서 준수하며, 자연히 남성적인 마음은
약한 여성의 몸을 한심해하며 몸을 희롱하면서
정작 실제의 이성이자 타인인 남성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심리적인 수준에서는 동성이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투어가며 원격적인 이해를 품고있다.
그러하므로 결국 태자는 자기의 몸을 남편삼아서
그 안에 안착해 살 수 있겠으나,
'나'는 자기의 몸을 아내삼는다 해도 그 안에
포섭될 수가 없기에 매우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인문의 현실에서 통용되기로, 아내는
남편 속에 안정될 수가 있으나 그와 다르게
남편이란 아내의 현실 이내에 용해되어
위탁돼 살아가지 않기에 그러하다. 즉
태자는 자기 몸 속에 안정할 수가 있지만
'나'는 자기의 몸에 결코 담겨질 수가 없다.
태자는 자기 남편을 통해 즉 자기 신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나, '나'는 자기의 몸을 통해서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자기 마누라가
밖에서 '설쳐대'면 남편의 위상이 절로
알려지겠나? 그렇지 않다. 남편의 위상은
여전하게 미궁에 놓여있다. 대체 어떠한 작자인가?
아무리 마누라가 세상에 유명해도 남편은 알려지지 않는다.
태자의 몸은 남성이기에 아주 흔해빠지게 사회적인
관계고리가 얽히고 섥혀 확실히 엮여 있으나,
'나'의 몸은 여성이기에 사회적인 관계고리가
매우 설겁다. 그러므로 결코 그 몸이 '나'의
위상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인
마누라는, 남편인 '나'를 세상에 인식시킬 수 없다.
당연히 항상 남편은 마누라를 불만스러워한다.
" 감히 네년이 나를 대신해? "
자기 몸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평가해 보면, 태자는 몸과 마음이 외강내유로
서로 안정된 이미 한 쌍을 이루고 있고 거기에 비해
'나'는 자기의 몸과 마음이 서로 뒤집혀있는 듯한
외유내강의 불안정한 중충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자고로 껍질은 단단해야 내실을 보호할 수가 있다.
내실은 항상 생기차 있으므로 유순할 밖엔 없는데,
껍데기가 속보다 부드럽다면 더더욱이 내실은
안착되지 못하고 외부충격까지 받는다. 남자가 여성 신체에
들어 있다면, 괘짝 바깥에 놓인 폭탄과 다를 바 없다.
비맞아 자기 기능을 잃게 되거나 자칫해서 조기에 터져버릴
수 있다. 즉, 일찌감치 비통에 빠지거나 자기파괴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나'의 현실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고 문제적인가?
그에 비해서 태자는 일찌감치 자기의 몸과 마음이 서로
결혼해 있는 셈이다. 남성 신체에 담긴
여성의 마음이란 곧 환상적인 반려가 된다.
때문에 '나'는 오늘 심각히 태자에게 묻는다.
< 문자 그대로 천연스런 진실들 >
" 내 사랑하는 당신 태자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고
난 다만 딴 세상 속 남자 귀신이며
당신과 당신 남편 즉 당신 마음과 몸은 짜고서
나의 신체인 나의 애물단지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오?
나의 애물단지를 당신 남편이 쓰겠다는 것이오?
당신 남편은 다만 몸이니 좀비이고, 당신은 과연
날 사랑하는 것이오 아님 내 몸을 이용하려는 게오?
여자인 태자 당신이 마땅히도 아기를 사랑하고 원하겠으나
말해보오, 당신은 당신의 몸을 더 사랑하는가 아님
나를 더 사랑하는가? 아님, 나보다 나의 애물단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사랑이란 나에게 대해서도 없는가?
내 어찌, 당신과 당신 몸 사이에서 존속할 수가 있겠소?
당신들이 심지어, 나 아닌 내 애물단지를 주로 삼아서
고려하고 있다면 나는 내 몸을 죽이고 또한 당신의 몸도
죽여서 당신 태자를 내게 사로잡아와야만 할 것이오.
그런다면 그것은 귀신들의 교제가 되며, 우리는
세상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오. 사랑하는
태자여, 두 남편을 두지 마시오. "
이러하여 우리는 여기에서, 고작해 두 개별인격체들
사이에 문제로서 대두할 가공스런 불륜을 우려하는 것이다.
외적 현실에서는 고작 두 개별인격체들이나, 내적 심리적
세계에선 한 쌍과 중층의 인격체가 삼사각의 관계를 형성하여
사회적 역할조정 문제에 봉착해 있다.
태자는 이미 스스로 한 쌍이며
'나'는 마음과 몸이 서로다른 세계를 살고있다.
" 애시당초 뚫기가 난해했던 심리의 당신 태자는
이미 유부녀였던 게오. 난 그저 위험에 빠지었소. "
태자를 대면하는 날이란? 사람들이 날 포기하는 그 날에. 그러면 그날까지 아마도
81평생을 부처처럼 도닦으면서 다녀야만 하겠지. 사실 태자가 없었으면 내 의식에서
세상이 이렇게나 심각한 수준으로 등극하지는 않았겠지. 태자의 순수함은 세상의 복잡함이
지원하므로, 세상이나 태자나 어느 하나만 나를 추격할 수는 없겠군. 나의 목표는
다만 내 것이어야 하므로 과연 81평생 자연을 내다님이 옳다고 보이는군.
아주 솔직한 심경에선 이렇게 생각되고 있구먼. 나는 한없이 비천하고 열등한 위인이라
그 어디에도 나서게 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노라고. 하물며, 매우 대단하다는 다른 사람을
독점하는 일이란 것도 상상치 못할 망상인 게고. 고작해 나와 대등할 위인이란 오로지
나와 대화를 진실하게 할 그런 사람일 뿐이면서. 동반할 사람들은 오로지
나와 똑같은 상황에서 인생을 사는 F2M들 뿐일 것이다.
그렇지, 태자에게 감사를 하지, 고맙소이다. 오고 갔구만? 오고감이 주제라 하나?
난 마냥 갔지만, 역시 대등한 협상이란 세상에 있기 어려운 것인 듯하군.
심지어는, 협상도 아닌 몰이가 아니던가? 아무튼 감사하네.
무엇을 제일 우선적으로 수행할까? 할 수가 있다면 물론, 옳바른 방법으로 할 수가 있다면 무엇이든
그것이 제일 우선이 된다. 인생의 매순간을 올바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면, 무엇이든
옳바로 하게되는 그 무언가를 하면서 매순간을 살아야 하지. 그것이 나의 꿈인지 너의 꿈인지
불특정다수의 오래된 방식인지 어떻게 아나? 그 무엇이든 옳바른 방법으로 할 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을 나는 하겠다. 태자에게는 공을 들여도 결국 양심은 이런 방침을 내리고야 만다네.
이러하지 않고서 어찌 인생을 마땅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나? 평생 광대여서는 아니되지 않겠나?
내게 증오가 만일 있다면 굳이 그것을 현재 세상에 대한 것이라고만 말할 순 없지.
그건 태자에 대한 증오이기도 하며, 원숭이에게 대한 것이며
굴종하는 인민에 대한 증오이면서, 모든 것들을 목격하는 나에게 대한 것이지.
누가 도대체 감히 말하나, 나는 태자를 증오하지 않는다라고?
만일 세상을 증오하고 있다면 그건, 그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태자를 증오함도 아니겠는가?
오직 사랑만 수여받을 권리가 어느 피조물에게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렇다, 간단하게 말해서 태자? 난 증오한다.
태자는 온데간데 없으며 그의 무리만 설쳐대는 세상에 살며
그 모든 이들을 내게 보내는 태자에게 대해서 배신감을 느낀다.
언제 내 이런저런 이들을 달라 했던가?
가장 처음에 내게 보내온 사람들은 네 적이었나 한 편이었나?
넌 나의 적인가 나의 편인가?
내 너를 만나면 싸우는가 사랑하는가?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