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레이싱카도 참 안전해졌다고 하죠. 어지간한 사고에서는 좀처럼 다치지도 않고 아일턴 세나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도 없습니다. 랄프 슈마허는 캐나다 GP 중 300km/h 이상의 속도에서 사고가 났어도 사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사고 장면은 저도 아프리카를 통해 직접 봤는데요, 전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부딪쳤고 속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정말로 위험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랄프 슈마허는 몇 주 간의 요양만 마친 후 다시 트랙으로 복귀했죠.
이렇게 모터스포츠의 안전은 레이싱카에 집중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레이싱카 자체의 안전이 중요합니다만, 드라이버의 안전을 지켜주는 첨병은 헬멧이라고 할 수 있죠. 신체의 대부분은 콕핏 안에서 보호받고 있지만 가장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 머리는 외부로 돌출됐기 때문이죠. 올해 들어서는 헬멧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습니다. 바로 2건의 사고 때문입니다.
지난 헝가리 GP에서 큰 사고 났었죠. 페라리 팀의 펠리페 마싸가 예선 도중 스프링 조각을 맞고 실신한 것이죠. 바로 전에 F2의 헨리 서티스가 비슷한 사고로 사망했었기에 모두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 2건의 사고의 공통점은 레이스 도중 헬멧에 물체가 부딪쳤고 이로 인해 드라이버가 조종 불능 상태가 됐다는 것입니다. 만약 마싸의 헬멧 강도가 약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그를 추모하고 있겠죠.
지난 헝가리 GP의 예선 Q3에서 마싸는 앞서 가던 머신의 서스펜션에 떨어져 나온 스프링 조각에 머리를 강타 당했습니다. 당시의 속도는 240km/h로 아주 작은 조각이었지만 그 충격은 말도 못하죠. 마싸는 바로 실신했고 타이어 배리어에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마싸는 두개골 골절이 됐고 한쪽 눈의 실명 위기에 몰렸으며 시즌 아웃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싸가 복귀해서 원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그럼 이렇게 튼튼한 F1 드라이버의 헬멧을 알아볼까여. F1 드라이버의 헬멧은 FIA가 정한 기준 하에 영국의 TRL(Transport Research Laboratory)에서 각종 테스트가 진행됩니다. 공식 공급사는 아라이와 벨, 슈베르트이며 현재의 헬멧 규정은 지난 2004년 도입됐습니다. 페라리에게 헬멧을 공급하는 독일 슈베르트는 자체적으로 윈드 터널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제조사입니다.
F1에 쓰이는 헬멧은 제조사들의 비밀이기 때문에 정확한 제원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FIA는 마싸의 사고를 계기로 기본적인 제원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우선 F1의 헬멧은 다중 처리된 고강성 카본-파이버가 외피를 형성하고 있으며 충격 흡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수지가 추가됩니다. 헬멧의 내부에도 여러 층의 아라미드와 두꺼운 폴리에틸렌, 그리고 충격 흡수 소재로 이뤄져 있다. 헬멧의 내부를 이루는 아라미드는 방탄 조끼에 쓰이는 것과 동일한 소재라고 하죠. 또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에폭시 수지 등도 소량 쓰입니다.
헬멧의 무게는 단 1.25kg! 이 무게에는 팀과의 교신을 위한 통신 장비 리시버와 음료수의 빨대 무게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엄청나게 가벼운 것이죠. 이정도로 가볍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겠죠. 80년대 중반, 헬멧의 무게가 2kg이었을 때는 높은 횡가속도에서의 부담이 더욱 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헬멧이 가벼우면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목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는 현상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F1에 공급되는 헬멧은 각 드라이버를 위한 맞춤형입니다. 각 드라이버의 머리를 정밀하게 스캔한 후 완벽한 맞춤형 헬멧을 제작한다고 하더군요. 이래야 안전도도 더 높아진다죠. 헬멧에 적용된 레이어는 1만 2천개의 카본-파이버 실로 이뤄져 있고 각 실의 두께는 사람의 머리카락 보다 15배나 얇아 제작 공정 자체도 무척 까다롭고 코스트도 높습니다. 하나의 헬멧에 적용된 모든 실의 길이는 도쿄에서 런던을 이을 정도인 1만 6천 km입니다. 각 레이어들은 카본-파이버 제작 공정 중 가장 비싼 오토클레이브에서 만들어집니다.
헬멧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시야와 호흡 확보입니다. 이를 위해 헬멧의 전면에는 작은 인테이크가 마련되고 여기에 주행 중 엔진 오일이나 브레이크의 분진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필터도 있습니다. F1 헬멧에는 1초당 10리터의 신선한 공기가 유입 돼야 합니다.
시야를 확보해주는 바이저는 3mm 두께의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됩니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뛰어난 시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염을 차단하는 효과도 탁월합니다. F1 드라이버의 헬멧은 800도의 화염에도 45초 동안 변형이 생기지 않고 이 상황에서 헬멧 내부 온도도 70도를 넘으면 안됩니다. 슈베르트의 T 1000은 특별한 코팅을 추가해 900도의 용접 불꽃에서도 45초 동안 버틴다고 하네요.
대부분의 F1 드라이버는 헬멧의 바이저에 옅은 색의 틴팅을 적용하고 있고 내부에는 김이 서리지 않게 특수 코팅 처리됩니다. 바이저는 500km/h 속도의 물체에 부딪쳐도 그 홈이 2.5mm 이상 파이지 않아야 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습니다. FIA의 8860 규정에 의하면 각 헬멧은 초속 9.5m(34.2km/h)의 속도에서도 충격을 견뎌야 합니다. 거기다 까다로운 윈드 터널 테스트까지 거쳐서 공기 저항도 최소화 한다는군요. F1의 세계는 정말 알면 알수록 심오하군요.
출처 http://autoc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