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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은 가까이에

May美 |2009.10.19 14:31
조회 111 |추천 0

 퇴근 길이면 항상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 앞으로 펼쳐진 조선소가 줄지어진 바닷가.

바다 건너 감만동의 조선소 공장에도 불빛이 반짝반짝.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구도가 어쩜 이리도 매일매일 다를까.

그렇게 매일 흘러가는 풍경들을 보며 난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나도 매일매일 이렇게 다른지, 매일매일 다른건 나쁜거 아닌가?,

아니지 변화하고 있다는 건 좋은거지..뭐 이런 생각들은 하곤 한다.

그 조그마한 액정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은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DSLR의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

하지만 장농에서 득템한 미놀타 X-300이 있으니

수리하고 나면 나도 멋진 포토그래퍼 해봐야지.

 

 최근 내가 좋아하는 문체와 분위기로 글을 쓰는 여성분을 발견했고

오늘 토요일 회사가 한가한 틈을 타 블로그에 들어가서 몇 편의 다이어리를 보았다.

책으로 펴내어도 될 만큼 흐름이 가지런하고 또박또박하고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고 재밌기도 하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느낌의 글들.

오늘 유독 내 눈에 띄어 내 마음을 살짝쿵 뒤흔든 문장이 있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눈 뜬 아침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졸린 목소리로 칭얼대고 싶다는 것이다.

뭔가 내 마음을 흔들고 그 흔들리는 느낌이 좋아서

 그 문장을 여러번 읽고 또 읽고 곱씹어 보았다.

그래 바로 이런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는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 아닌가.

내가 비음 가득 섞인 목소리로 칭얼대고 앙탈 부릴 수 있는 완벽한 조건.

내 방이 옆 집 때문에 햇살이 살짝 가려져 조금은 어둡지만

뭐 그것도 그 나름 괜찮은 배경인 것 같다.

 

 그렇게 비음 섞인 코맹맹이 소리로(상대방이 역겨워 하던가 말던가) 

칭얼대고 앙탈 부리고 투정 부린 후

전화를 끊고 나면 컴퓨터 본체 버튼을 엄지 발가락 끝으로 꾸욱 눌러 전원을 켜겠지.

나의 소중한 BGM앨범을 뒤적거려

그날의 기분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여 볼륨을 살짝 높이겠지.

그리고 선물 받은 핸드메이드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며 창문을 열테고

잠시 방에 누워 복근 단련을 위한 동작을 스무 번~서른 번 낑낑대며 하겠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방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가족들과 부대끼며 저런 소소하면서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소녀같은 감정은 접어 놓아야 하겠지. 새벽이 올 때까지.

 

 잠이 덜 깬 아침에 비음 가득한 목소리로 통화 한다는 것.

이런거면 충분한데. 어렵지 않은데.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연인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가까이.

감정이입이 넘치는 요즘의 내겐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나를 위한 시간이 있는 것이 행복하고, 배우는 시간들이 행복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 바람에 머리가 떡져도 행복하고, 음악을 듣는 순간 순간이 행복하고,

그냥 누워만 있어도 행복할 지경인데.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특히 집안의 장녀,언니,큰누나로서 느끼는

부족함에 대한 심각한 죄책감, 그 부족함을 만회하기엔 내가 너무 고집 세고 성격이 이상함,

고분고분 말 듣기엔 욕심이 너무 많음, 기타 등등 때문에 자꾸 겉돌고 있음- 생기는 현상이란걸 잘 알기에

행복하면서도 돌아서면 죄 짓는 기분이 드나보다. 어쨌든, 앞으로는

이 죄 짓는 기분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봐야할 것이다.

 

 그새 하늘이 흐려져 온다. 오늘 퇴근 길에 내 앞에 펼쳐질 하늘과 바다, 바다와 하늘을 당장 보고 싶다.

46분만 참자.  

 

 

 

(2009.10.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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