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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고혁신 |2009.10.31 14:25
조회 124 |추천 0

생각, 국가 그리고 참된 삶의 목표

                -홍세화 씨의 강의를 듣고...

                                                                                   20061003 고혁신

 

1.생각

 아주 오래 전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으로 만나뵈었던 홍세화씨의 강의는 제게는 4년간 강의 중 가장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 준 명강의였습니다. 홍세화 씨가 강의를 통해 던진 가장 큰 화두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나의 생각이 나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그 생각이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내 자신을 위하여,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하여 내 생각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첫 질문은 제가 제 자신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기에 매우 신선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생각’에 관한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면서 생각은 곧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해주었습니다. 칸트는 이에 덧붙여,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나, 생각하는 바에 관하여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가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스피노자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라고 하면서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기 보다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잘못된 것도 합리화하면서 끝없이 고집하기 때문에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한국 사회처럼 토론 문화가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생각의 변화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자동차와 몸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치 자동차에서 ‘핸들’이 고정된 것처럼 한 번 잘못 만들어진 개인의 생각은 변화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잘못된 길로 계속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사람의 삶은 몸과 의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몸은 건강하지 않으면 신호라도 오지만, 의식은 가치관이 잘못되어도 아무런 신호가 없습니다. 내 몸의 주체는 확실히 나이지만 과연 나의 의식의 주체도 ‘나’일까요? 내 몸을 키워온 양분은 어머니나 나 자신이 좋은 음식만을 집어넣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의식의 양분은 과연 누가, 어떤 것을 집어 넣어서 만들었을까요?

 

 홍세화씨는 이 물음에 우리 의식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제도권 교육과 미디어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이 대목에서 망치로 쿵 맞은 듯 충격을 받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제도권 교육의 경우, 초중고 12년 동안의 교육과정에서 저는 주어진 것을 암기하는 교육만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것을 암기하고 시험에서 객관식 답을 맞출 수만 있으면 충분하였기에 선생님께 왜?라는 질문을 거의 드려본적이 없었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읽고도 교과서적인 해석에 따라 답을 맞추면 되었기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윤리시간에 여러 철학을 배우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고교시절은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업이 거의 전무하였고, 모두 각자의 책상에 앉아 선생님의 해석을 들으면서 수능문제풀이를 대비하였습니다. 생각을 묻지 않는 교육에서 12년 동안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이 지금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 만큼은 프랑스와 같이 독서와 토론 위주의 수업을 하여 자신의 생각을 직접 피력하면 그것에 대해 교사가 평가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미디어 역시 우리의 생각의 ‘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주범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잘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져로 대답했다.” 언뜻 웃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미디어의 무서움이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광고 뿐만 아니라 온갖 미디어 홍수 속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저희들에게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을 그 사람이 가진 물질적 재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우리들의 무의식에 자리잡혀 있지 않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좋아하는 저는 드라마를 자주 봅니다. 요즘에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안방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밥줘’라는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내에게 전혀 죄책감 없이 계속 결혼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아내 역시 여기에 맞바람을 피우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서겠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나 가정에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철저한 객체에 불과한 우리는 그러한 드라마를 보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가치관에 익숙해져 버릴지 모릅니다.

 

 이렇듯 미디어와 제도권 교육이 만들어낸 의식의 감옥 속에 갇혀버리기 쉬운 우리가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네 가지로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폭넓은 독서, 둘째, 열린 자세의 토론, 셋째, 직접 견문, 넷째, 얻은 정보에 대한 비판적 자기 성찰이 그것입니다. 즉, 이러한 것들을 통해 얻은 의식만이 내가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라고 하시면서 글쓰기의 중요성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저는 폭넓은 독서를 하지 못하고, 자기계발서와 소설 위주로 읽었고 글쓰기라고는 고작 경찰작문과, 레포트 과제 정도였습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노무현 정부가 실정을 거듭할수록 심해져서 신문도 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촛불집회가 발생하고 그 집회에 한 번 참여해보면서 사회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용산참사, 미디어법 강행처리 등의 사건은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부유층 감세, 저소득층 복지 혜택 감소 등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 대해서 독서를 시작하게 해준 이명박 정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쪽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토론도 해 보고 선진복지국가인 북유럽국가에 여행도 가볼 생각입니다.

 

2.국가

 다음으로, ‘생각’이라는 담론에서 벗어나서 ‘국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해주셨습니다. 우선 군주국과 공화국을 대비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군주국은 나라가 개인의 사적 소유물이다. 반면, 공화국은 공익을 핵심가치로 하는 국가이다. 군주국의 신분질서는 배속에서부터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가장 무서운 질서였다.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해 시민들은 이것을 깨부수고 근대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는 데는 수많은 노력, 시간, 담론형성, 그리고 피가 필요했다고 하셨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자본주의 논리를 신봉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국가도 배속에서부터 개인의 상당부분이 결정되어 버리는 무서운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기회의 평등을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강남의 부유층에서 태어난 학생과 지방의 저소득층에서 태어난 학생에게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면서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신문의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부유층과 고학력층의 자녀들이 명문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비율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하위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전환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홍세화씨는 바람직한 국가모델로서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한국사회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사회의 최하층은 인간의 존엄성 이하로 박살나 버리고 중산층은 적고 일부 고소득층이 사회의 정점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사민주의 국가 모델은 누운 달걀 형태로서 고소득층은 적고 중산층이 대부분이며 가장 핵심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이하로 나락한 소외계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불안한 사회모형 안에 사는 개인은 미래의 염려로 오늘을 저당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언제 자신도 소외계층으로 전락할지 모르니까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 수능을 망치는 것은 곧 소외계층이 되는 것이고, 수능을 잘 보면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불안한 사회로부터의 협박은 저로 하여금 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고, 인생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바로 앞의 수능이라는 염려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했던 것 같습니다.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40년 이상의 진보정당의 장기집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어서 대한민국 사회가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정착할 날이 빨리 오지는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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