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당근과 채찍을 말하다 보니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떠올랐어. 비슷하지? 믿으면 천국(=당근), 믿지 않으면 지옥(=채찍)이라는 말이.
영광된 극락과 끔찍한 지옥의 이야기는 기독교 뿐 아니라 고대그리스로마신화, 불교 등 거의 모든 신화와 종교에서 발견 돼.
큰 산사에 들어갈 때 문을 지나며, 박력넘치는 포즈에 울그락불그락 포청천 같이 생긴 거대한 사천왕상을 본 적이 있을 거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들은 수금과 더불어 창, 검 등의 살벌한 것들을 쥐고 있고, 그 발 아래에는 왠 인간들이 신음하며 짓밟히고 있지. 바로 지옥의 죄인들, 악인들을 벌하고 있는 거야. 그 살풍경은 "지옥가기 싫으면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다 극락왕생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러한 인간의 극락에 대한 지향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 인센티브에 끌리고 처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이 낳고 또 이를 이용하려는 카피가 현대 한국의 기독교로 넘어오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로 이어진 것이지. 그건 사려깊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말이야. 참된 신앙인이라면 예수천국 불신지옥를 외칠게 아니라, JESUS Loves You를 고백하겠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외침을 들을 때, 이때 엑센트는 뒷부분 그러니까 불신지옥에 있는 것 같아. 대단히 비호감이지. 지옥 가기 싫으면 믿으라는 거 너무하잖아. 그런 말은 무슨 떼인돈 받아다 주는 신부름센터 깍두기 아저씨들의 멘트로나 어울릴 말 아니야?
치사하잖아. 무슨 보험도 아니고. 게다가 그 말대로라면 신과 인간의 관계가 조건부의 대단히 얕고 실용적인 관계가 되어 버려.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이 지옥 안가고 천국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 버리고. 그가 그런 용도로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을 퍽이나 기뻐하고 반기겠다.
여기 A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B라는 누군가를 참 사랑하고 아낀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B가 A를 단지 이익을 위해 가까이 한다면 A 입장에서 얼마나 비참하겠어. 과연 A가 그런 것을 원하겠어? 그건 엉터리야. 신과 인간의 관계는 보험도, 조건도 아니야. 그것은 실은 깊고 온전한, 참된 사랑이라는 거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하자 신은 그를 멈춰세우며 축복했어. 만일 아브라함이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 하지만 신을 이용해야 하니까 억지로 마지못해 이삭을 바치려 했다면, 신은 그를 축복하지 않았을 거야. 그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니까.
아브라함은 신을 참으로 이해하고, 온전히 신뢰했던 거야. 그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사랑이신 그분을. 아브라함은 알았던 거야. 그리고 순종했던 거야. 그와 같은 이해와 신뢰, 그리고 순종은 서로간의 깊은 사랑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어.
신이 바라는 것은 천국 가기 위한 조건부의 애정이 아니야. 그가 원하는 것은 지옥가지 않기 위한 보험이 아니야. 우리가 무조건적이며 참된,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듯, 그도 그와 같은 사랑을 기다리고 있어. 이미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06.12.21
----------------------------------------------------------------------------------
오래 전에 싸이광장에 쓴 글입니다.
벌써 3년 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