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변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변기는
내가 가까이 가면
쫘악 물을 틀어
제 몸을 씻어내리곤 했다.
-이문혁, <변기>에서
======================
냄새나고 더럽다고
변기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변기에게서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 중
정작 변기가 저지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러운 것은
온통 내게서 나왔는데
묵묵히 그것을 받아준 변기가
더럽다는 이미지를 대신 뒤집어 쓰고
나는 시치미 뚝 떼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가장 적나라하고
가장 원초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변기는 얼마나 위대한지요.
내가 아무리 고고한 척 폼을 잡아봐도
나의 더러운 것을 받아줄 그가 없다면
더러운 것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금새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변기같이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받아주는 존재가 꼭 필요한데
누구도 변기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누구도 변기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서로 불쾌해집니다.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다툽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허물, 온갖 부끄러운 잘못이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참아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정작 귀한 것은 변기였습니다.
나의 가장 부끄러운 것을
말없이 받아준 그가
가장 고맙고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내 실수를 묵묵히 받아준 사람
내 허물을 알지만 덮어준 사람
나를 용서해준 사람
누군가 변기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습니다.
변기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나만큼이나 부끄러운 그 사람의 모습
서툴지만 조금씩 받아줄 수 있다면
그 사람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쌌어?"
"저요...죄송해요."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냐. 나도 똑같은 걸."
by 벤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