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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쌌어?

벤치 |2009.12.14 14:02
조회 165 |추천 0

 

나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변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변기는
내가 가까이 가면
쫘악 물을 틀어
제 몸을 씻어내리곤 했다.

 

-이문혁, <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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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고 더럽다고

변기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변기에게서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 중

정작 변기가 저지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러운 것은

온통 내게서 나왔는데

묵묵히 그것을 받아준 변기가

더럽다는 이미지를 대신 뒤집어 쓰고

나는 시치미 뚝 떼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가장 적나라하고

가장 원초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변기는 얼마나 위대한지요.

 

내가 아무리 고고한 척 폼을 잡아봐도

나의 더러운 것을 받아줄 그가 없다면

더러운 것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금새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변기같이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받아주는 존재가 꼭 필요한데

누구도 변기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누구도 변기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서로 불쾌해집니다.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다툽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허물, 온갖 부끄러운 잘못이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참아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정작 귀한 것은 변기였습니다.

나의 가장 부끄러운 것을

말없이 받아준 그가

가장 고맙고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내 실수를 묵묵히 받아준 사람

내 허물을 알지만 덮어준 사람

나를 용서해준 사람

 

누군가 변기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습니다.

 

변기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나만큼이나 부끄러운 그 사람의 모습

서툴지만 조금씩 받아줄 수 있다면

그 사람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쌌어?"

"저요...죄송해요."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냐. 나도 똑같은 걸."

 

 

by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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