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 706명 정리해고… 지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이란 제목으로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가 최근 뿌린 전단지 내용입니다.
언뜻 월급 100만원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호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기업인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입니다. 이 전단지를 받아들 사람들보다 2~3배 많은 월급을 받고 있지요.
금호타이어는 엊그제 자사 생산직 노동자들의 연봉 수준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끝이 없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이 내역을 보면,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이 회사 공장에서 근무하는 고졸 생산직의 평균 연봉은 7135만원입니다. 연말정산을 위한 작년 소득세 신고액 기준입니다.('소득세 신고액'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연봉은 이 수치보다도 높을 수 있습니다.)
1억원 이상 최고 연봉을 받는 생산직이 209명(전체의 4.9%)이나 됐습니다. 생산직 200여 명이 임원급 대우를 받는 겁니다.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단순 업무이지만,오래 근무하면 생산직 누구나 같은 연봉을 받게 되는 구조이죠.
8000만~1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생산직도 전체의 25.7%인 11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생산직의 30% 이상이 연봉 8000만원 이상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관리직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금호타이어 직원인데도 일반 관리직의 평균 연봉은 4880만원에 불과합습니다. 생산직보다 2300만원 적은 것이죠.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런 고액 연봉을 받는 생산직은 흔치 않습니다.
노조에 확인해 봤습니다. 고임금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더군요. 다만 그 이유로,"정년에 가까운 장기 근속자가 많다.이들 중 퇴직금을 많이 받기 위해 휴일근무를 자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작년만 해도 한 달에 평균 두 번 정도는 휴일근무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한 달에 두 번 휴일근무하고 억대 연봉을 받고 싶어하는 월급쟁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금호타이어의 생산직 임금이 왜 이렇게 높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산직 위주인 노조가 매년 파업하겠다며 사측을 압박했고,당장 생산량 확보가 급한 사측이 이를 용인한 결과입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2004년 전년 대비 18.2% 임금인상을 시작으로 매년 10% 안팎 임금을 올려왔습니다. 작년 말 기준 평균 임금이 2004년 대비 71.6% 높아졌지요. 이 역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금호타이어는 장사를 잘했을까요?
노조의 임무가 조합원 임금을 올리고 생산성을 낮춰 노동강도를 줄이는 것인데,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마당에 실적이 좋을 리 없습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04년부터 꾸준히 하락했고,작년엔 결국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올 상반기 누적 영업적자가 1042억원,당기순손실이 2223억원이나 됐지요. 국내 타이어 업체 가운데 최악의 실적입니다.
금호그룹이 구조적인 문제를 되돌아본 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였습니다. 잘 나갈 때는 여유가 없었는데,생산량이 줄고 비용절감 필요성이 높아지자 고임금 문제를 건드릴 필요가 생긴 거지요.
과거 광주공장에서 오래 근무했던 오세철 전 금호타이어 사장이 물어난 것도 이런 문제와 무관치 않습니다. 그룹이 노조에 '퍼주기 협상'을 했던 책임을 지운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작년 개인적으로 오 사장을 만났을 때 노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조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 취임한 김종호 금호타이어 신임 사장이 총대를 멨습니다. 기형적인 임금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회사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마침 노조가 올해 임금협상을 하자고 요구해 왔습니다. 예년과 똑같은 방식이었죠.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지침을 감안해 임금을 7.48% 올리고,작년분 추가 성과급을 지급하며 올해 성과급을 별도로 확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생산감소로 특근이 줄었기 때문에 회사 측이 실질임금 하락분도 모두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사측은 이번엔 달랐습니다. 임금 동결과 복지혜택 한시중단,인력 재배치 등을 골자로 경쟁력 강화방안을 대신 내놨습니다.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체 생산직의 7.9%(706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노조는 으레 하던대로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4시간 부분파업 및 전면파업을 병행했고,놀면서 일하는 태업도 계속했죠. "이래도 말을 안듣겠느냐"는 판단을 했을 겁니다. 지난 5년동안은 사측이 모두 굴복했으니까요.
금호타이어는 어제 노조에 정리해고자 명단을 통보해 버렸습니다. 총 733명 중 706명의 고용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엔 직장폐쇄를 단행했지요. 초강수를 둔 겁니다.
당황한 쪽은 노조입니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죠.
노조는 오늘 오전 열린 교섭에서,기본급 동결을 골자로 한 수정안을 내놨습니다. 올해 성과급 규모를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내년 1분기에 하자고도 했습니다. 일단 한 발 물어선 모양새를 갖췄습니다.(사실 '성과급'의 의미를 되새긴다면,경영실적 결산이 끝난 차기년도에 결정하는 게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실질임금 하락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또 다시 내걸었습니다. 판매감소로 특근이 없더라도,마치 특근을 한 것처럼 수당을 달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무노동 유임금'을 주장한 겁니다.
사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노조는 오늘 교섭 과정에선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이것이 핵심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측 역시 "노조가 임금동결 등 경쟁력 강화방안을 받아들이면 정리해고를 언제든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지요.
이를 뻔히 알면서도 '정리해고는 살인' 운운하며 광주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일입니다. 또 정리해고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을 놓고,위험한 도박을 벌이는 행위입니다.
금호타이어의 높은 인건비는 타이어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일반 시민들과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쌍용차 노조는 임금동결이 필요할 때 임금인상을 외치며 파업했고,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자 뒤늦게 정리해고에 반대한다며 파업했습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이지요.
억대 연봉자들이 많은 금호타이어 노조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