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관용에 관한 편지-존 로크

이영호 |2009.12.26 16:14
조회 293 |추천 0

관용에 관한 편지 - 존 로크(1632~1704)

 

1632년 영국 출생.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청교도적인 가름침을 받음.
당시 -17세기- 유럽은 카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탄트들의 권리 투쟁으로 대혼란의 시기였는데, 이에 로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자는 관용론을 펼쳤다.

 

과거, 종교가 정치를 통치하던 시기가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코페르니 쿠스(지동설 주장)와 갈릴레이가 그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존 로크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사람이다. 즉, 종교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정치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그 힘이 미치던 때.
로크는 관용이야 말로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라고 말하면서, 정치가 곧 통치가 신의 은총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일종의 지배라고도 했다. 오늘날에서는 이것이 이해 되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정치(통치)가 종교(신)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원래는 종교가 정치를 이용한 것이지만). 따라서 어디까지나 로크는 정치와 종교를 구별해야 함을 설파하고 그 역할, 영역이 다름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의무라는 말이 나온다.
첫째, 통치자는 영혼의 구원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즉, 통치자는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일반 국민에게 강요 및 설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국민들을 현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의(통치자의) 정치방향을 따르는 것이 곧 영혼을 구원한다는.
둘째, 영혼의 구원은 물리적 강제가 아닌 영혼의 내적 확신에 기초한다. 즉, 어디 까지나 종교적 신념은 개개인의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통치자가 이에 관해서는 절대 관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구원의 길은 하나인데 세상에 수많은 통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자연스럽게 논증되어 영혼의 구원에 대해 통치자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말하기를 국가는 인간의 시민적/공적 측면에 관여하고, 교회는 인간의 종교적/사적 측면에 관여한다. 서로 다른 이 두 영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 바로 '관용"이라 한다. 이 속에서 무수히 발생되는 문제들, 국가가 종교(교회)를, 종교가 국가를 서로 자기의 영역으로 끌어 당기려 할 때, 그래서 때로는 온갖 잡다하고 비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로크는 그러지 말고 상호 관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양심적이라는 말.
나는 이 즈음에 양심선언을 한다는 말.
이것은 무슨 말일까.
양심수라는 말도 있고, 병역문제 관련하여서도 양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다는.
책의 해제에서는 양심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 한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과의 일치를 뜻한다. 나의 내면과 나의 외면이 일치하는 것이 양심적인 것이다. 비양심적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양심수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 사람들)의 기준에서 살펴본다면, 국가나 어떤 권력집단이 그들의 양심과 반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한테 그들을 곧 버리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신념이 강하면 강할 수록 이것은 그들한테 더한 것이 될 것이다.

 

최근 나라 국회에서 벌어지는 국회의원들의 행태 즉, 국가 문제를 둘러싸고 그것의 해결이 미진하여 의사당내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들을 보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모든 국민(물론 지역적이긴 하지만)을 대리(대표는 아닌듯 싶다)하는 그들로써 응당 잘하는 일인가는 의심스럽다. 그들 지역구내에서는 개신교 뿐 아니라 불교도 있고, 천주교도 있고 다른 종교인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개인이라면 괜찮겠지만 모든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원 신분이기에 그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신념이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러한 신념이 오도될 일은 미래에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치가는 신념의 동물이다. 물론 대부분? 지역구 또는 국민들의 의사 즉, 다수결에 따라 국회에서 그들은 법률적 절차에 따라 대리행위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자기의 신념을 표출해야만 하는 경우에 있어서 정치가는 신념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랬을때 정치가의 신념은 어디로 부터 오고, 만들어 지는 가? 그 중 상당은 종교적 신념에서 오는 예도 많다고 생각된다. 종교라는 것은 곧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혼의 구원과 관계가 있고, 아니 오히려 그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자기가 믿는 종교가 곧 자기의 어떤 사상체계의 정점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종교가 뭐냐에 따라 하부 행위들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좀 지난 일이기 하지만, 왜 불교인들이 현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 했겠는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정치인의 종교적 신념/편향성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행위는 철저히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