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 생각이 많은 건 당연지사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 가만히 있을 경우 지나칠 정도로 생각이 많다. 사소한 것부터 진중한 것까지 그저 가볍게 넘기는 센스를 발휘할 필요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 할때가 종종있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 가슴 속은 이것저것으로 꽉 들어차 있고 표현할 것은 많은데 감정을 다 쏟을 이는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 들어주는 그 이 역시 지쳐 있기 때문이겠지. 한꺼번에 모두 뱉어내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 토로나 엄살도 아니다.
그럼에도 주위에 good listener를 찾긴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면 너는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나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내가 하는 생각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언제 가야 좋은 타이밍일까? 화장실에 사람 붐비는거 싫은데 가면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을까?
외출 중 동행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내가 마실 음료는 무엇이고 적절양은 얼마일까?
도너츠가 먹고 싶은데 크리스피가 나을까 던킨이 나을까? 또 거기에 갔는데 내가 좋아라하는 바바리안 크림이 없으면 어떡하지? 글레이즈드는 따뜻할까?
약속한 날의 날씨에 비가 오지 않을까? 난 비 오는 날씨를 정말 좋아라하는데 동행인은 반대이면 어떡하지?
어떤가? 당신들도 이런 고민을 하는가?
아마 나와 비슷한 류의 생각들도 있겠지만 몇 개를 제외하곤 거의 안 하는 고민이지 싶다. 이 외에도 나의 작고 큰 생각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자잘한 고민을 하고 있어선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하나 둘 고민을 이야기 한다. 이제 갖 제대를 하고 꿈을 찾아 해매던 후배에게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살은 것이 아니고 호흡이 있어도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꿈을 꾸는데 있어 제한을 두지마. 세상 기준에 맞춰 계산하거나 주사위를 굴리지마. 하나님 없는 인간은 제한적이나 하나님의 힘을 입은 자에게 제한은 없다. 꿈을 크게 가지자.
그 말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또 지나친 오바인지 그 후에 후배는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또 한명의 지인의 이야기를 말할려 한다.
그는 몸이 불편하다. 단순노동 일을 했었는데 사정이 어려워지자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다 그도 여의치 않아 그룹 홈을 들어가서 지낸다고 알아보고 있단다. 그룹 홈이란 장애인끼리 모여 더치페이로 공과금을 내며 일반 가정처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회사를 나올 때 받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몇 달 지불하고 나면 나와야 한다. 그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터라 그 곳에서 돈을 다 쓰고 나면 빈털털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지내는 것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그 곳에 들어가려 하기에 내가 비아냥 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 곳에서 지내기엔 아까운 청춘이니까.
수천, 수만가지의 좋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비아냥과 화로 일관한 내 모습 역시 good listener 의 자세는 아니였을 것이다. 나보다 더 마음 넓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경우와 반대로 내 말을 들어주는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별로 안 된다. 아예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듣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람의 특성상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곤 하지만 인생은 case by case임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본인이 겪고 있는 별 것 아닌 그 일이 타인에게는 클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 그 어려움에 대해 남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나?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까 나열했던 고민들보다 더 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good listener'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