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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어 준다는 오해

테오 |2010.01.10 06:19
조회 2,262 |추천 0

1.

2003년 겨울에 구입한 나의 첫 카메라.

사진에 관심이 없어 카메라 없이 살았다.

그러다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곳.

그래서 카메라를 찾았고 이 아이를 선택했다.

좀 더 비싼 고급 기종의 카메라를 추천 받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건 따뜻한 사진이었으며 이 아이의 사진이 바로 그랬으니까.

물론 노이즈도 많고 해상도도 낮고 AF도 느렸다.

그러나 뭔 상관인가.

그런 요소가 복합되어 찍어 낸 사진이 결국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따뜻한 사진인데 말이다.

잊지 못할 내 생애 첫 번째 카메라.

올림푸스 5060WZ다.

 

색 온도가 따뜻하다. 하늘을 보는 시선이 평화롭고 푸르다.

첫 여행 에세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가 이 아이의 작품이다.

이후 3년 동안 곁에 있어 주었다.

 

                                          올림푸스 5060WZ

                                          1/1.8 인치의 CCD 촬상소자

                                          5백10만 화소

                                          35mm 필름 카메라 환산 27mm의 광각

                                          70만원 

                                         

  

2.

아프리카에 오래 머물면서 태양과 맞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광에 비켜서고 싶지 않았다.

5060WZ를 보내고 T* 코팅의 칼짜이즈 렌즈를 손에 들었다.

카메라가 아니라 녀석이 품은 렌즈를 선택한 것이다.

이 카메라 역시 렌즈를 교환할 수 없다.

여지없는 똑딱이인 것이다.

물론 똑딱이든 뭐든 상관없다. 녀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아프리카의 태양과 맞서 주었다.

역광 앞에서 고개 돌리지 않았다. 빛을 가르고 대상을 포획하였다.

녀석을 들고 남미로 향한 건 당연했다.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캐논 니콘의 DSLR 기종을 권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이미 녀석이 뽑아주고 있었다.

실은, 단 하나의 렌즈로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좋았다.

그게 내 성정에 맞았다.

상황에 따라 바꾸고 교체하는 타입은 좋아하지 않는다.

2007년 여름에 만난 나의 두 번째 카메라.

소니 R1이다.

 

좋은 눈과 강한 심장을 지녔다.

똑딱이 주제에 이미지 센서 크기가 어지간한 DSLR 급이다.

깊은 밤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기계적 색감이 스밀 때가 있지만,

잘 다독이며 마음을 쓰면 대부분 원하는 감성의 사진을 담아주었다.

옛 색감이 그리워 잠시 올림푸스의 E-510을 들어봤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지금도 좋아하는 내 카메라 R1이다.

두 번째 여행 에세이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이 이 아이의 작품이다.

 

                                          소니 R1

                                          21.5x14.4mm CMOS 이미지 센서 

                                          1천만 화소

                                          T* 코팅 F2.8 - F4.8  칼짜이쯔 렌즈

                                          82만원

                                         

3.

사진을 찍으며 갖게 된 몇 가지 희망을 모두 지닌 아이가 탄생했다.

게다가 작고 예쁘다.

아이의 이름은 파나소닉 GF1.

 

이렇게 작고 예쁜 아이가 무려 DSLR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상을 비쳐주는 반사거울이 없으니 DSL 쪽이 맞다.

뭐 결국 똑딱이인가? 실은 똑딱이여도 상관 없지만 이 아이는 렌즈를 교환할 수 있다.

물론 나는 교환할 렌즈에 그리 간절하지가 않다.

루믹스 G VARIO 14-140mm HD 렌즈를 살펴보고 있지만 사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아이가 안고 온 기본 번들렌즈가 내 마음에 쏙 들기 때문이다.

그제 데려왔고 어제부터 종일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아직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눈 내리는 영상을 59초 찍어보았다.

첫 사진을 찍어보면 알게 되겠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할 아이인지.

예상?

지난 두 카메라를 합친 것만큼의 시간 동안 이 아이와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저술 중인 사랑 에세이부터 이 아이의 솜씨에 맡겨보고 싶다.

 

                                          파나소닉 GF1

                                          17.3mmx13mm 마이크로포서즈 이미지 센서

                                          루믹스 G 20mm/F1.7 ASPH 렌즈

                                          1천2백만 화소

                                          AVCHDlite 1280x720 30프레임 HD 동영상

                                          렌즈킷 113만원

                                           

                                         

 

 

4.

중요한 것은 사진이다. 카메라가 아니다.

카메라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카메라를 도구 삼아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내가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도구를 선택할 수 있다.

카메라부터 고르는 사람은 자기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찍어주는 사진을 제공 받을 뿐이다.

그 사진을 내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감성이 카메라의 감성인가.

카메라의 감성이 내 감성인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말이 아니다.

 

가장 비싼 카메라가 가장 좋은 사진을 찍을까?

그럴리가.

그저 다른 사진을 찍을 뿐이다. 좋고 나쁨은 없다.

저마다 다를 뿐이다.

 

무리 속에 섞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는 몇몇 심약한 성정의 사람들 말고는

자기 감성에 집중해서 자기 사진을 찾고

그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카메라를 찾는 게 온전한 순서이다.

 

모두의 등에 같은 브랜드의 가방이 업혀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보면 조금 부끄럽다.

사진 찍는 사람들 손에 여지없이 검고 큰 DSLR 카메라가 들려있는 모습이

그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

 

 

 

 

더하기.

책에 인쇄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다른 카메라들이 선택될 수도 있었다.

30만원 내외의 삼성 VLUU 카메라도 내가 좋아하는 감성의 사진을 찍어준다.

은근히 비싼 카메라만 사용해 놓고 왜 딴 소리냐, 식의 항의가 들리는 것 같아 꼬랑지를 달았다.

 

 

 

 

 

 

 

 

 

 

내게 와줘서 기뻐.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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