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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유산 80억.

보고.. |2010.01.13 11:54
조회 2,247 |추천 0

이야기가 길어요..

 

아버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셨습니다.

 

실제 영화 디워를 찍을때도 한국산 CG의 중요 핵심 기술들은 아버지 회사의 기술력이 많이 들어갔을만큼 국낸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느정도 인정 받는 수준이였구요..

 

 

누나한명과 남자인저 아버지 이렇게 세가족이였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70년대에 인하공대를 나오셨습니다. 당시에는 공대가 의대보다 더 수재들이 모이는곳이라고 하더군요..

 

충청도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어렸을때부터 그 지역에서 특출난 수재셨고 머리가 좋으셔서 공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는 아버지의 머리를 닮지 못했습니다. 많은 기대속에서 이뤄진 학창시절이 저에게는 괴로운 기억이였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고 좌절이 반복 되면서

저의 성격은 부정적으로 변해갔고 삐뚤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을 보기 싫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외교관이 되길 바랬지만 제 성적과는 거리가 아주 먼 직업이였죠.

 

 

저는 그렇게 어중간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한국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를 할때면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고 싶어하고 집을 그리워 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보냈던 1년을 제외한 6년이 넘는 미국생활을 집에서 100원짜리

한번 받아본적 없었습니다.  집에서 보내온 돈은 나에게 부담이였고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도 한국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누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나는 제가 미국에 있는 사이 결혼했고 저는 그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던 동생입니다.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교통사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허겁지겁 달려간 한국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살아계실때 어머니가 안계신 관계로 이미 저희 누나와 제 명의로 유산을 증여해두셨다고 하더군요. 변호사와 세무사가 들락 거리고

아버지 명의로 된 건물도 저와 제 누나  공동 명의로 변경되고..이래저래 해서 장례를

마치고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상속세를 떼고 제 몫으로 남겨진 유산은 부동산을 합쳐 80억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을 받을 자격이 되는 아들인지 자괴감에 빠져

많이 힘들었습니다.

 

있을땐 없어도 그만인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잃고 나니 그리웠습니다.

 

 

누나에게 아버지가 그립다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런 자격이 없는 놈인거

같아서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힘들어 하다 누나를 만났습니다. 공동 명의로 된 건물을 누나 명의로 돌렸습니다. 저를 위해서 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인 누나에게 살아계실땐 코빼기도 안비친놈이 돌아가셨다고 하자 나타나서 유산만 받은 놈으로 기억되는게 싫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누나는 울고 있는 내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몇번을 말해주었습니다.

서러움에 복받쳐 울다가 울다가 지쳐서 고개를 드니 누나가 또 괜찮다고 웃어줍니다.

 

 

그리고 조카얼굴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처음 본 삼촌이란 다 큰 사람이 울고 있는게

무서웠는지 저를 보더니 인상을 찡그리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못된 아들이였는지 ..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장례마지막날 아버지 영정사진을 눈앞에 두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땐 나지 않던

지눈물이 지금에서야 왜 이렇게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이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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