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을 생각하면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풍경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깊은 멋은 시내 맛집에 가면 느낄 수 있다. 특히 겨울이면 국물 끓는 수증기가 가득한 오뎅 집에서의 한잔은 부산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맛과 분위기가 영혼을 훈훈하게 한다. 고향이 아니어도 고향인 것 같은. 아님 이 곳이 고향이었으면 하는… 정체불명의 아련함을 느끼는 로맨스가 있다.
부산에 가면 '어묵'이란 단어가 생경스럽다. '오뎅'… 일본어라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잘 모르겠지만… '오뎅집'은 부산에서 제일 먼저 자리를 잡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부산의 정취에는 오래 전에 써온 '오뎅'이라는 단어가 더 와 닿는다.

'오사마리'는 몇 년 전 부산에 잠깐 기거할 때 우연하게 가게 된 집. 한잔 하기로 하고 부산에 있는 동생과 같이 만나 해운대에 있는 유명한 오뎅집 '미**'로 가려고 했다. "거긴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만 가는데…" 이 한마디에 시내 쪽으로 방향을 바꿔 간 곳이다.
남포동에서 내려 좀 가니까 '족발골목'이라는 길이 나오고, 그 길 초입 왼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프레임에 유리 미닫이 문이 정겨웠다. 수증기가 녹아 물기가 많이 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가게 내부. '오사마리'는 오뎅 아니고는 다른 메뉴를 상상하기 힘들게 하는 가게였다.
고등어 구이 등 좋은 안주거리가 될 것도 많았으나, 언제나 식당 등에 가면 그 집의 가장 유명한 메뉴를 시켰듯, 오사마리에서 유명한 모듬오뎅을 주문하였다. 땅콩을 껍질 체 삶은 것도 나오고 락교, 생강과 미역 초절임이 나오는데 유명 일식집같이 고급은 아니었지만 맛이 괜찮았다. 그리고 미리 오뎅국물을 주는데 약간 싱거운 듯. 그러나 간장 맛이 심하여 원재료의 맛을 가리는 서울 여느 오뎅집 국물보다는 차원이 훨씬 높은, 원재료의 맛을 분명히 느끼는 꽤 괜찮은 맛이었다.
오사마리의 오뎅엔 소고기 힘줄, 즉 일본어 '스지'라는 것이 들어간다. '스지'는 서울 지역에선 흔치 않지만 부산 지역의 유명 오뎅 집에선 빠지지 않는 재료이다.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레시피를 따르는 것으로, 멸치 등을 베이스로 하여 국물을 내는 서울지역 오뎅국물과는 맛이 다르다. 아주 약한 고기국물 맛이 느껴지면서.. 하여간에 맛이 무지 좋다. ^^

오사마리는 커다란 그릇에 여러 종류의 오뎅이 골고루 넣어 준다. 넉넉한 모습이 구미를 언제나 자극한다. 음식은 언제나 맛과 더불어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컨셉이 딱 맞는 듯. 유부에 당면 등을 넣은 유부오뎅도 튼실하게 보이고, 삶은 메추리 알도 몇 개 들어 음식 자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일본의 자잘함과 한국의 넉넉함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부산 밖에선 흔치 않은 '보는 맛'이다.

어떤 집들의 오뎅은 조미료 맛도 강하게 나는데, 오사마리의 오뎅은 그렇지 않다. 스지가 푹 고와진 국물 맛과 적당히 조화가 되면서 생선살로 만든 오뎅 원래의 맛을 느끼는 것 같다. 오뎅의 질이 좋아서 그런지 오뎅이 불거나 퍼지지 않았다. 당연히 씹는 식감도 좋다. 국물에 불어 너무 부드럽다 못해 한두번 씹으면 자동으로 삼켜지는 그런 오뎅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씹는 맛'이 있는 오뎅이다.

오사마리 오뎅에는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있다. 갖가지 모습의 오뎅은 물론 곤약과 스지 등이 들어있어 오뎅을 먹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간간히 마시는 소주와 맞아 떨어짐이 아주 훌륭하여 술 안주로선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은 '스지'를 따로 팔고 있어 소고기 힘줄의 쫀득하면서 독특한 고소함을 즐기는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충족시킨다.

오사마리 오뎅대에는 언제나 커다란 청주병이 담겨 있다. 마치 따듯한 욕탕에서 사우나를 하는 아저씨처럼 나름대로의 포스가 보이고, 한편으론 재미있다. 오사마리에서는 데운 청주 잔술을 파는데, 나이가 좀 지긋한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오사마리는 언제나 손님이 많다. 오뎅국물 끓는 수증기가 뽀얀 공간에 부산 사투리가 가득 차있다. 힘든 얘기, 웃긴 얘기들로 사는 얘기가 오고 가고, 어떨 땐 고성이 오가고 목청이 커진다. 경상도 그리고 부산 특유의 분위기가 위압적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그런 가운데 부산의 로맨스를 엿볼 수 있다. 오사마리의 맛은 단지 오뎅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오사마리의 맛이다.
우리나라 모든 도시가 그랬듯, 부산 시내가 언제 재개발이 될 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오사마리를 비롯한 부산 시내의 맛집의 모습이 없어질 것이다. 그리기 전에 몇 번은 또 가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기면서 사는 나의 하루 하루가 그걸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오사마리는 내 기억 속 '로맨스 란' 에 분류가 되어있고, 겨울이 되면 기러기보다 이 집 오뎅이 떠오른다. 따뜻한 오뎅국물의 로맨스. 없어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