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첫 승용차 '프레스토'
오랜기다림끝에 아부지의 교장 차출소식이라는 가족의 경사속에
父子끼리 간만에 생태공원으로 가볍게 운동을 나갔다.
조금은 쌀쌀한날씨속에
지금껏 몇번이고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말안하셨던
좀체 안하시던 아버지의 어릴적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중에
한때 집에 돈 좀 없었던 집안없고
한때 풀 뜯어먹을 정도로 가난하지않던 집안없다고하는데
우리집안은 그 두개를 모두 겪었으니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도록하자
할아버지의 성함은 박봉옥으로 우리나라의 60년대 군산의 최고 갑부이다
어느 정도로 갑부였나고하면 아버지말로는 당시 군산에서 가장 큰집에 살았다고한다
할아버지는 군산항에서 고기잡이배를 운영하면서 거대한 부를 축척했고 군산의 최고 유지였다
직접 일본까지가서 배 2척을 주문&주조해왔고 이는 군산항 최초동력선이었다.
기존의 한척과 합쳐서 총3척을 운영했다
배의 개항식엔 수많은 사람들과 흔히 말하는 높다하는 '장'들은 다왔는데 은행장, 경찰장, 의원, 등
어마어마한 인파속에 축하 빵빠레를 불고 사회자의 목소리에 맞추어 할아버지와 '장'들의 가위질을 신호로
새로 주조한 배가 레일을 따라 바다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모습이 아직도 아버지의 눈엔 선명하다고한다
배의 이름은 '입지1호' '입지2호' '입지3호'라고 지었다
그 당시 진짜 부자들만 전화기가 있었고 더더욱 부자는 전축까지 있었는데 할아부지집은 그 두개가 다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는 전화번호 끝자리 1020 (노래가사도 아니고.....-_-;)
스승의 날이되면 리어카에 생선을 담은 궤짝을 가득싣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선물로드렸고(생선한마리가 귀한시절)
할아버지 이름을, 할아버지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마디로 '군산 박봉옥'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부'도 한순간이라는게 할아버지의 배 한척에 선원들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에 휩쓸려 전원사망했고 그날로 유가족들이 집안에 들이닥쳐 난리를 치고 그것이 시발점이되서 하룻밤에 모든게 날라갔다고 보험이 존재했지만 아직 개념이 안잡힌 시절이라 선원한명당 유가족 대략7-8명씩 책임지게되었다고한다. 열명만 잡아도 칠십명.......ㄷㄷㄷ
이쯤 예상되는건 그후로는 찢어지게 가난해지는 ver.이다 흔히 등장하는 용어 단칸방, 호롱불, 인형 눈알 붙이기등등 예상하는 모든것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있는 군산중앙국민학교(100년전통)에 다녔다
집안이 몰락할때 아빠가 국민학생이었고 군산중학교에 입학하였으니 집안사정으로
공고에 입학했다(공고이름이 생각안난다)
3년제의 공고의 공부에 다른과목은 전부 만점, 등수로는 1등이었지만 기술같은 실습과목에서는 영 시원찮았고
인문계 공부가 그때당시의 한으로 남아있다
평생의 불알친구 두명을 갖게되고
평구 아저씨- 국민학교 중학교 대학교 동창
준만 아저씨-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어찌저찌 공고를 졸업하고 항상 가져왔던 조종사의 꿈을 이루기위해 공군시험을 봤다
당시 아빠랑 준만아저씨 평구아저씨 그리고 평구아저씨 친구 이렇게 네명이 고모집(아빠 누나)집에서
머무르면서 시험을 봤는데
실기당일 모든게 다통과했는데 집안사정으로 관리가 허술했던 치아가 안그래도 맘에걸렸는데
시험관이 윗니를 관찰하고 윗니가그려진 시험지 이빨그림 두개를 찍찍 그었을때만해도 '휴 두개까지는 괜찮다고했으니'라고 생각하는순간 밑에 이를 보더니 시험지 이빨그림을 또다시 찍찍 긋더니 불학격을 외치며
아빠가 보는앞에서응시원서를 사정없이 찢어버렸다고 한다
아빠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 실기가 합격했고 미안한나머지 머물던 고모집에서 각자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짐싸서 나왔다고 근데 결국 필기에서 평구아저씨 준만아저씨는 떨어지는가운데 유일하게 평구아저씨 친구만 합격했고 그분은 공군소령으로 현역은퇴해서 아시아나항공 부기장으로 가서 현재는 기장이 되서 일하고있다고했다
그렇게 공군시험에서 실망과 좌절로 방황하고 맨날 놀자판으로 생활할때에
할아버지가 몰래 교대에 지원을 해버렸고 당시 2년제였던 교대가 기가차지도 않았던 아빠를
떨어져도좋으니 시험만 보거라 죽어라 설득하는 할아버지의 부탁과 사정에 못이겨 시험당일까지도 놀다가
시험을 보러갔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나오는순간 그렇게 놀았는데도 문제가 다생각나고 합격을 예감했다고
결국 교대는 쉽게 합격했고 선생질이라도 하자하고 입학하게된다
군산교대 입학식날
교대에서 준만아저씨를 다시만난다 둘은 바로 옆자리에 앉고
총장의 언사후에 입학식 등수 장학금을 준다고 발표하는데
'1등은 이광희 (기억하는게 신기하다), 2등.... 4등 박병희' 하는순간
아빠 : '야~ 나랑 이름이 똑같은 애가 있나보네ㅋ'
준만 : '그런가보다ㅋ'
사회자 : ' 박병희 학생! '
사회자 : ' 박병희 학생!! ''
-아무도 안나가자-
사회자 : '1학년 3반 40번 박병희학생!!!'
아빠가 1학년3반40번이었고 놀라서 어떨결에 나갔다고 그렇게 놀고무작정 시험만봤는데 4등이다
(날보며 한숨쉬는 아빠를 이해하겠다 ㅡㅡ;;;)
이렇게 교대생활은 시작되고 지금의 부인 그러니까 나의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국딩동창이지만 교대에서부터 교제를 시작한다
아참, 알고보니 평구아저씨도 교대를 지원했고 셋이 또다시 만난다
그렇게 싫어서 어쩔수없이 간 교대생활이야 볼것없었다. 1학년때 펑펑놀고 공부도 안하다가
2학년때 겨우 정신차리고 공부했다.
결국, 평구아저씨는 1등으로 졸업하고 뒤늦게 정신차린 아빠는 18등이된다
당시 졸업하고도 바로 임용이 안되고 수년씩 대기하는 문제가 발생한때였는데 3-4년차가 대기자도 대기하는 실정에 졸업관행과 국가행정상 졸업생의 매년 상위5%는 바로 임용되지만 당시 졸업생은 250명(?) 14등까지만 임용이되는데
아부지는 18등 즉, 15등부터->아웃! 아빠는 무려 2년5개월을 대기하게된다 ..... 그후로
< 중략 >
가난과 배움에 목말라있던 아버지의 삶은 전투였고 아무런 지원도없던 환경에서의 열정과 노력 끈기로 이루어낸
결과이자 열매였다
지금의 아버지가 살아온 삶가운데 극히 작은일부이지만 내겐 진심으로 흥미로웠고 아마 다시는 듣기어려운 이야기가 될것같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분
가족에게만큼은 이세상 누구보다도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분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백점만점에 백점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