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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원죄

라톤의 머리, 아프로디테의 육체, 그리고 생리대...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패러디한
중국 화가 세 사람의 <단테와 신곡(神曲)을 논하며>라는 그림에 대한 기사를 보고
줄줄이 적어본 글입니다만,
대체로 그렇듯, 긴 글입니다. ^^

긴 글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은 뒤로가기 버튼 클릭! ^^



- 1. <단테와 신곡(神曲)을 논하며>


<타임스 The Times>, <가디언 The Guardian>과 더불어
영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데일리 텔레그래프 The Daily Telegraph>의
<103 famous faces in one painting>이라는 제목의 며칠전 기사 하나...

http://www.telegraph.co.uk/news/newstopics/howaboutthat/5001462/103-famous-faces-in-one-painting.html


유명인물 103명의 모습을 한 화폭에 담은 이색적인 유화(油畵)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단테와 신곡(神曲)을 논하며(Discussing the Divine Comedy with Dante – in 2006)>
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제목에서 보듯이 2006년 작품인데,
최근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얻어 네티즌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 내용이다.


<단테와 신곡(神曲)을 논하며(Discussing the Divine Comedy with Dante – in 2006)>
그림 보기 :

http://www.telegraph.co.uk/telegraph/multimedia/archive/01367/famous-faces-big_1367237a.jpg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찾고 있는데,
그 뒤편에는 부시가 찾지 못한 오사마 빈 라덴이 서 있다. ㅡ,.ㅡ

또, 마르크스와 레닌이 뭔가 얘기하고 있고,
스탈린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오쩌둥 옆에는 링컨 대통령이 앉아 있고
오드리 햅번은 히틀러와 함께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ㅡ.ㅡ;

푸틴 러시아 총리는 핵주먹 타이슨과 나란히 앉아 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작고한 세계적 테너 파바로티 등도 포함됐고,
삼국지의 관우를 비롯해 나폴레옹, 빌 게이츠, 이소룡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들이 중국화가인 만큼 중국 인물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쑨원, 장제스 등의 정치인은 물론
이태백과 청말 서태후, 중국의 육상선수 류샹 등
중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을 22명이나 끼워 넣었다.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개최에 큰 힘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 출신의 IOC 명예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도 그림에 포함되어 있다.


이 그림은 중국의 유명 화가 다이두두(戴都都)와 리톄즈(李鐵子), 장안쥔(張安君) 등
세 사람이 합동으로 역사상 100명의 유명인의 얼굴을
가로 6m, 세로 2.6m의 대형 화폭에 담은 유화작품이라고 한다.

이들은 유명인 100인을 그려낸 화폭의 맨 위쪽에 자신들의 자화상을 넣었고,
만리장성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의 유적과, 복제양 돌리까지 그려 넣었다.
그런데, 예수와 석가모니, 공자 등의 성인은 정확한 이미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림 속 인물로 선정되지 않았다고...


중국 언론은 "이 대작이 중국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평했는데,
그~건! 니들 생각이고~~~! ㅋ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미술 전문기자인 앨러스테어 수크(Alastair Sooke)는
"작품 내용이 이 패러디 작품의 제목에 들어간 '단테의 신곡'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그림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고 평했다.



- 2. 산치오 라파엘로 (Sanzio Raffaello)의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


연산군이 재임중이던 조선에서는
시인이자 화가인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난
1504년,

21살 약관의 청년 라파엘로(1483~1520)는
그의 스승이랄 수 있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1508년 이후
그는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바티칸 궁에 있는 4개의 방에 그렸던 프레스코 가운데 하나가
위 기사에서 말하는,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이다.

<아테네 학당>은 1510년에서 1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데,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적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로,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작품 내용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모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군상으로,
라파엘로는 그 군상 가운데 자신의 모습도 그려넣었으며
몇몇 그리스 철학자들은 당대의 예술가들을 모델로 삼아 그렸다.

가령,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클리드는 도나토 브라만테(베드로 성당의 건축가),
사색에 잠긴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 등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각 철학자들의 특성을 암시해주는 재치있는 인물 표현과
중심으로 집약되는 구도와 웅장한 배경묘사 등은
조화를 추구한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준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공간 안에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헬레니즘 정신을 담았던 모양이다.

아까운 그의 재능은 37세의 생일에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감한다.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등
총 54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유일한 여성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녀가 바로 히파티아(Hypatia)다.



- 3. 히파티아 : 플라톤의 머리, 아프로디테의 몸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른 흉노족이 다뉴브 강가에 닿고,
게르만족은 좀더 살 만한 남쪽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하던 4세기 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히파티아는
일반인들은 물론, 철학도라 하더라도 기억하는 이 드물겠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밀교적 분위기를 풍기는 숭배의 대상이다.

지성과, 품위와, 미모, 그리고 재능과 달변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여성, 히파티아...

수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녀를 고대 그리스 수학의 정수를 익힌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기억하고 있으며,
여성주의자들은
뛰어난 지성 때문에 남성들의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한 첫 여성 순교자로 경배하고 있다.
또, 한 무리의 문학가들에게 그녀는
'플라톤의 정신과 아프로디테의 몸'을 지닌 채
처참하게 살해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이름 높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
국제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인 첨단 학문의 집결지일 뿐 아니라
대립하는 종교들의 본거지여서 '종교간의 갈등'으로 스산했다.

이 무렵 당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제국은
'예수는 인간보다는 훨씬 더 신에 가깝다'는 니케아 회의의 결정을 팍팍 밀며
'못 믿는 자'들을 엄단했다.

유대인과 비기독교신자들은
힘 좀 쓰는 교회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추방되고 배척당하는 일이 잦았으나,
헬레니즘의 본산지인 만큼
철학과 자연과학의 전통으로 성령의 불길에 저항하는 지식인 또한 적지 않았다.

이들 중에 수학자 테온은 유난히도 영특한 딸 히파티아로 하여금
예술과 문학, 자연과학과 철학에 눈을 뜨게 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지식인들과 교류를 통해 지적 소양을 쌓게 했다.

또한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그에 대한 분별력까지 북돋아
어떤 신앙도 딸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히파티아는 아테네에 가서
플루타르크와 그의 딸이 운영하는 신플라톤 학파 계열의 학교에 유학하고
돌아온 뒤 처음에는
귀족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비밀 과외'를 하며 냉철한 사유법을 가르쳤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고 탁이(卓異)한 매력의 주인공이었던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마치 피타고라스 학단을 방불케 하는 정신적-학술적 공동체를 이끌었다.
제자들은 그녀를 신성한 지혜의 구현자로 숭배했고
각자의 역량과 운명을 그 지혜의 불꽃 속에서 벼렸다.

히파티아는 후기 플라톤주의의 불씨를 이어가며
철학과 종교적 신비를 일치시키는 교육으로
자신의 유현(幽玄)한 명성을 한껏 높였다.

키레네의 시네시우스 --- 시네시우스는 나중에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결정한 중요한 인물이다 --- 의 편지에 따르면,
'플라톤의 머리와 아프로디테의 몸'을 지닌 히파티아의 카리스마는 대단한 것으로서,
권력욕과 화폐욕으로 점철된 오늘날의 관료제적 아카데미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헌신과 신뢰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제자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비밀 과외' 모임이
신성한 힘으로 보전된다고 믿을 지경이었다.

또 아버지와 함께 '원추곡선의 계산법'을 추가시킨 유클리드 기하학의 개정판을 냈는데,
근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와 뉴턴 등이 새로운 과학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녀의 교본은 1천년이 넘는 세월 내내 <수학의 정석> 자리를 굳건히 지킨 셈이다.



- 4. 역사와 신화 : 허구와 실재(實在)


이런저런 이미지를 종합하면,
히파티아는 역사와 신화가 뒤엉킨 자리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의 존재다.
그렇지만 그녀의 실체를 알려줄 사료가 많지 않아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은 실상 풍문과 전설의 도움을 받아 구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히파티아 신화의 출발점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반교권 투쟁과 궤를 같이한다.
종교적 갈등과정에서 빚어진 히파티아의 희생을
당시 카톨릭의 탄압을 받는 계몽주의자들의 모습과 동일시 했다.

예컨대,
<히파티아 또는 가장 아름답고 고결하고 가장 학식이 높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여성,
그러나 흔히 성인이라는 부당한 칭호가 붙은 대주교 성 키릴루스의
자만심과 경쟁심, 잔인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성직자들에 의해 조각조각 찢긴 여성의 역사> -_-; 라는
하도 길어 한 번에 읽기도 숨찬 제목의 아일랜드 사상가 존 톨런드의 역사 에세이는
톨런드가 생각한 '위대한 이교도'의 모습으로
히파티아의 모습을 요약해 준다.

이렇게 형성된 히파티아 신화는 자가발전을 거듭해
"서구인의 상상 속에서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의 불멸성을 구현한 존재"로
히파티아의 상을 새겼다.

19세기 실증주의자들은 이파티아를
"종교에 대항하는 과학의 용감한 옹호자"로 찬양했고,
영국의 역사학자 찰스 킹슬리는 그의 책에서,
"히파티아 살해는 철학에 치명타를 가했다"며,
히파티아의 죽음과 함께 과학과 철학이 시들고
알렉산드리아의 지적인 풍토도 사라져 갔다고 했다.

심지어 20세기 철학자 버트란드 러렐조차도,
"히파티아 사후 알렉산드리아는 철학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히파티아 :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을 쓴
폴랜드의 역사학자 마리아 지엘스카(Maria Dzielska)는
히파티아에게서 허구의 거품을 걷어내고 최대한 역사적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추적한다.

지엘스카는 기존에 370년경으로 알려진 히파티아의 출생연도를
355년께로 15년 정도 올려잡음으로써,
그녀가 죽을 때(415년) 이미 예순이 다 된 노철학자였음을 밝힌다.

또 그녀(지엘스카)에 따르면,
히파티아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교도'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도였고,
히파티아 자신이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특별히 사랑하기는 했지만
그리스의 신앙까지 받아들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기독교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을까?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인 키릴로스의 선동으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베드로(Peter)라는 이름의 광적인 수도자가 대장이 되어 그 임무(?)를 감행했는데,
평소 마차를 타고 다니며 알렉산드리아 거리를 활보하던 그녀를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 납치했고,
폭행을 거듭하면서 케라레움이라는 교회까지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히파티아의 옷을 모두 벗기고
날카로운 조개껍질로 그녀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서는
산채로 불태워버렸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드니 게디의 소설 <앵무새의 정리>에 나오는 대목을 보면,

"415년의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광신도들이
길을 지나던 그녀의 마차로 달려들어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발가벗긴 채 성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칼날처럼 예리하게 깎은 굴껍데기로 그녀를 고문한 뒤
산 채로 불태워버렸다..."


역시 지엘스카에 따르면,
그것은 기독교 내부 분파 싸움이 낳은 정치적 음모의 결과였다.

히파티아는 당시 강력한 교권주의자였던 대주교 키릴루스와
좀 더 온건한 기독교도였던 알렉산드리아 행정관 오레스테스의 대결에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었다.
그러자 키릴루스파가 히파티아를 '흑마술'을 쓰는 마녀로 몰아죽였다는 것이다.

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우매한 대중들이여...


지엘스카는 히파티아의 죽음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이 종말을 고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히파티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신플라톤 철학은 더욱 꽃을 피웠다고, 지엘스카는 주장한다.


지엘스카는 어느 정도 허구를 걷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파티아의 매력까지 떨어낸 것 같지는 않다.

역사 속에 실재한 히파티아가
철학, 수학, 천문학에서 당대 어떤 학자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고,
수많은 인재들을 자신의 품에 받아들여 가르쳤으며,
"비범할 정도로 강한 성격과 불굴의 윤리적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5. ... 그리고 생리대


히파티아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그려진 것처럼,
하얀 로브(무명 망토) 차림으로 여러 학교에 출강하며 시내를 활보했는데,
절세미인이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학생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숱한 왕자와 철학자로부터 구혼을 받았으나,
"나는 진리와 결혼했노라"는 깜찍한 화법으로 모두 물리치며,
물질세계를 벗어난 인간 본성의 신적 요소, 즉 영혼을 찾으라고
이 불쌍한 영혼들을 다독였다고...


해묵은 얘기지만,
남녀간의 플라토닉한 친구 관계, 즉 '우정'을 그르치는 것이 바로 '고백'이다.
대개는 남자 쪽에서 개폼잡고 고백함으로써 남녀간의 우정은 깨어져버린다.
간혹은 우정이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남녀간의 우정에 있어서 고백은 반칙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히파티아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다마스키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만 이 매력적인 스승을 사랑하게 되었고
급기야 고백이라는 만고의 반칙(!)을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철학적 아파테이아(apatheia, 부동심)를 가르치면서
완벽한 금욕과 순결을 실천했던 스승 히파티아는
당연히 그의 사감(私感)을 환대하지 않았다.
모임 내의 수평적 결속력과 더불어 수직적 의존도가 깊어지면서
공사의 분별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마련이고,
이 경우 호감의 배치와 애정의 처리는 아킬레스의 건이다.

남녀간의 우정이나, 어떤 모임 또는 집단에서
높은 인간적 성숙 뿐 아니라
섬세하고 지속가능한 제도를 궁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혜와 영감의 스승답게 히파티아의 대답은 역시 플라토닉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한 제자에게
여성 육체의 물질성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생리대를 보여주었다.


"젊은 나의 제자여, 이것이 그대가 사랑하는 것의 본 모습이라네.
그러나 자네는 (외모가 아닌)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지.
…육체는 그림자일 뿐이라네."



아~! 멋져부러~! 히파티아!

플라톤의 머리와 아프로디테의 몸을 가진,
그러나 지성과 미모 외에,
깜찍함과 품위와 현명함을 두루 갖춘 그녀를 사랑할 밖에...



P.S.
아이비클럽, 나이키, 샤프란, 우유, 빵집, 냉장고, 아이시스(음료), KB은행 등등등등...
다~~~ 좋다.
다 사고, 다 먹고, 다 가입하고... ㅡㅡㅋ

그런데, 김연아 양!
그, 생리대 CF는 좀 안 하면 안 되겠니?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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