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문가 “가격결정 투명성 높이고 공급가 공개”
정유업계 “기업활동의 기본권 침해…영업에도 지장”
올해 들어 저유가 기조의 안정세를 유지했던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다소 상승해 50달러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50달러 수준일지라도 지난해의 어마어마한 고유가 상황에 비쳐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 국제유가는 떨어지는 반면 국내유가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정유사측에서는 원유 수입당시의 환율로 인한 국제유가 변동과의 시간차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반대쪽에서는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백용호)에서 정유·주유소업계 및 학계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휘발유가격의 비대칭성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국제유가와 국내유가의 상관관계나 현 제도의 문제점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견해와 전망이 제기됐다.
■주유소간 경쟁 치열할수록 휘발유 소매가격 하락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서울대 경제연구소 오선아 박사팀과 남재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용역 의뢰한 ‘정유산업의 경쟁 상황과 가격결정패턴’결과를 3월9일 공개했다.
이어 같은 달 12일 정유·주유소업계와 학계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휘발유가격의 비대칭성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토론자들 간에 열띤 공방을 이끌어냈다.
먼저 앞서 공개한 용역보고서에서는 국내 휘발유 도소매가격은 국제휘발유가격, 국제원유가, 원유도입가의 변동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분석기간 및 분석대상에 따라 대칭·비대칭의 모습이 관찰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주유소 휘발유 소매가격은 주변에 경쟁주유소가 많거나 무폴주유소가 많을수록, 경쟁주유소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하락한다며 이는 주유소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소매가격이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비대칭성은 ‘Rockets and Feathers’라는 표현으로 쓰이는데, 이는 원유가격이 오를 때 휘발유 가격은 로케트 발사처럼 빠르게 오르고 원유가격이 내릴 경우 휘발유 가격은 새의 깃털이 공중에서 떨어지듯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고서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했으나 현상황에 대한 시각은 각각 달랐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성은 국제원유가 등이 상승할 때 원가상승을 이유로 국내 휘발유가격도 인상되나, 국제원유가 등이 하락 했을 때는 휘발유 가격이 잘 내리지 않는 경우 가격조정의 비대칭이 있다고 지칭한다.
이 보고서의 발표 이후 열렸던 토론회에서는 서울대 경제연구소 오선아 박사가 발제자로 나섰고, 토론자로는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윤원철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시장분석실장, 이원철 대한석유협회 상무, 홍명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무,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에너지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번 토론회 전부터 국제유가하락에도 국내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정유사에 대한 가장 많은 비판 중 하나가 투명하지 않은 가격 결정방식을 얘기하며 정유사들 간에 담합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이 제기됐다.
이번 용역보고서에는 최근의 국내유가 상황이 담합이라고 결론짓지는 않았으나 과거의 사례에 대해서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이후 정유사들이 지금까지 석유제품 유통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경고이상 조치를 받은 건은 모두 21건으로, 이 중 대부분은 가격담합 등 정유사간의 공동행위가 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4개 정유사의 가격담합 건(2007년 4월12일) 2004년 4월1일~6월10일 기간 중 휘발유·등유·경유의 대리점·주유소 판매가격을 담합한 4개 정유사에 526억원의 과징금 부과 및 고발 △군납유류 입찰 담합에 대해 1901억원 과징금 부과 및 3개사 고발 등이 있다. 그 외 14건은 주로 정유사가 주유소, 대리점 등에 대해 자신의 거래상지위를 이용해 불이익을 제공한 행위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의미있는 분석” VS “폭리 여부 확인 곤란”
이날 토론회에서는 분석기간, 분석대상의 타당성 및 분석결과의 해석을 두고 발제자 및 토론자간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오선아 박사는 국내휘발유 도소매가격은 국제휘발유가격, 국제원유가격, 원유도입가의 변동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오박사는 “국내휘발유 도소매가격의 변동은 분석기간 및 분석대상에 따라 대칭·비대칭의 모습이 혼재되어 나타나며 대체로 국제휘발유가격보다는 원유도입가격에 연동된다”고 말했다.
먼저 용역보고서의 타당성에 대해 서울대 허은녕 교수는 “먼저 원유도입가를 국제휘발유가격과 함께 분석한 것은 원유도입가가 국내정유사들의 원가에 가장 가까운 수치이므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분석결과에 의할 경우 국내정유사들의 휘발유가격 결정기준이 국제제품가격 뿐만 아니라 원유도입가에도 있다”며 “다만 국내석유제품시장에서 휘발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15% 미만임을 고려할 때, 휘발유에 국한된 분석으로 정유사나 국내시장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윤원철 교수는 “비대칭성 분석결과로 정유사 등의 부당이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류부문의 가격조정(예: 국제유가변동)에 따라 하류부문(예: 국내휘발유 도소매가격) 사업자의 이익 크기가 어떠한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었다.
윤교수는 “분석결과에 따르면 국내휘발유가격은 MOPS(싱가폴국제현물시장가격)보다는 원유도입가에 연동, 이는 정유사 기존주장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협회 이원철 상무는 “휘발유소매가격의 경우 실판매가격이나 정유사판매가격의 경우 2007년 6월 이전가격은 기준가격으로서 실판매가격이 아니므로 자료가 부정확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가격비대칭성 분석은 시장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상대적 지표에 불과하며 이를 시장참여자의 불공정행위 및 폭리 존재여부 판단에 활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택시연합회 홍명호 전무는 “석유제품은 서민경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등 공공성이 강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관리가 소홀하고 높은 유가로 인해 소비자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며 근본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홍전무는 “정유사의 합리적인 이익추구와 소비자 이익증진을 위해 석유제품원가를 공개하고 석유수출입업의 등록요건을 대폭 개선해 자율경쟁체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산기대 강승진 교수는 “유가자율화 이후 국내유가 적정성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높은 국제유가에 따른 높은 국내유가가 정유사 폭리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는 정유사의 투명하지 못한 휘발유가격 결정방식에 연유한 것이므로 정유사는 휘발유 가격결정방식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용역의 책임수행자인 고려대 남재현 교수는 “정유사들이 싱가폴 현물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휘발유가격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국내휘발유가격이 싱가폴 현물시장가격 움직임과 비대칭적임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남교수는 “다만 비대칭적 움직임을 가지고 국내 정유시장구조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곤란하다”며 “비대칭성의 상대적 크기와 원인에 대한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휘발유가격 비대칭성 왜 생기나?
이날 토론회에서 국제유가의 변동과 국내유가변동의 비대칭 원인에 대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토론은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띠었다. 에경연 이문배 실장은 “가격의 비대칭성은 시장구조 뿐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탐색비용, 수요 가격탄력성, 공급측면에서의 재고관리, 회계 및 정제비용 등 많은 변수들에 의해 야기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대칭성과 시장구조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실장은 이어 “이 연구의 한계점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정유사별 실거래 가격과 원가자료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석유시장, 특히 석유제품 도매시장의 경쟁촉진을 위해서 석유제품 유통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 휘발유가격의 비대칭성은 정부의 세금 정책이 주요원인 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대 허은녕 교수는 비대칭성과 관련해 “국민이 느끼는 비대칭성의 주요 원인은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아니고 정부의 세금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허교수는 “수송용 유류에 붙는 세금은 그 양이 매우 커 국제가격의 변동이 주는 폭이 그리 크지 않고, 정부의 세금 변동에 더욱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정액세’이기 때문에 국제원유가격이나 국제제품가격이 변동하는 폭에 비해 매우 적게 움직인다. 즉 국제가격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국내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오르내린다. 따라서 국민들은 특히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 국내가격이 기대치에 비하여 적게 하락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세제의 근본적인 개편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강승진 교수는 석유제품 가격 적정성 논란에 대해 “유가 자율화 이후 국내유가의 적정성 문제는 계속 제기되어 왔다”며 “초기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후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다뤘고, 급기야는 2006년 고유가와 함께 높은 국내 석유가격이 정유사 폭리 때문이냐, 정부의 높은 세금 대문이냐 하는 논란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석유수요 감소와 공급과잉에 따른 어려운 시기에 담합 또는 폭리 의혹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하지만 국내 정유사의 정유부문 매출액 대비 마진율은 여타 제조업 대비 현저하게 낮은데도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이러한 문제는 결국 정유사의 불투명한 가격결정 및 공개 방식때문이며 정유사의 과거 할인판매 행태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기준가격에서 리터당 20원에서 100원까지 상당한 할인이 있었으며, 특히 소위 ‘덤핑물량’이 현물시장에서 리터당 100원 이상의 할인 판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할인하지 않은 제품은 고가격에 판매되므로 이는 정유사 이득으로 간다고 볼 소지가 있는 것으로, 이러한 과거의 관행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증폭시킨 측면이 있으며, 이로 인해 2007년 이후 정유사 기준가격 발표를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유사들은 생산량의 절반을 수출해 2008년 석유제품은 국내 제2위의 수출품목이되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투명하지 못한 가격결정방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불투명성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가진 그룹이 바로 정유사의 고객인 주유소들로, 주유소 입장에서 볼 때 치열한 소매부문 경쟁으로 인해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수익과 바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정유사의 주유소 판매 가격은 천차만별이며 심지어 사후에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주유소 입장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며 “고유가와 정유사 폭리 논란을 잠제우기 위해서는 정유사의 주유소 판매가격 결정방식을 투명하게 하고 차등 할인 폭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석유협회 이원철 상무는 정유사 세전가격과 국제유가와의 연계성과 관련해 “가격 비대칭성 분석은 시장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상대적 지표에 불과하며, 비대칭성이 시장 참여자의 불공정행위 및 폭리 등을 판단하는 기준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이번 연구용역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또한 국내 세전 소비자가격도 OECD국가와 비교해보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정유사 및 주유소 등 석유사업자간의 경쟁상황이 높은 수준임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부 “판매가격 공개” vs 정유사 “기업활동 침해”
국내유가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방관만 한다고 지적받았던 정부가 최근 다시금 칼을 빼들었다. 3월23일 지식경제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유사별 석유제품 판매가격 공개를 규정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최근 입안 예고했다.
이번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이르면 5월 중에 시행될 전망이다. 이 경우 현재 정유 4사의 공급가격을 합쳐 평균한 판매가격을 1주일 단위로 공개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정유 4사가 개별적으로 주간·월간 단위로 각 주유소에 공급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판매가격을 공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당장 드러내놓고 반발하지는 않지만 일부는 “공공연히 기업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뜻은 기업활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유업계는 공급가격 실명공개가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 여러 가지 부작용과 오해를 불러일으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유업계는 일정 기간별로 최고 판매가격과 최저 판매가격 등 2개의 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부는 이제 5월이 되면 정유 4사의 석유제품 판매가격을 공개하게 하도록 정유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용역보고서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도 연구에 사용된 통계의 기준 자체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일치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정확하지 않은 통계를 기준으로 한 보고서라 이로 인한 결과를 도출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또한 이번 용역 자체가 고유가에 대한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제기되는 등 잡음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국제유가와 국내유가의 반비례 상황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대한 대책은 계속해서 요구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여론은 정유업계가 비판의 펀치를 맞고 있지만 중립적인 입장의 한 전문가는 “정유업계의 가격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국내유가의 상승을 전부 정유업계의 탓처럼 내모는 모습 또한 옳지 않다”며 “비판의 우선순위는 정유업계가 아닌 정부로, 에너지세제의 근본적인 개편도 없이 이런 논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http://www.e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