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2월말의 제8코스길 제주하야트호텔 아래쪽,꽃들이 만발하여 올레꾼에게 미소를 준다.
어려서 보았던 장독대의 눈이 지금, 산 위의 우리 집 마당에도 소복이 쌓였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춥고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서울 살이 서른 한해를 넘겼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긴 머리의 아리따운 서울 아가씨였던 당신을 만나 혼배(婚配)를 올린 지 삼십년이 되었군요.
나에게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자랑할 거라고는 하나 없던 나에게, 한평생을 꿈으로만 여기려 내려놓으신 당신을 생각하니 이제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주변을 보지 않고 서로 얼굴만 보며 살던 철없던 신혼 때에는 좋은 옷 한 벌 사주지 못했고 앞만 보며 달렸던 젊은 시절엔 당신과 함께 '바이칼'호를 여행하자 약속하고 혼자만 여행을 했습니다. 어느새 멀리 와버린 지금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얼굴만 굳어버린 망부석이 된 느낌입니다.
둘째인 '안나'까지 시집을 보내고 서둘러 서울을 빠져나와 서귀포에서 두 달 동안 일할 때
당신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나에게 내려와 9일간의 여행을 했지요.
고생으로 얼룩진 당신의 손이 서귀포에 와서 가장 길고 편안한 휴식을 취했을 겁니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행복한 마음을 나에게 보여줬을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 서울 은평구 쪽에는 집에 심어놓은 과일나무에 벌과 나비가 사라져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해 '부암동'집 울타리의 넝쿨장미가 늦가을 까지 가지도 못하고 초여름에 이미 말라 죽었지요. 주변 집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서귀포 연안의 12월 겨울 '올레길'1)은 과거에 경험한 여름 제주여행보다 오히려 풍성한 자연환경을 관찰하며 즐길 수 있었지요.
집주변에 가장 많이 보이는 주황색 밀감 과수원, 손녀의 빨간 입술처럼 예쁜 열매를 이고있는 '먼나무', 레몬보다 예쁘고 세배쯤 큰 하귤(夏橘)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줍니다. 그리고 길쌈을 하지 않아도 눈과 비바람이 못살게 굴어도 보라색 혹은 노란색의 유채꽃들이 '올레꾼'2)들을 반기어주지요. 또 길 돌 틈에 예쁜 분홍의 제주채송화, 중문에 동백꽃군락, 천년이가도 당신처럼 변치 않는 '곶자왈'3)을 보았습니다. 아니 그 겨울에도 푸른 숲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당신은 올레길 중 '외돌개'에서 시작하여 월평포구까지의 제7코스를 가장 아름답다 하셨지요.
나는 그곳 남향받이 올레길 돌담 앞에 피어있는 겨울장미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큰 당신의 사랑을 알지 못했고
더 큰 꿈을 잃지 않으려 이기적인 나만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직 젊다 했는데 벌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손녀가 둘이 되었네요.
꽃길
가시밭길
이제는 그 많이 쌓인 눈길에
찬바람 까지 몰아치는
바람 길을 걷고 있네요.
아직 버리지 못하고 사는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려서일까요.
그래도 내 곁에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은 어려울 때일수록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남에게 자랑삼아 입을 열었지요. 당신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부족한 남편에게 끝까지 인정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 등 뒤에서 30년 동안 시들지 않는 장미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을 보라(마태오 6,26)'
이 성서 말씀을 다시 찾아 귀로 새깁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가는 당신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제는 제가 당신을 위하여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꽃을 준비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S021910RODKK
1)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구불 어진 돌담길을 말함.
2) 올레길이 좋아서 걷는 사람들.
3)사철 푸른 숲으로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들 로 이루어져 인적이 드물어 나무들이자라고 이끼가 무성하며 콩난
자생하여 천혜의 자연의 보고로 북아열대에 특별히 볼 수 있고 학자에 따라 다르나 '곶자왈' 이 '세계 환경올
림픽'을 유치하는데 그 역할을 했다는 뒷얘기 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