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2 Days in paris - 2007)
/ 감독 : 줄리 델피
아무런 기대 없이 선택한 영화. 이유 없이 좋은 배우 줄리델피의 작품이라기에 재생버튼을 눌렀다.
인형같이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매력만큼은 어떤 배우 못지 않은 이 여인이 얼마나 잘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
괜한 시기와 질투가 날 만큼 마냥 끌리는 배우. 아니, 이제 감독이라고 해야 하나?
존 그레이의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시리즈가 유행했을 무렵에도 난 관련 서적에 눈도 두지 않았다.
지금 만나는 이성이든 예전 만났던 이성이든 묘하게도 이성과는 동성과 다른 마찰이 있다.
다른 별에서 온 걸로 서로간의 답답함을 이해할 수 없다.
은하계 자체가 다르다. 이도 역시 별 세상이니 크게 다를 것 없나?
어찌됐든 뉴욕 남자, 파리 여자라는 제목은 화성.금성 시리즈에 시큰둥했던 내겐 점수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원제인 '파리에서의 이틀'이 더 끌릴 뻔 했다.
최소한 파리에서 뭐!..라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까.
하긴 난 시시한 것에 오히려 끌리는 편이라 설득력이 없는 건 잘 알고 있다.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라고!
뉴욕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는 매리온(줄리델피)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잭(애덤 골드버그)은 사귄지 2년된 커플이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면 안다고 할 수있는 중고 커플.
아직 둘 다 결혼 생각은 없다.
아이를 싫어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35살 동갑내기며, 일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도 같다.
한 집에 살면서 커다란 불편은 없었고 함께라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진 한 쌍이다.
이번 여행은 매리온이 제안했다. 1년에 한 번 가족이 있는 파리에 다니러 오는 김에 잭과의 여행을 계획한 것.
바로 파리로 오긴 그렇다. 이웃 나라 이탈리아 베니스를 관광한 후 마지막 여정이 파리.
뉴욕에서부터 함께 온 고양이 장 뤽은 파리 집에 먼저 보냈다.
단 둘의 여행에 방해가 될까 싶어...
특별한 무엇을 기대한 매리온의 베니스 여행은 실망이 컸다.
전업이라도 하려는지 매리온의 사진기를 들고 촬영에만 열중하는 잭.
연인과의 여행이 맞나 싶을 만큼 로맨스는 없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피곤하다고 징징대기만 한다.
영화 초반부터 둘의 쟁쟁거리는 대화는 차라리 소음이다.
둘이 연인인지 떼쟁이 아들과 잔소리쟁이 엄마인지.
'대중교통은 테러 위험이 있어 안된다', '파리는 괜찮다. 지하철을 타자', '택시를 타야한다',
'택시는 잡기가 힘들다','좀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 '피곤하다고 하니까 그렇다'....
둘의 쓸 데 없는 대화로 인한 체력 소모전에 영화 보기를 포기할까 했다.
그래도 조금만 참아 볼까...했던 건 순전히 줄리 아줌마 때문이었으니...
.........둘만의 여행에 대한 기대.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뭔가 더 기분 좋을 것 같고, 좋은 일만 있을 것 같고.
함께 바라보는 지평선은 금은보화가 발하는 빛보다 더욱 아름다울 거라고 기대한다.
막상 가면 가는 길 운전에 지친 남친 달래다가 나도 짜증이 나 화를 버럭 내고.
술 한 잔으로 달래다가 술 김에 대판 싸우고.
나이가 드니 이젠 그것마저 귀찮아져 어디 가고 싶으면 가까운 데로 가자고 먼저 제안한다.
만난지 한 해가 지나고 둘 셋 넷... 서로 곁에 있는 게 당연해 진 어느 때부터 우리도 매리온&잭과 같아졌다.........
영화의 재미는 파리에 도착한 후 마구 터진다. 공항에 도착해 둘이 징얼대는 장면 단 5~7분만 참으면 될 걸 꺼버리려고 했으니...
-잭: "너, 그렇고 그런 여자였어?"
매리온의 가족이 참 엽기다.
잭은 이를 프랑스 문화라고 치부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유분방하다.
성(性)에 대해 답답하리 만치 꽉 막힌 것도 문제지만 처음 보는 딸의 남친에게 대놓고 말하는 건 조금 그렇다.
잭이 불어에 잼병이라 다행이다 싶을 만큼 희한한 부모와 대면한다.
음식도 영 입에 맞지 않는다.
어린 새끼 돼지의 속을 가르는 걸 보고 입 맛을 다시질 않나, 토끼는 머리가 맛있다며 덥석 베어 물질 않나.
예술이랍시고 그려 놓은 그림들은 온통 성행위 장면들이다.
예술과 외설 사이를 넘나드는 이 아버지와 짐 모리슨과의 잠자리를 추억하며
아무렇지 않게 딸의 남친에게 과거사를 털어 놓는 어머니.
문득 매리온이 수상해진다.
뉴욕에서 본 내 여자가 맞나 싶다.
나체로 손에 풍선을 든 잭의 사진을 온 가족이 돌려 봤단다.
둘만의 은밀한 사진이 될 거라 생각했다. 오해였나?
이 사건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하나씩 터진다.
다름아닌 내 여자의 남자들과의 원치 않는 만남.
갑자기 이 여자의 과거가 궁금하다.
나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만나봤겠지 싶지만 웬지 도를 넘은 것 같다.
신경쓰지 않는 척하지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게다가 매리온의 책장에 꽂혀 있던 성경책 사이에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풍선 사진?
같은 포즈로 찍힌 사진.
이 여자는 만나는 남자마다 벗겨 놓고 손에 풍선을 들리는 건가?
도대체 만난 남자는 몇이나 되는 걸까?
-잭: '더 많은 과거가 있을 거야. 프랑스 여자잖아.'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좁은 세상 이론이 매리온에게는 남자 관계로 풀이된다.
온 세상 남자들이 얽히고 설켜 다 만나고 오는....
아는 남자는 왜 그리 많은 건지 열 아홉에 만났다는 첫 남자부터 7년 전 남자, 한 두어 달 그냥 만난 남자.
만난 건 아니고 알고 지낸 남자...
잊고 있었던 사실, 이 여자는 프랑스 여자.
매리온의 친구들과의 파티는 잭에게 악몽이다.
그녀의 숱한 전 남친들과의 원치 않은 만남.
-매리온: "네가 첫 남자이길 기대했던 건 아니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너인데, 과거가 무슨 문제야.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과거를 모두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와의 사이만 벌려 놓을 뿐이다.
그래서 그냥 아는 남자, 혹은 살짝 같이 잤던 사이..라고 둘러댔다.
잭이 불같이 화를 낸다.
쏟아지는 짜증과 불만의 요지는 "I can't believe u anymore!!", "I don't know u"...
35살이다. 이 남자를 만난 건 매리온이 살아온 서른다섯 해에서 겨우 이년 남짓.
도대체 뭘 바라는 건가.
믿어달라고만 말했다.
-여자는 남자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 친다.
그게 숱한 연애로 얻은 이별에 덜 상처 받는 법이다.
화를 삭일 줄 모르는 잭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 할 것 같다.
이별의 상처는 늘 더디게 아문다. 치유를 위해 아무나 만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진정한 사랑이 또
나타나긴 한다. 그런데 그 시간 또 한 번 겪자니 겁이 덜컥 난다.
하지만 헤어지자고 말해야 할 때다.
함께 여행을 오지 말았어야 했다.
파리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관람하며 둘이 부둥켜 안고 춤 추길 기대했고,
새로운 곳에 처음 온 만큼 첫 만남 때 가졌던 약간의 설레임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다.
더이상 금 갈 곳도 없다.
'끝내자!'고 먼저 말하고 찾아온 곳은 예전 잠깐 만난 남자.
답답함이 좀 풀릴까 싶었는데 작품이라고 만들어 놓은 마네킹을 들이밀고 같은 체위를 요구한다.
뭐하자는 건지 왜 이 곳에 온 건지. 눈물만 난다.
-사랑은 상대만 바뀔 뿐 그 과정은 다르지 않아. 새로운 사랑을 만들기에 우린 너무 지친 것 같아.
젊은 시절 불 같이 사랑하고 깨어지면 그만이라는 사고 방식이 이젠 힘들 때다.
세상 남자들 크게 다를 것 없고 여자 역시 그렇다.
서로 사랑한다면 누구든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면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고 체력이 소모된다.
몇 번의 사랑을 겪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쳇바퀴 그림은 쌓여만 간다.
매리온과 잭은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다.
다시 서로의 손을 잡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