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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된 그녀를 기다리며........

OFF된 그녀를 기다리며........


  항상 그녀는 OFF 상태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대화를 회피하고 있을 것일까? 거리와 시간이 멀어질수록 사람의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이제는 내가 잡아당기기에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질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녀의 사랑은 일회용 컵라면 그릇과 같은 것이니까.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은, 오로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붕괴된 나의 기억을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그 기억은 상처가 될 수 있고, 사소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기억이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약간 지치긴 했지만, 그 기억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참아야 한다. 이미 칼자루는 그녀에게 있으니까. 나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자칫 조급하게 서둘렀다가는 영원히 나의 기억은 복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기억을 더듬거리며,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조심스럽게 조립해 본다. 분명히 그녀는 나를 통해 무엇인가 얻으려고 했고, 나도 그녀를 통해 무엇인가 얻으려고 했다. 절실한 그 무엇을 얻으려고 서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상처가 깊었고, 나는 조급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나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고 했다. 나는 상처보다 그 무엇이 더 절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무엇’을 갖고 나를 떠났다. 본의 아니게 나의 조급증은 그녀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인터넷 대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먼저 대화신청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다시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렵기 보다는, 그녀가 ‘그 무엇’을 갖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더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은 매우 잔인하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그 무엇’을 위해 생존과 실존하고 있었다. ‘그 무엇’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녀의 노예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어차피 ‘그 무엇’이 없는 ‘나’란 존재는 가치가 없으니까. 당시 나는 손해를 볼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 무척 괴롭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그 무엇’을 나에게 던져놓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나의 기억이 복구되고, 새로운 ‘그 무엇’을 찾아 나설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자꾸만 나는 다른 ‘그 무엇’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나도 편히 쉬고 싶다. 상처를 받아서 ‘그 무엇’을 얻고, 기억만 되살릴 수 있다면 상처를 받고 싶다. 상처를 받지 않아서 상처가 더 깊어진다. 보이는 상처라면 치료하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료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시간의 여유가 없다. 항상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부족하다. 너무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만 한다. 하얀 목련꽃이 피어나려면, 꽃샘추위를 몇 번은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추위를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나의 기억을 복구할 수 없고, 나의 생존과 실존의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4월의 하얀 목련꽃이 피어나고, 5월의 라일락 향기가 짙어지면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분명히 봄인데도 아직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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