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진데요. 음....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어요.
일단은 사실 그 자체로만 말씀드리면요,
저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고있어요. 그 날 제가 과로때문에
응급실에 가려고 색색거리면서 서있었던 상태였구요, 이 할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하셔서 알딸딸한 상태로 저에게 길을 물었어요.
"학생, 내가 여기를 잘 모르는데, 여기가 중앙역 맞아요? 이제 내리면 되요?"
"아니요, 여기는 한대앞이구요. 한 정거장만 더 가서 내리시면 되세요."
"그래요? 아...내가 잘 몰라서. 고마워요."
그런다음에 보통 그냥 자기 갈길을 가잖아요. 저 역시도 너무 머리도 울리고
토할 것 같아서 눈이 풀린 채로 지하철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에게 말을 거시는거에요. 그런데 그런 경우는 꽤나 빈번했거든요.
제가 어른들이 좋아하는 맏며느리감 얼굴이라니 뭐니 해서 -_- 워낙에 다들 잘해주시기도하고 그래서 그런 대화역시 그냥 넘기려고 했어요. 말투가 사근사근하다느니 내 아들 소개시켜주고싶다느니 하면서 말씀하시길래 네 하하 네 그러세요 하면서 넘겼거든요.
그러면서 중앙역 카드 찍고 내려오는 내내 자기 자랑 하나 해도 될까 하시는거에요.
"내가 말이야, 대학은 어디나왔게! 나 엄청 좋은데 나왔어!"
"어디 나오셨는데요?"
"서울대야 서울대 기가막히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야"
"오..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나 대학원도 나오고 박사학위도 땄어. 그건 또 어딘지 맞춰봐."
"어디실까요?"
"대학원은 카이스트고~박사학위는 메사추세츠공대야~짱이지! 영어도 잘해!"
하면서 영어를 쏼라쏼라 하시더라고요. 보통 영어권에서 하는 농담따먹기 식의
그런 말이었는데 여하튼 -_- 진심 잘하시긴 했어요. 본토발음이기신 했는데....
그게 뭐 저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대단한 할아버지인가보다 했지요. 물론 웃으면서
속으로 'MIT까지 나온 할아버지가 왜 여기있는건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 제 눈빛을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내가 여기...음...서울대 동문 모임이 있어서! 서울 왔다가!! 안산 오피스텔로 왔는데....
길을 모르겠어...그래서 ㅇㅇㅇ 가 어디있는거야?"
"이건 이쪽 아파트 건너서 가시면 나와요. 여기 좋은덴데, 와, 진짜 대단하신가봐요."
"응 나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ㅋㅋ 근데 너 좀 아파보인다. 몸이 건강하지 않나?"
"아...원랜 건강한데...오늘 몸살이 좀 있어서..."
"그래? 가시나가 왜 이렇게 기침하나 했어! 약 사줄게 일로와봐 ㅋㅋ" 하고
가자는거에요. 그래서 "아니요 아니요, 저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려고 해서 괜찮아요."
한다음에 거절했지요. 그랬더니 "네가 그렇게 건강하지 못하면 내가 아들에게 소개를 시켜줄수가 없잖아, 내 아들은 아틀란타에 있고 유학하고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나서는 저한테 대학은 어디다니고, 몇 살이고, 아버지는 건강하시고, 형제는 몇이고....막 물어보시더라고요. 며느리 삼고 싶다 어쩌고 말씀하시면서요.
이미 그 때부터 저는 너무 돌아버릴것 같아서 으아 제발 날 좀 보내줘 네 옷에다가 토할지도 몰라 슈발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더니
"나한테 꼭 연락해라잉, 나 진짜 사람 볼 줄 알거든? 너 마음에 든다잉. 아버지 술 잘드시나? 그럼 나하고 술 친구하자고 해~~"
"아...예에...예..."
"진짜야. 나 이런 사람이거든? 인터넷에 내 이름 치면 딱 하니 나오니까 니 의심할 거 없을끼다 ㅋㅋㅋ 문자하거나 연락하면 내가 니 전화는 꼭 받아두라고 할께~"
하면서 명함을 주셨거든요. -_-
뭐 공학박사니 회장이니 어쩌고 써있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음 그렇구나 하고
"저 이제 버스타야되요. 할아버지, 살펴가세요." 하고 돌아서는데
"버스 타는거 보고 가야지, 우리 아가 버스타는거 보고갈기다." 하더니
버스 타고 앉기 까지 계속 밖에서 손 흔들어주면서 "건강해라~꼭 전화해라~"
하시는거에요.
그래서 우웅...좀 감동이네....하고 병원으로 직행해서 주사맞고 집에 돌아와서
자려고 누웠더나 혹시나해서 인터넷에 이것저것 정보를 쳐봤어요.
음.......
사실 제가 고민하는건 바로 이 부분이에요.
서울대 - 카이스트- MIT 사실이구요.
이름만 대도 우리나라 대부분이 아는 D그룹 부사장 하시다가 지금 또 다른 회사
회장으로 나오신거 맞아요. 사진까지 확인했구요. -_-
정보가 확실하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냥 사실 좀 그래요. 세상이 원체 무섭기도 하고
도대체 쥐뿔도 없는 저를 만나려고 하시는건데요.
사실 제가 문자를 보내긴 했어요. -_-;;;
혹시나 하는 맘에 -_-;;;;; 에이 뭐 어때...하고
그냥 건강하시냐고...
저 기억하시냐고 -_-;;;;; 근데 기억하신다고....흐엉....
사실 동생한테 이야기한번 했다가 동생이랑 가족들이 죄다 이 사실을 알아서
가족들은 한번 만나보라고, 그래도 이게 인연 아니겠냐고 하는데....
왜 자꾸 언니는 기회를 차냐고 ㅜ ㅜ
사실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긴 했어요 ㅜ ㅜ 제가 어떻게 길에서 만난 남자가
있었는데 뭐 하나 주워주다가 같이 밥먹고 그랬거든요 ㅜ ㅜ
근데 난 뭐 ㅜ ㅜ 그 때 그냥 고딩이고 하니까....대딩은 부담스럽고...
근데도 그쪽에서 계속 연락하고 대학생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잘해보자고
다 그랬었는데 ㅜ ㅜ 나는 그냥 껄끄럽고 그래서...그냥 거절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ㅜ ㅜ 국회의원 아들이더라고요 ㅜ ㅜ
그런 일들이 좀 비일비재해서 가족들이 저는 굴러들어온 복들을 발로 차는 여자라고
ㅜ ㅜ 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뭐, 어차피 좋은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텐데 ㅜ ㅜ
정말 쥐뿔도 없는 저 같은 서민중에 극서민여대딩을 뭐가 아쉬워서 저 회장님이 계속 만나자고 할까요 ㅜ ㅜ
그런데도 계속 가족들이 한번 만나보라고 하니까....어떻게 해야 할지모르겠어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것도 사실 그래요, 혹시나 좋은 인연일까 해서
두근두근 하는 맘에 쓰는거잖아요. 인정해요. 하지만 가족들의 말만 듣기에는
너무 불안해서요. 혹시나 이런 상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었는데
나쁜 일로 번졌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나 알아보려고요.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