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대를 막 전역한 23살의 남성입니다..
공기좋고.. 배경좋고.. 그림같은곳에서 살고있죠..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차받고 살던 지나버린 저의 23년을 이야기해보려합니다..
저는 2남 3년중에 막내로 태어나. 저를 낳으실때 부모님의 연세는 43세 이셨습니다..
적지 않으신 연세로도 저를 낳으셨기에.. 부모님께서의 고생이 크셨을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정성에 맞지않게.. 태어날때부터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의 연배가 많으셨기때문에 당연한것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나이와 비슷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당시에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나셨을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극소수 가정형편상. 기타 이유로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도있죠..
저는 그중 가난에의해서 병원 조차 갈수없어서.. 할머님께서 저를 받으셨다고합니다..
저는 그렇게 할머님손에서 첫 세상의 빛을 본셈이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는 바로 방바닥에 버려졌다고합니다..
바로 .. 남들과는 많이 달라서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에나오자마자 바닥에 버려질만큼 보기가 흉했다고합니다..
지금뿐만아니라 늘 어머니께서 이 이야기를 말씀해주시곤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병원에서 수술을했다면 남들과는 다르지 않았을텐데.."
"그땐 쌀밥먹기도 힘들었지.. 집도 뭐도 없어서 매일 싸돌아 다니기만했어.."
"너 100일도 안되였는데. 그나마 살고있던 집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아.. 그 추운 겨울에..어디서 살라고.."
"물도 마음대로 못쓰게하지. 전기도 저녁되면 딱 꺼버리고.. 옛날일만생각하면.."
항상 그렇게 저에대해 미안해하시며 죄책감을 느끼고 사시는거같습니다..
하지만 예전엔 몰랏죠.. 지금보다 더 성숙하지못한.. 어린아이였으니깐요..
기억하지못하는 어린시절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추억이란 보물상자에.. 6살때 쯤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제 나이때 여러분들께서는 다들 유치원의 기억과 그 증거가 조금씩은 남아있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유치원에 유자도 구경을 해보지 못했죠..
늘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논에서 뒹굴며 자고. 일손을 돕곤 했습니다.
그러다 동네에서 친구로 지내던 녀석이 노오란 모자와함께 노오란 옷을입고 저멀리서 걸어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평소라면 같이놀자며 웃으며 뛰어갔을텐데.. 저는 벼짚뒤로 몸을 숨겨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워서 였을까요..? 부러워서 였을까요..
그때 분명 알고있었습니다.. 유치원이라는곳을.. 알고있었을껍니다..
그 친구녀석의 모습이 멀어지자.. 너는 벼짚뒤에서 나와 한없이 그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때의 다른 추억은 남아있지않았습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입학하는 날 이였던거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손잡고.. 자기 몸보다 더큰 가방을 매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무실에 어머니와함께 갔죠..
단지.. 제가 유치원을 나오지않아.. 다른 아이들을 따라올수있을까..? 라는 의문으로 테스트를 보기위해서였죠..
테스트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가나다라와..색을 마추는것이였죠..
그때 저희 어머니의 모습은.. 비가오기전의 하늘처럼.. 우울해 보이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렵다면 어렵게.. 쉽다면 쉽게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모습인 저에게 그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죠..
아!! 말은 걸어주었습니다..
"넌 왜 그렇게 생겼니.?"
"으아.. 징그러.. 가까이오지마.."
저는 흔히말하는 애들의 놀림감이였고.. 왕따였던 샘이죠..
심심하면 때리고.. 심심하면 부려먹던..
그렇게 5년이흘러..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일까요..?
매일 맞고 놀림만 받던 제가 문뜩 이런생각을 하게되였지요..
"나도 저아이들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고. 웃을줄도알고.. 울줄도아는데.. 내가 왜 놀림을받고.. 맞아야하지..?"
그때 부터 였을까요.. 저는 저를 놀리고 때리던 아이들에게 응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놀리면 다시는 놀리지못하도록 작은 주먹으로 얼굴을 공격하였죠..
저를 때리면 제가 맞아 죽는한이있어도. 이악물고 같이 때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루가 멀다하게 싸움질만 하고다녔죠..
하지만 선생님들은 모두 제 잘못이라며 저를 꾸중하시곤 하셨죠..
"아.. 남들과 다르기때문에 모든것은 내 잘못이구나.."
운동회때도 .. 별 다른건없었습니다. 전 혼자였으니깐요..
다르다면.. 다른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라는거..?
다른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부모님과 손잡고 밥먹으로갈때 저는 물로 배를 채웠다는거..?
가난이 그 누구의 죄일까요..?
제가 23년간 지켜본 저희 부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부지런히 사신 분들입니다..
하지만..그건 지금의 생각이죠..
그때는 왜 이런생각을 하지못했나 후회가됩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혼자 살았습니다..
집을 나왔다고 하기엔 .. 좀.. 이상한 면이있지만 ..
문뜩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누나들과 저는 성이 달랐던겁니다..
저와는 다르게 큰누님은 박씨.. 작은누님은 김씨였던겁니다..
물론 큰누님 작은누님 막내누님 형님 .. 그리고 저는 다 성이달랐습니다..
나중에야 알게되였지만.. 그 가난하던시절.. 다 잘먹이고싶은마음에.. 입양식으로 다른집에 보내어지게된거였던겁니다..
그땐 몰랐죠.. 저는 부모님께서 두 누님을 버린줄알았습니다..
저는 다른사람과 다르기때문에 저도 버림받을꺼라 생각했었나봅니다..
그렇게 저는.. 혼자살게되였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을하고.. 학교끝나고 광고 전단지를 돌리며..
하지만 그역시 남들과 다른 저의 모습에 시켜주는 사람이 거희 드물었습니다..
하루에 한끼 먹기도 힘들었죠..
그리고 저는 공고에 진학하게되였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공고는 꼴통이다.. 문제 아이만 가는곳이다..
뭐..맞는 말이죠.. 공부를 썩 잘하는편도아니였고.. 다른사람과는 다른 저는 분명 문제가있긴하니깐요..
급식비가 없어서 점심을 굶던 어느날.. 한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식당일을 도와주면 하루 세끼를 먹을수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잘곳없어 학교에서 자던 몸.. 저는 몇번이고 감사하다며 그렇게 식당에서 일을하게되였죠.
물론.. 돈을주는건아니지만.. 그땐 그냥 먹는게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지나 가면서 .. 돈이 필요하게되더군요..
저는 그 아주머니의 성의를 뒤로한체 그만둘수밖에없었죠..
그리고 학교도 빠지는날이많았죠..
노가다라고.. 막노동 공사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나르던 일을했죠..
연신 일을하고 저는 다시 학교로 들어가 교실에서 자고있었죠..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순간.. 실습을 담당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그 늦은 저녁에 제가 자고있던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자는건 안되는일이기에.. 저는 "다신 여기서 자지않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를 연신 내 뱉던
그순간.. 선생님께서는 따스한 손으로 제 머리를 스다듬으시면서..
"너 혹시 기능생 해보지않을래.?"라고 저에게 말을 꺼내셨습니다..
기능생이 무엇인지몰랐습니다.
추후 알게된 사실이지만. 영제교육같은거로 특정 한기술을 가르키고 연습해서 대회나가는 그런 것이였습니다.
남들은 저를보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하나로. 제가 아무리 일을열심히하고. 저 사람보다 잘해도.
욕을하고 쫒아내고 . 그 누구도 받아주지않던 나에게..
그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셨습니다..
처음이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수없었죠..
저는 처음으로 사람에게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기능생이 되였죠..
물론 학교에서는 결석으로 잡히지않죠.. 기능생은 따로 공부하는 장소가있기때문이죠..
뭐.. 차디찬 쇠덩어리들과 번질번질. 기름들이 온 사방을 더럽히고있었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그렇게 그선생님께서는 기술도 공부할꼄 공장 한곳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낮에는 거기서 일을하고.. 새벽에 기능생공부하는곳으로가서 잠을자곤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흘러 고2때.. 저는 기능대회에서 금매달을 따게되였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1년 빠르게 사회에 첫 발을 걸어 나갔죠..
그 누구나가 저를 장애인이라고 할때.. 그 선생님 만은 저를 믿어주셨던겁니다..
저는 18살의 나이로 한 직장의 직원이 되였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부터 온갖 힘든일뿐이였지만 한달월급은 7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나같은 놈에게 일을 시켜주다니.. 늘 감사해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정직원이 되였습니다.. 한달에 250만원씩 받으며.. 저만의 전용기계를 가질수있게되였죠..
그리고 저의 나이 21살되던해.. 각종 공업고등학교에서 취업나온 사람들이 한명두명 군대를 가게되었다며.
죽을듯이 술을먹는 모습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 역시.. 나라에서까지도 버린모양입니다..
분명 저는 다른사람과 다릅니다. 그렇다고해서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살며 숨쉬고 먹고 자고 . 같은 생활을하고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기싫어도 가는데 저는 못간다는 이유로 그다음날 바로 병무청에 갔습니다.
광주에서 택스를타고 이리저리 다니다 겨우 도착했죠.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7급.. 제신검이 나왔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이놈의 장애.. 장애.. 장애..
저는 신체검사를 담당하던 한 장병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하면 군대를갈수있나요..?"
"장애가 되는 무언가를 손보신후에 꼭 가고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면 갈수있습니다. "
저는 그날 돌아와 회사 사장님께 사정을이야기하고 일을그만 두었습니다.
목표는 군대였습니다.
저는 다음달 다시 신검을받고.. 1급이 나오게되였습니다.
가고싶은곳은 강원도 끝에있는 철원의 한 수색중대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군대에 가게되였습니다..
군대를 가고 신병훈련소에서 저는 문뜩 이런생각을하게되였습니다..
사회가무서워 여기로 도망오고싶었던건아닐까..?
여기라면.. 편차없는 서로 평등한곳..?
하지만 제 예상과 생각은 자대를 배치받으면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죠..
군대는 사회보다더 편차가 씸한곳이였습니다.
장애.. 장애.. 장애.. 늘 꼬리처럼 달려있던 그것은.. 여기마져 저를 혼자로 만들었습니다..
죽고싶었죠.. 죽이고싶었죠..
하지만 저는 그만큼의 용기조차없는.. 검쟁이였나봅니다..
사회에서도 버림받고.. 외톨이였고..
군대안에서도.. 저는 늘혼자였습니다..
지금 저녁한지 얼마안되였습니다..
이렇게 약 8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어느세.. 저희 부모님께서는 알아볼수없을만큼 쇄약해지셨고.. 주름도 많아지셨습니다..
눈물이나서.. 처음으로.. 저는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혼자입니다..
일을하려고 이리저리 다녀보았지만.. 열심히할수있는데..
잘할수있는데.. 단지 다른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저는 거부를 당하고있습니다..
물론 사람이라는게 .. 처음에는 서로에대해서 아는게없기때문에 첫인상으로 모든것이 판명됩니다.
한마디로 잘생기면 이익이라는겁니다..
사람이 정해서 태어날수있다면 그 누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겠습니다..
하지만 늘 웃고 사려고합니다.. 가끔은 화가나고 불만이생겨도..웃을려고합니다..
사람이 웃는이유는 즐겁고 행복해서가아니라.. 행복하기위해 웃는다고합니다..
웃을수있는 여러분은 아직 행복하실수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자신이 행복해야.. 남들에게도 행복을 줄수있습니다..
아직 저는 잘모르겠습니다..
아직 많이 어립니다.. 물론.. 아는것도없습니다..
살면서..알아가겠죠..?
취업이 안된다고 .. 성적이떨어진다고..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정 불행하다면 자기자신이 불행한지도 모르는게 정답아닐까요..?
저는 믿고싶고.. 믿고있습니다..
부쩍 자살이 많아지고.. 안좋은 생각하시는분들도많아지고..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함께 웃으며 밝은 세상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웃을수있기에 당신은 행복한 사람인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