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229번째 이야기 : <세계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 BEST 20 ! (10위~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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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위. 틱 콴 독 분신자살사건 (1963년)
1963년 6월 11일, 남베트남 초대 대통령 정권에 대한 항의로 미 대사관 앞에서 분신자살사건이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베트남의 승려 티크 콴 독, 이미 동영상으로도 유투브에 올라왔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접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이 모습을 목격한 뉴욕타임즈 데이빗 핼버스탬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볼길이 몸에서 타오르고, 몸은 점점 쪼그라 들어갔다.
주위에는 피부가 타는 냄새로 진동하였고 뒤에서 베트남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불타가는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한마디의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 9위. 떨어지는 사나이 (2001년)
2001년 9월 11일,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던 그 날, 한 사진작가에 의해 촬영된 사진입니다.
리차드 드류가 쌍둥이 빌딩에서 떨어지는 남성을 찍은 이 사진은
신문에 한 번 게재되었으나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남성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4가족에게 확인을 했으나 1가족은 다른 사람으로 확인되었고
2가족은 확인을 거부, 나머지 한 가족은 이 남성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 8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6년)
피해금액 2,000억 달러, 우크라이나 국토의 50% 오염, 20만명의 인구 피난...
여기서 끝난 것만이 아니라 원상복구비용 2,000억 달러, 관련사망자 12만명..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과 관리체계의 문제로 일어난 체르노빌은
이 사고로 유령도시로 변했고 정상적인 생활은 900년 뒤를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24년이 지났습니다.

▲ 7위. 베트공 게릴라 즉결처형 (1968년)
AP통신 사진기자 에디 아담즈에 의해 촬영되어 퓰리쳐 상을 수상한 사진입니다.
경찰청 장관이 포로로 잡은 베트콩(남베트남 해방 민족전선) 병사를 노상에서 사살하는 사진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미국개입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고 장관은 처형의 정당성을 주장한 후
1975년 몰래 미국으로 건너가 피자 레스토랑을 경영하다가
1991년 정체가 탈로나자 폐업하고 홀로 살다가 1998년 암으로 사망합니다.

▲ 6위. 뉴기니아 전투 (1943년)
뉴기니아에서 벌어진 일본군과 연합군의 전투를 말하는 뉴기니아 전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라이프지의 죠지 스트록이 촬영한 사진으로 미국병사의 시체를 찍었습니다.
당시 관에 있지 않은 시체를 찍은 사진을 처음 게재하여 관례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하네요.

▲ 5위.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자투하 (1945년)
두 개의 원폭으로 도합 38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 4위. 베트남 전쟁 (1972년)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군이 교전을 벌이던 도중
남베트남군이 챠방이란 지역에 네이팜탄을 투하하게 됩니다.
이때의 아수라장 속에서 아이들이 달려나오는 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특히 가운데 알몸으로 도망을 치는 여자아이는 “뜨겁다”를 연발하면서 달렸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라면 이 사진을 꼽을만큼 매우 유명한 사진이기도 합니다.
사진 속의 등에 화상을 입은채 뛰어가는 여자아이는 사진을 찍은 휜 콘 우트의 도움으로
곧바로 병원에 가게 되고 14개월동안 17번의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이후 정상적인 삶을 살고 1992년 두 아이의 어머니로 캐나다로 건너가 반전주의자가 됩니다.
1996년 소녀를 처음 시술한 외과의사와 재회하여 고마움을 표하고
1997년부터는 유네스코의 친선대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료하는 구제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3위. 동경 대공습 (1945년)
사진은 동경대공습의 처참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아이를 업고 피난가던 한 어머니와 아들의 시체입니다.
어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직 타지 않은 어머니의 등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입니다.
당시 미국의 전략폭격기의 공습으로 163개도시에 걸쳐 5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냅니다.
동경은 1945년까지 132회의 폭격을 맞고 3월 10일 동경대공습으로 하루사망자만 10만명에 달하게 됩니다.

▲ 2위. 리나 메디나 사건 (1939년)
세계에서 의학적으로 가장 적은 나이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양이 의심되어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놀랍게도 임신 7개월로 판정이 납니다.
당시 메디나의 나이는 5살(7개월 31일).
1939년 5월, 제왕절개로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게 되고 이는 학회로 보고가 됩니다.
메디나의 아들 헤랄도는 메디나를 누나로 기억하고 있다가 10살 때 진실을 듣게 됩니다.
헤랄도는 건강하게 성장하다 골수에 이상이 생겨 40세에 사망하게 되는데
아직 어머니의 연령과 그의 병과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메디나는 재혼을 하여 1972년(33세)에 두 번째 아이를 낳습니다.
첫 체외수정에 의한 임신이 1978년임을 감안하면 어떠한 경로로 임신을 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메디나는 이에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아직도 미궁속에 쌓여있습니다.
한편 그의 아버지에 의해 근친간을 범했을 것이랑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습니다.

▲ 1위. 천안문 사건 (1989년)
북경호텔 6층에 숙박하고 있던 AP통신 기자가 400mm 렌즈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1998년, TIME지에 의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생사도 알지 못하지만 1990년 기자회견에서 한 저널리스트가 이 남성의 행방을 묻자
당시 강택민 중국 공산당 서기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