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남편과 현명한 아내(愚夫賢內)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1995년 즈음) 음악을 듣는 내 오디오는 단촐했다.
온쿄 앰프와 JBL스피커로 구성된 AV시스템과, EL34관을 사용한 광우전자의 진공관 인티앰프 뮤즈(KI 40)에 인피니티 카파 7.1i 스피커가 전부였지만 그러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였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업무상 밖으로 출장을 갈 기회가 있어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는 광주나 서울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기회가 없어도 만들어서 나가곤 했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 끝자락, 사방이 바다인 작은 마을이어서 사진과 음악에 깊이 빠져있는 내겐 어느 곳보다 좋은 여건이지만 한편으론 불편함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도시로의 외출이 꼭 필요했고, 한 번 나가면 기회가 많지 않은 탓에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LD며 CD 등을 사는 비용이 월평균 2-3십만원은 족히 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음반을 모으고 음악을 들어왔던 터라 그것은 내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내 아내도 전문직을 가졌고 오디오와 음악에 대한 내 욕심을 잘 아는지라, 내가 받는 월급의 사용처에 크게 불만은 없었지만 한편으론 형편에 맞지 않는 지나친 지출을 내심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난 여느 때처럼 서울에 다녀오는 길에 CD며 LD를 평소보다 더 많이 사들고 와서는 저녁상을 차려오는 아내 앞에 늘어 놓았다.
들뜬 기분으로 열을 내어 설명하는 내 말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던 내 아내가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말 안 했지만, 좀 지나치다고 생각 안 해?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저축도 하고 집도 마련할 준비를 해야되는데..."
"좋아하는 것도 적당해야지...매달 그렇게 판을 사고, 오디오에도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이해할 수 없어"
난 숟가락을 들다 말고 내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 하지 않던 얘기를 오늘 갑자기 내게 하는 이유가 뭘까?
이제 결혼한 지 2년여가 되었으니 길들이기를 시작하려는 걸까?
앞으로의 경제권 이양(?)에 대한 포석일까?
찰나의 시간동안에 내 머리에는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음악과 오디오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해. 그래야 다음에 다시 불편한 이야기를 안 듣게 돼. 그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확실하게 하자.
"들어서 서운할지 모르지만 내가 만약 음악과 당신 둘 중에 하나만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난, 주저없이 음악을 택할 꺼야. 그러니, 내 취미생활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하지 말았으면 해."
난 바보였다.
내 아내의 너무도 당황스러워 하는, 놀라 동그랗게 뜨고서 깜박이는 것도 잊은 채 날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바보같은 말을 해버린 내 자신이 정말로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을 . . .
한동안 말이 없이 날 쳐다보던 아내는 조용히 숟가락을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날부터 난 아내에게 한마디도 건낼 수 없었다. 미안함과 기왕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내 입마저 막아버린 것이었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마주 앉아 함께 해야 하는 어색한 식사시간들.
그렇게 냉전이 시작된 지 4일째 되던 날 저녁, 저녁식사를 차려오며 내 아내가 먼저 말을 해왔다.
"이제부터 음악을 들을 땐 함께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술이나 노름도 아닌데 내가 지나쳤던 것 같아. 함께 음악을 듣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도 해주면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라서 아마 나도 사랑하게 되겠지. 생각해 보면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CD를 고르는 것도 큰 행복일꺼야.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집안살림은 내 수입으로 충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자기 월급에서 나가는 그 지출이 아까웠던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이제부턴 나도 자기만큼 음악을 가까이 하도록 노력할께"
아름답고 현명한 내 아내여, 난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오.
그 후 음반을 사는 내 지출은 3분의 1로... (^^)
지금은 아이와 내 아내를 위한 CD와 DVD가 따로 벽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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