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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대가리들이 왜 한국이 애플 닌텐도같은거 못만드느냐는 개소리를 비판한 기사를 읽고...

이상원 |2010.05.02 03:14
조회 670 |추천 0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링크 (http://news.nate.com/view/20100501n05891)

이 기사를 요약을 하자면,
1. 경직된 위계질서,
1. 이윤위주의 학문위주로인해 교육의 다양성과 인류학 사회학등의 인문학의 기초학문 소홀,
1. 그리고 학생및 사람들의 수평적인 다양한 장점 대신에 수직적 경쟁적인 교육및 사회구조가 문제란 말인데...

다 동의한다.
틀린말 하나 없다.
하지만... 이 기자가 중요하단고 한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이 기자가 지적한 문제는 이것보단 조금더 복잡하다는것이다.
물론, 나도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해서 이 기자가 하는말을 누구보다 더 절실히 느낀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회학을 전공할거라는데는 변함이 없지만...
솔직히 누구보다도 사회학이 현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이용할 기회가 없다는 아픈 사실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니깐...

문제는 저 기자가 지적한 문제점들의 원인을 따져보면 비록 나도 동의해도 문제가 저렇게 단순한것만은 아니라는것이다.
우선 경직된 위계질서가 문제가 있고 사회에 큰 악영햘을 미치긴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필요한게 위계질서를 통한 사회질서 유지가 필요한거 또한 부정할수 없는것이다.

결국 정반대의 특성인 다양성과 창조성의 존중을 통한 자유와 위계질서 유지를 통한 질서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의 현 사회는 질서유지가 너무강해 자유의 존중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필요한 그 두가지의 특성은 상호보환관계인 동시에 상호필요관계지만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상극이라는것이다.

물론 자유와 질서의 공존이 가능하긴 하지만...  문제는 현 한국의 교육과 사회를 보자면 그런 창조와 다양성의의 자유와 질서유지라는 두가지를 공존시키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것이다.

다민족사회니 하는 개소리를 말하는게 아니다.

단지 현 한국의 초중고에서의 왕따문제를 보면 결국 창조와 다양성을 존중하는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한국의 교육과 사회의 무능함을 극렬하게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것이다
결국 남이 나와 다르던 말던 나와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못가르친다는것이다.

 

문제는 결국 저 기자도 문제제기도 "왜 이런거 못만드느냐"는 소리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이다.

(뭐, 문제의 원인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갔다는데는 이의가 없지만...)

 

결국 이런 자유와 질서의 공존의 문제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것이다.

더욱이 개인주의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역사교육과 민족주의의 강화가 필요하단 것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결국 현 한국사회에서 왕따등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원인은 개인의 개인만의 공간을 침해하는것을 당연시 여기며 서로를 구속하고 억압하는것을 정의로 여기며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구분못하는것에 있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주의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사교육과 민족주의교육을 강화해야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사회성이기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기본적인 모순성 때문이다.

 

어느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에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공동체에 동질감과 소속감을 추구하고 그렇기에 스스로의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어하는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주의교육만 강화할경우 결국 인간이 필요로하는 공동체의 소속감및 질서존중교육에 문제가 생기는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공동체 교육은 학교나 지역등의 소규모 공동체에 집착한다는것이다.

결국 공동체교육이란 공동체의 동질감을 강조하는것인데,

결국 같은 그룹, 같은반, 같은 학교, 같은 지역이라는 소규모적 공동체 강화에 집착하는 한국의 사회와 교육의 구조로인해 결국 개인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부정하게 된다는것이다.

 

생각해봐라,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공동체의 동질감을 강조하기 위해선 결국 다른학교, 다른 반과의 차별성이 필요한건데, 결국그렇게 하기위해선 두발규제와 교복등의 개인의 사소한 다양성마저 억압을 해야 하는것이다.

 

물론 인류공동체라는 개소리를 짖어댈것들도 있겠지만...

모든 인류를 공동체라고 여기기엔 인간의 팔은 너무나도 작고, 인간의 시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역사와 같은 언어, 같은 문화와 같은 아픔도 공유하지 못한 다른 민족과 동질감을 공유할수 있겠는가?

 

일제징융, 위안부라는 한국여성을 성노예화한 일본정부의 납치, 분단과 독도및 친일문제를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쪽 것들이 이해 할수도 없고 이해해야할 이유도 전혀 없는거거든...

마찬가지로 르완다에서 학살을 당하던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했던 한국인들하고는 상관이 없느 상관할 필요도 없는것이고...

 

더욱이 공동체 교육의 단위를 민족으로 맞춘다면,

비록 개인주의를 강화하면서도 공동체 교육에 문제가 안생긴다는것이다.

결국 개인의 외모나 미적감각등이 달라도 같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것으로 개인의 차별성을 부정하지 않은채 같은 공동체에 소속됐다는 동질감을 공유할수 있으니깐...

 

다만 민족주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가 다른 민족을 탄압할수 있다는 위험성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주의교육과 민족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사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는것이다.

민족공동체 유지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국사교육을 강화헤 민족의식고취를 시키는 동시에 세계사교육을 철저히 시켜 한국을 비롯한 역대 모든 민족의 잘잘못을 철저히 교육시켜 타민족탄압이라는 역사적으로 여러 민족들에게 있어왔던 과오를 예방해야하기 때문이다.

 

위계문제외의 인문학 기초학문의 문제제기또한 조금은 문제가있다고 본다.

물론 저 기자가 지적한 사회학이나 인류학등의 인문학 기초학문을 등한시 하는게 문제고 그게 큰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 한국 대학의 인문학을 본다면...

상아탑에 사로잡혀 교수의 실력과 학문의 다양성보단

교수의 인맥이 더 중요시 되는 현 한국대학의 인문학계에선 더 많은 투자이전에 인문학계의 천지개벽이 우선 되어야 하는것이다.

물론 적극적 투자가 필요한것을 부정할순없다.

하지만 현 한국 인문학계의 천지개벽이 없는한,

더 많은 투자는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붙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희 학문의 다양성이 철저히 부정된체 교수의 사상에 대한 비난금지와 교수의 사상에 대한 색깔론적 탄압이 존제하는 한국의 사회에서... 인문학의 성장을 기대할수는 없다는것이다.

 

더욱이 이윤추구의 학문만 중시하며 인문학의 존폐및 인문학을 돈의 하녀로 만드는 현 한국사회에서

과연 karl marx, emile durkheim, max weber, 더 나아가서 kenneth waltzsk john mearsheimer 같은 천재들이 그들의 학문을 다듬었을수 있냐는것이다.

 

한국사회에서,

karl marx는 자본주의에 나쁜점을 지적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업과 구분된 정부를 지적한 max weber는 반기업적이라는 이유로,  

nuclear peace를 지적한 keneth waltz는 북핵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정치학에서 무도덕성을 지적한 mearsheimer는 부도덕과 무도덕도 구분못하는 교회와 반공정신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부도덕한 나쁜인간으로 찍혀

한국사회에서 학문활동을 금지 당했을테니깐.

 

더욱이 이런 사상과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이 탄압당하는 사회에서 수평적 평가가 아닌 수직적 평가가 이루진다면... 그 문제는 몇배나 증가를 하겠지만...

 

그렇기에 저 기자가 현 한국의 수직적 경쟁구조를 비난하는것이긴 하겠지만...

문제는 결국 그런 수직적 경쟁구조의 원인은 선생들과 한국사람들 스스로에게 있다는것이다.

솔직히 평가는 필요한것이니, 평가자체를 폐지할수는 없는것이고,

그렇기에 결국 수직적 경쟁구조의 대안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가 필요한건데...

 

생각해봐라, 만약 현 한국사회에서 상대평가를 없대고 절대평가를 한다면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장담하건데 애들 인생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제대로된 평가대신에 학생들을 통과시켜주기위한 평가로 바뀔거란 것이다.

알겠는가?

결국 학생들을 위한다는 학생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사고방식이 학생들을 과잉경쟁체재로 밀어넣고 있다는것을...

환자가 아파할까봐 필요한 치료를 안한다면 어떻게 의사가 환자를 살릴수 있을까?

 

학생 개개인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잔인하더라고 철저하고 공정하게 평가를 매기지 않는한 어떻게 절대평가가 존제할수 있으며 절대평가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떻게 수직적 과잉경쟁체제로 몰고가는 상대평가를 멈출수 있을까?

 

학문의 다양성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어, 수학, 국사, 역사학과 자연과학등등등의

기초학문에 대한 철저한 교육없이 학생들 다양한 능력개발이 가능할까?

 

결국 현재의 애플이니 닌텐도니 하는 것들을 못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윗대가리를 비롯한 한국인 개개인 모두에게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위대한 안창호선생이 지적했듯이

현제 한국 사회는 윗대가리들을 완전히 물갈이할 천지개벽만큼이나 국민들 개개인들의 내적 천지개벽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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